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
내 화장대 위에는 화장품이 없다.
벽 쪽에 커다란 거울이 붙어있고 서랍 속에 스킨, 로션, 영양크림, 잘 쓰지도 않는 파운데이션이 있어 그나마 화장대의 명목을 잃지 않고 있다.
유리로 덮인 화장대 상판에 23.5도로 살짝 기울어진 지구본이 도도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지구본 아래에는 조그마한 종들이 반원을 그리며 지구본 받침대를 에워싸고 있다.
퇴직을 하고 나니 화장할 일이 거의 없다. 로션을 슬쩍 바르고 탄력 잃은 얼굴로 거울 앞에 서면 그간의 삶의 흔적을 느낀다. 겸연쩍은 손이 지구본을 한 바퀴 휘돌려본다. 네임펜으로 여행한 나라들의 국경선이 여기저기 표시되어 있다.
촘촘하게 맞닿아 있는 유럽,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갖고도 이웃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는 러시아,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서로 인접하고 온갖 지질학적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풍요로운 미국.
휘돌던 지구본이 미국과 캐나다 동쪽 국경선에서 멈췄다.
육지임에도 푸른색인 것을 보니 슈피리어 호수에 내 손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오른팔을 살짝 치켜드니 중지 끝이 분명 캐나다 영역이다.
‘그래 오늘은 캐나다다.’
지구본 아래 오밀조밀 정렬되어 있는 종 중에서 캐나다 국기인 단풍잎이 그려진 종을 찾았다.
종을 뒤집어 「2010. 7」 여행한 날짜를 확인하고 흔들어 보았다.
‘때릉때릉’ 경쾌한 종소리가 나를 2010년 7월로 데려다준다.
몇 번째 인천 공항에서의 출국이었지만 그때만큼 설렌 적은 없었다.
영어 교육과 인연을 맺은 지 13년 만에 「밴쿠버 현지 영어 연수」의 기회를 얻었다.
전국에서 모인 40명의 단원들과 6주간의 낯선 외국 생활의 서막이 올랐다.
미리 열람된 단원들의 근무 지역과 출생 년도를 훑어보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니와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은 내 성격에, 나이도 가장 많다니! 그리고 영어회화 실력도 보잘것없었다.
‘이러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일시적 국제 고아가 되는 게 아닐까?’
장고 끝에 내 역할을 찾아내어 80개의 주황색 띠를 만들었다.
40명의 대인원이 움직이려면 공항에서 캐리어를 찾는 시간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 팀만의 주황색 표식을 해서 많은 캐리어를 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띠를 나눠줬더니 누군가 붙여준 ‘미스 오렌지’ 덕분에 연수 내내 아웃사이더 되지 않고 낯선 곳에서 낯선 시간을 잘 지낼 수 있었다.
홈스테이 여자 주인 일레나의 친절로 영어 울렁증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집 마당엔 3대의 차 중에 소나타가 있었고 거실엔 삼성 티브이가 있어서 가슴 뭉클했다. 그런데 현대를 일본 회사 혼다의 자회사로, 삼성을 일본 회사 쏘니의 자회사로 알고 있는 그들 부부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하고 나니 외교의 한 역할을 한 듯 뿌듯했다.
연수 과정 중에 학교 참관 수업이 있었다. 방학 중인지라 학기 중에 성적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았던 교실 분위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질겅질겅 껌을 씹는 아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아이. 턱을 괴고 있는 아이. 그 혼란 속에 절대적인 질서가 엿보였다. 개인의 행동은 자유롭되 타인에게 방해를 주는 아이는 찾으려야 찾을 없었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집중하는 교실 분위기가 부러웠다.
내가 영어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으로 영어가 도입된 1997년부터다.
1년에 100시간 이상 받아야 하는 연수의 대부분을 영어 연수로 채웠다. 퇴근 후 스터디그룹을 하기도 하고 방학이면 한 달 내내 합숙을 하기도 했다.
영어는 검인정 교과서인지라 3학년 한 학년 교과서가 8종이나 되었다. 8종의 교과서를 분석하고 주제에 따라 챈트와 노래를 녹음하여 출퇴근 시간에 차 속에서 무한 반복 듣기를 했다.
영어 과목이 도입된 3학년은 대학을 갓 졸업한 선생님들로 구성되었다. 평균 연령이 32세였으니 마흔을 훌쩍 넘은 내가 젊은 그들과 함께한다는 게 무모한 도전이라고 친구들이 말릴 정도였다. 문제는 학년 당 한 명씩 해야 하는 공개 수업이었다. 더구나 3학년은 영어 수업이라고 지정되어 있으니 모두들 뒷걸음질 쳤다.
미지의 세계, 아무도 발 들이지 않은 초등 영어 수업. 깜깜한 터널을 들어가는 두려움과 첫눈을 밟는 설렘으로 교실을 오픈했다.
장학사, 타교의 영어 담당 선생님들이 참관하는 수업에서 아이들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그림을 보고 kitchen을 치킨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어 수업은 도리어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런 아이를 좋아한다. ‘좀 틀리면 어때? 일단 해보는 거다.’
“그래 kitchen에서 chicken을 만들지.”
아이가 우쭐해하는 모습에
‘저 녀석은 어디를 가나 영어로 기죽지는 않을 거야’ 확신하며 수업을 마쳤다.
한바탕 웃음 덕분인지 수업 분위기가 의도치 않게 입소문이 났다. 그 후 우리 교실 뒷문은 아예 개방되었다. 아이들도 이젠 참관하러 온 선생님들에게 격의 없이 영어로 말을 붙여 도리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소문이 꼬리를 물어 교육부로부터 「초등교사 영어 연수」를 의뢰받은 금오공대에서 내게 「초등영어수업 방법」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일찍이 유학하고 대학에 나가는 여고 친구가 은근히 부러웠는데
‘아싸! 나도 대학 강단에 서본다.’
졸지에 급조된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진 셈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여행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 어디로 떠나볼까?
2년 동안 함께 수업했던 원어민 강사 벤자민이 살고 있는 뉴질랜드로 가 볼까? 지구본을 휘휘 돌리며 남반구로 손을 더듬어본다.
202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