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각
전혜진
나, 발칙하게 썸을 탈 거야
동해같이 가슴이 푸른 남자를 만나
마음껏 외줄을 타는 거지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밀착은 집착과 한 쌍이거든
하루 중 여덟 시간은 붉은빛이어야 해
직접 빚은 만두를 건네듯 따듯해질 거야
사실 사랑은 지긋지긋한 늪이잖아
한 발 다가오면 한 발 물러나야 해
가끔은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거야
선루프 열고 두 손 번쩍 들어 올리는
플러팅은 내 몫이야
사랑에 길들고 싶지는 않아
긴 머리와 플레어스커트는 벗어버리고
싱싱한 가물치 같은 본성으로 펄떡일 거야
그런 발칙한 생각에 고개 끄덕이며
용이 나타나도 꿈쩍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
마지막 숨을 뱉는 노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에스프레소를 마실 거야
도서관에서 괴변을 나열하는 로널드*는 차 버리고
오늘 밤은
눈썹 짙은 그와 야릇한 썸을 타고 말 거야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그런 일이
그저 궁금하고 부러웠던 나는
달밤에 체조하고, 발칙한 문장을 쓰며
설레는 새벽을 맞이할 거야.
*로널드 : 종이 봉지 공주에 등장하는 왕자
지독한 평화의 끝
전혜진
단단한 뿔을 가진 여자라 숲에 뿌리를 내렸어
순간 절뚝였다면 아이처럼 엉엉 울었을지 몰라
가끔은 타인의 생을 짓밟는 사람이 있지
영원이라 말을 남기고 슬며시
뒤로 이별은 끼워 넣는 사람
디에고!
당신의 부채는 부재로 동결되어서는 안 돼
심장을 관통한 부서짐과 으깨진 몸은
초현실이 아닌 현실에 있잖아
욕망을 사는 화폐의 앞과 뒤처럼 우리는
왜 같은 곳을 볼 수 없는 걸까
서로의 심장이 붉게 연결되어 있는데
선혈이 낭자해 놀랐다면, 미안!
그저 당신의 칼에 단지 몇 번 찔렸을 뿐이야
발이 왜 필요해
이렇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만세, Viva La Vida.*
*Viva La Vida :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쓰인 글
▲전혜진시인
그림책 교육 강사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그림책문학협회 이사
그림책빛솔 협회 고문
2018년 『한국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
시니어 그림책 『쑥부쟁이』
에세이 『우리는 그림책으로 해방 중입니다』
시집 『발칙한 생각』(2023. 시산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