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피터싱어, 장동익 역, 철학과현실사, 2003.
‘삶과 죽음’은 인간의 실존(實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삶’을 시작하고, ‘죽음’으로서 그 삶을 마치기 때문이다. 너무도 명확하게 여겨지는 개념은 실상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삶’의 시작을 ‘임신’의 순간으로 볼 것인가, 혹은 모태로부터 태아가 출생하는 순간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죽음의 기준이 뇌사인가, 혹은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으로 볼 것인가? 이러한 개념을 과연 과학적으로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는 어떤 식으로든 개념을 정리한다고 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인가? ‘삶과 죽음’을 어떠한 개념으로 정리하더라도, 그에 대한 반론 혹은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하다고 하겠다.
‘생명의료 윤리의 도전’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그러한 질문에 대해 저자의 관점에서 윤리적인 답변으로 제시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 역시 자신의 주장이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꺼이 ‘삶과 죽음에 대한 의학적 결정에 대한 특정한 논의에 뛰어들어 증명’하고자 했으며, 저자는 ‘전통적 입장을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진보가 가능하’고 ‘전통적 입장이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과학적 진보가 가져온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과학과 의학의 사용을 가로막는 과거의 서툰 전통을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과학 기술의 활용을 전제로 하는 ‘생명윤리’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의학적 관점에서 펼치는 저자의 논리는 매우 현실적이라고 이해된다.
저자는 먼저 ‘미심쩍은 최후’라는 제목의 1장에서 연명치료로 생을 이어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다양한 상황과 그에 얽힌 법적 책임을 다룬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생명의 고귀함’이라는 명분으로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연명치료가 지속되는 것이 환자와 그 보호자들에게 유용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나아가 2장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라는 항목에서 ‘불확실한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논의를 펼치며, ‘생명’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몸을 고려하지 않고 임신 중인 태아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태어날 아이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살핌으로써, 저자는 이제 전통적인 ‘진부한 계율을 새로운 계율로 다시 쓰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계율의 첫 번째는 ‘인간 생명의 가치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라’라는 항목이다. 두 번째는 삶과 죽음의 선택에서 ‘자기 결정의 결과에 책임을 져라’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인격체의 소망을 존중하라’(세 번째), ‘원하는 경우에만 출산하라’(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에 근거해서 차별하지 말라’(다섯 번째) 등이다. 특히 새로운 계율로 명시된 다섯 번째 계율은 저자로 하여금 <동물해방>이라는 저서를 츨간할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라 이해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절대적 이론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기에,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통해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 기대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