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배는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부과되었던 조선시대 형벌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에는 누군가 죄를 범하면 가족이나 친척 혹은 사승(師承) 관계에 있는 이들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연좌제’가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단지 죄를 범한 사람의 친척이나 제지라는 이유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형벌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설사 그 죄가 누군가의 모함으로 누명을 쓴 결과라고 해도, 죄가 없음을 증명할 수 없으면 고스란히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이 책에 수록된 기록을 남긴 이광명 역시 자신의 죄가 아닌, 큰아버지(백부)가 죄를 지어 친척까지 유배형에 처해져 함경도 갑산까지 유배를 떠난 인물이다.
‘삼수갑산’이라는 지명으로 대표되는 갑산은 조선시대의 가장 먼 변방에 속해 있었고, 그곳으로 유배를 떠난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광명 역시 백부의 죄에 연좌되어 갑산으로 유배를 간 후, 그곳에서 24년을 살다가 생을 마친 인물이다. 그가 남긴 몇 편의 시가와 한글 산문 기록은 당시 함경도 갑산 지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지에서 온 낯선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변방의 풍속은 생소하기만 했을 것이고, 자신이 살던 한양이나 물산이 풍부한 지역과도 다른 문화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이광명은 낯선 유배지에서 접한 변방의 문물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자신의 관점으로 정리한 기록을 남겼다고 하겠다.
먼저 이 책에 수록된 가사 <북찬가(北竄歌)>는 ‘북쪽으로 내쫓김을 당해 부른 노래’라는 의미로, 자신의 유배에 대한 과정과 감상 위주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작품에는 억울하게 유배를 떠나야 했던 자신의 심경과 낯선 곳으로 향하는 고독한 처지, 그리고 노모를 두고 떠나야하는 자식으로서의 애절한 마음 등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잇으리라는 한 줄기 희망을 품어보지만, 작자인 이광명은 끝내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처럼 조선시대 유배를 떠난 이들이 창작한 가사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을 일컬어 기행가사라고 분류하고 잇다.
여기에 유배지인 갑산에서 창작한 시조 3편, 그리고 당시 오랑캐의 땅이라는 의미인 ‘이주(夷州)’로 불렸던 갑산의 풍속을 한글로 기록한 <이주풍속통>이라는 산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글 자료의 원문과 함께 현대어 번역과 주석을 덧붙인 체제를 취하고 있다. 원저에는 저자의 한시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옮긴이는 그 가운데 한시를 제외한 국문 자료만 취해서 원문과 함께 번역하여 엮어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당시로서도 낯선 변방의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며, 또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유배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