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 가는 밥 /愚濫 우내문
밥은 밥인데 들어가는 목구멍에
따라서 입시, 진지, 수라구나.
드난살이 드난밥은 눈물이 절반이고
품앗이군 기승밥은 땀방울이 범벅이네.
먹다 남긴 대궁밥은 설움에 목 메이고
장리곡(長利穀) 곱삶이는 쳐다만 봐도 꾸루룩.
졸병의 소나기밥 사레들기 십상이나
나라 위한 몸이라 체증도 피난 가네.
아이고 이 등신아 진지나 잡숴보소.
수라는 법(法)이고, 진지는 율(律)이니
떡밥, 고두밥, 된밥, 진밥, 눌은밥 할 것 없이
기왕에 먹을 것 배터지게 드셔보소.
귀신이 먹다 남긴 메 대궁밥은 뒤탈이 없다지만
허천나게 처먹으면 콩밥 먹기 십상이지.
물 없는 강다짐 꾸역꾸역 쟁여 넣으며
마님과 새참 먹다 들키면 주리 틀리게 마련이지.
어이 이 버꾸야 입시도 드셔보소.
수라상에 괴어올린 주지육림만 못할 손가.
맹물에 주먹밥, 밀개떡, 쑥버무리가
순수무구 지극정성 사랑 무침 아니던가.
게제재한 부엌데기 눈물로 쌀 일고
덥수룩한 촌부 부지깽이로 한(恨) 지펴
찬밥에 물 부어 되지기 밥 지어내니
수북한 감투밥은 아니어도 살로 가는 밥 아니던가.
주) 입시 : 1. 하인이나 종이 먹는 밥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변변하지 아니한 것을 조금 먹음. 또는 그렇게 먹는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