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백
한사랑 박순록
인생에 있어서 여백은 생명의 공간이다.
삶 속에서 여백이 없다면 아마 숨이 막힐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여백이 시작된다.
뱃속에 있을 때는 산모와 한 몸으로 살다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탯줄을 끊고 분리되어 다른 공간으로 옮겨진다.
수유를 할 때는 산모에게 안기지만 끝나면 다시 또 적당한 거리로 분리되어 잠자게 되고 필요할 때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적당한 거리. 코로나 시대인 요즘말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심리학자가 연구한 결과 지하철을 탔을 때 어느 자리를 선택하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은 양끝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양 끝 자리에 앉아 있다면 가운데 자리를 선택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안전한 거리가 양팔 벌려 닿지 않는 거리라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적당한 거리 두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삶에 있어서 여백은 정말 중요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간에도 적당한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이 있어야 서로 생각할 시간이 있게 되고 기다림과 그리움도 생기는 법이다.
일생에서 가장 여백을 좁혀 있는 사람은 배우자일 것이다.
함께 식사하고 한 이불 덮고 자고 싸워서 각방을 쓰지 않는 한 늘 서로 마주 보고 웃기도 하고 사랑싸움을 하기도 하면서 전생에 사랑 빚을 많이 지고 만난 인연일수록 더욱더 아옹다옹 또닥이며 살아갈 것이다.
조물주가 인간을 혼자 왔다가 혼자 돌아가게 한 것도 여백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온전히 살아야 하기에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고 돌아갈 때도 오롯이 혼자 가도록 해 두었나 보다.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딸아이는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유를 물어보니 맞벌이하면서 밥해 먹고 다닐 수는 있지만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한다. 현명한 사고인지 모르지만 아직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아이 육아에 도움을 주겠다고 해도 겁이 나서 도전을 못 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자랄 때 늘 아침마다 바빠서 정신없이 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온 탓인 것 같아 미안하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자신의 삶이니 스스로 선택을 하도록 해야지 등 떠밀어 결혼을 하라고는 안 하고 싶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하면 자신의 삶 속에는 여백이 별로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두 아이 키우면서 34년이란 세월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날들을 돌이켜 본다.
어떤 날은 출근해서 화장실 가서 거울을 보면 그야말로 강시같은 얼굴이었을 때도 없지 않았고, 스타킹 고가 나가서 실수하게 될까 봐 바지를 주로 입고 다녔고, 아이들 어릴 때는 방해받지 않고 하루 종일 잠을 자 보고 싶은 게 소원일 때도 있었다.
그나마 맞벌이하면서 오른쪽남자가 집안일을 절반 정도는 분담해서 해주었기에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 얘기해야겠다.
명퇴하고 자원봉사를 가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둥글고 유선인 진공청소기를 사용할 줄 몰라 쩔쩔맸더니 함께 간 지인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집에서 청소기 사용 안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집에서는 오른쪽 남자가 청소기랑 세탁기를 전적으로 사용했기에 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보완관계가 아주 잘된 편이다.
인문학 체질인 나와 이공계 쪽으로 더 발달된 남편과 함께 살아보니 서로 안 맞아서 답답할 때도 있긴 하지만 서로의 여백을 채워주며 사는 데는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처음 진단을 받고 어두운 그림자가 그려졌다.
만일 내가 떠나고 없으면 빈자리 놔두지 말고 빨리 채워서 살라고 했더니
“ 혼자 어딜 먼저 간단 말이고 내게 진 빚 다 갚고 가려면 아직 30년은 더 살아야 되는데 ” 하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항간에 떠도는 얘기로는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내 복에 왠 상처냐'고 웃는 게 남자들이라고 하던데...
인생에 있어서의 여백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인생을 100으로 잡았을 때 나의 인생 여백은 15였으면 하는 게 희망사항인데...
화폭에서도 황금분할의 적당한 여백이 아름답듯이 인생도 적당한 여백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것이다.
욕심과 행복은 반비례이니 인생 여백의 크기도 적당히 조절하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