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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화실 아트인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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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스크랩 산수도
이슬어지에 추천 0 조회 83 06.11.16 21:0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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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弘道 畵虎   李寅文 畵松  絹本彩色
   90.4*43.8cm.  호암미술관 소장

 

 좌하에 '士能'이라는 김홍도의 묵서가 있고 그 아래 주문방인 '金弘道印'과 백문방인 '士能'이있다. 좌상에는 '豹菴畵松'이라는 묵서와 백문방인 '姜世晃印'이 있는데 두 관서의 필치는 동일하다.

 호랑이는 슬금슬금 걷다가 무언가가 의식된 듯 갑자기 정면을 향해 머리를 돌린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졌다.

 

이러한 자세는 조선시대 맹호도에 전형적인 것으로서, 호랑이의 백수지왕(百獸之王)다운 위엄이 정면을 향한 머리와 화폭을 가득 채운 포치에 의해 강조된 것이다. 호랑이는 극사실에 가까운 묘사로 육중한 괴량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민첩유연한 그 생태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잔붓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터럭과 한호의 특징인 얼룩무늬의 자연스러움은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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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絹本彩色 30.1*4601cm
  간송미술관 소장

 

 고양이 그림은 초상에도 능한 변상벽(1730~?)이 크게 명성을 얻었으나 이암(1499~1545)과 정선(1676~1759)으로부터 김정희(1786~1856)에 이르기까지 문인화가들도 즐겨 그린 동물소재의 하나였다.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리는 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고양이의 묘(猫)와 70노인을 칭하는 모(모)와 나비의 접(蝶)과 80노인의 질(질)이 발음이 같기에 이 소재의 그림을 모질도라 지칭한다.

 

고양이의 터럭이나 나비의 얼룩무늬 등 매우 섬세하게 사실적인 표현의 사생기법이 돋보이며, 좌측의 패랭이꽃과 제비꽃 등의 묘사는 청(淸) 궁정화가의 기법과도 상통되는 면이 감지된다. 화면 좌우에 적당한 비중 등 구성 및 구도에 있어서도 뛰어남을 읽을 수 있다. 나비를 향한 고양이의 시선, 전체적으로 화사하면서도 따사로운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해암전도(海嶽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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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환은 정조의 명을 받아 내외금강산을 두루 사생(寫生)하고 돌아왔으니 이 그림은 금강산 화첩 중 한 장이다.

화면을 모두 충만하게 채운 포치(布置)법이라든지 활윤한 필치의 특유한 분위기는 이 화첩의 독자적인 신선한 감각을 이루고 있다.

골산(骨山) 연봉(連峰)은 호분채(胡粉彩)를 했으며 작은 인물들은 윤곽만을 가볍게 선묘했다. 


 

 

귀어도(歸漁圖)

이 그림은 <소당화첩(小塘畵帖)> 중의 하나로 품격이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화면 왼쪽에 초가집이 하나 있고 초가집은 무성한 나무숲에 일부분 가리어져 푹 둘러싸여 있다. 나무숲은 색채와 먹의 농담에 변화를 주어 푸른색과 엷은 담묵(淡墨)으로 칠한 후, 사립문 앞쪽에 있는 나무의 잎파리들은 진한 먹색으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시각적 포인트를  줌으로써 나무숲 전체를 묶어주는 통일적 힘과 활기를 도모하고 있다.

 

 

 망태기를 걸머지고 집으로 귀가하는 어부를 달빛이 환히 비추는 가운데 사립문 앞에서는 작은 강아지가 어부를 반긴다. 어떤 부분은 대담하고 소탈하게, 어떤 부분은 예리하고 주의 깊게 처리한 필묵의 고도로 숙달된 움직임이 화면을 예술적 향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

언뜻 보면 중국적인 상념 산수에서 파생된 어떤 분위기를 연상시키고 있지만, 주저 없는 간결한 필치에서 오는 맑고 평범한 점경 속에 한국적인 시정이 느껴진다.

 

 

 

수석도 (樹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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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도 樹石圖]-이인상(李麟祥, 1710-1760), 능호관(凌壺觀)

일찌기 자신의 화풍을 이룩한 이인상의 28세 때의 작품이다. 그가 늘 즐겨 그리는 소나무와 그밖의 나무들을 담묵으로 처리해 화면 전체가 깔끔하고 격조높은 화풍을 보여준다. 

그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樹寒而秀 石文而醜](나무는 차지만 빼어나고 돌은 아름답지만 추하다)라는 문구로 그림의 내용을 보완해 주고 있다. 

 

 

고사한담도(高士閑談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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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이인상과 교우 관계를 가졌던 몇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기록으로 당시 문인들의 풍류 일면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큰 바위가 있고 그 옆으로 노목(老木) 두 그루가 서로 엇갈려 있고 그 밑의 편편한 바위에는 한담(閑談)을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바위 너머로 골짜기를 이루는 바위 절벽이 나머지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이인상은 고목, 특히 소나무를 많이 그렸으며 그의 그림에는 소나무가 화면 중심부의 기둥 역할을 하는데 이 그림 역시 두 노목이 그림 중앙에 있어 뚜렷한 구성적 요소가 되고 있다. 또한 엷은 먹점과 아주 흐린 푸른색 점들의 혼합으로 묘사된 나뭇잎은 풍부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인상(李麟祥)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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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관 이인상(171O-176O년)은 영조 11년 (173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죽현관이 되었다가 관찰사와 사이가 나빠져 사직, 단양의 구담에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시,서,화, 삼색이라 칭해진 조선왕조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화가이다.

현재 국립중앙 박물관에 전해오는 이인상상은 초본형식으로서, 복건에 야복을 한 좌안7분면의 반신상이다.

이 초상화의 필자가 누구인가는 알 수 없으나, 화상에 상당히 교하고 또한 이인상과 친숙한 사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까닭은 18세기의 여타 초상화에 비해 이 초상화는 피부가 지닌 보편적 육리문사출보다는 대상인물 자체의 골격이나 신정묘출에 더 진력하였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눈의 형용, 왼쪽 이와 중이의 덧그린 흔적, 양미간을 약간 찌푸린 모습 등은 오랜 숙시끝에 나온 진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인상상 외에도 상당한 수효의 대신들의 초상화초본들이 전해오는데, 그 중에는 2,3,4등의 숫자가 적혀져 있어 득의치 못할 경우 누차 초본을 내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초상화에서의 초본은 한결같이 정본보다는 필선이 짙고 세찬데, 이들 초본에서 기량의 차이가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산수도(山水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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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원래 이인상의 선면화첩 중의 한 장이었는데 지금은 족자 형식으로 따로 표구되어 있다. <고사한담도>와 비슷한 부드러운 엷은 필치와 파랑과 엷은 갈색의 세련된 배합을 보이는 그림으로 이인상의 다른 그림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구도를 보인다.

 

즉 부채 모양의 특이한 화면이 물의 흐름에 의해서 불균등하게 사등분되었고 그 중 가장 작은 부분이 오른쪽 전경이 된다. 여기에는 몇 그루의 고목(古木)이 기둥같이 늘어서서 물 건너의 암벽(岩壁)을 가리고 있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솟은 윗쪽 두 암벽은 동굴의 입구처럼 보인다. 잔잔한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작은 배 위에는 두 사람의 풍류객이 절경 속을 노닐고 있다.

 

 이인상은 명나라 오파(吳派)화풍(畵風)을 소화시켜 조선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는데 이 그림은 오파적 소재와 필치를 보이기는 하지만 좀더 특징있는 구도를 보여 그의 독창성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조어산수(釣魚山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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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은 여러 분야의 소재에 두루 능하였으며 전래된 작품도 적지 않다. 비교적 섬세하게그린 실경산수는 당시의 화풍을 대변하며, 사의적(寫意的)인 산수는 활달한 필치로 두드러진 개성이 보인다.

조어산수는 광생(狂生)이라고도 불리었던 최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듯 대담하고 거친 필치, 빠른 속도로 그린 간일한 구성, 담청 황색의 대조적인 설채(設彩) 등 중국에 잇어서도 양주팔괴(揚州八怪)에 비견되는 그림이다.

화원임에도 불구하고 문인화에 방불한 격조와 의취가 담긴 수작(秀作)을 남긴 최북은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인(藝人)의 긍지를 지니고 그림에 임했던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상좌불화첩발문 (李上左佛畵帖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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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허목 (許穆) /종이,墨書 41.7×24.2cm
보물593호
호암미술관 소장


발문은 글씨도 잘 쓰고 난초와 대나무를 잘 그린 선조의 손자 낭선군(朗善君) 이우(李 吳 : 1637∼1693)가 구해 온 이상좌의 불화 초본에, 허목(許穆: 1595-1682)이 전서(篆書)로 쓴 것이다. 허목은 발문에서 "이상좌의 인물화는 신묘하다. 신(神)의 묘경(妙竟)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고 하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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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07.10 10:43

    첫댓글 송하 맹호도 마치 내가 소나무 위에서 호랑이를 본 것같은 느낌을 준다 .난 김홍도가 호랑이를 본 후 그 인상을 그리지 안았나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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