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峰, 정도전의 호는 삼각산에서 따왔다 정 성 삼
우리에게는 전통적인 작호법(作號法)이 있다. 호(號)는 자신이 짓기도 하고 스승이나 부모 또는 친구가 지어주기도 한다. 자신의 호를 직접 짓는 경우에는 태어난 곳이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지역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좋아하는 것이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려말 신진유학자· 정치가로서 5백년 조선왕조창업의 기틀을 닦았던 정도전(鄭道傳)의 호가 삼봉(三峰)이다.
정도전은 자신의 호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아서, 三峰 호의 유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도전의 출생과 호에 대해 국가기관에서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를 알아보았다.
정도전의 출생지는 단양읍 도전리이고, 호는 도담삼봉에서 유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도전을 사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한영우교수(서울대)가 1973년 「정도전사상연구」를 펴냈는데, 이 책에서 정도전의 출생과 三峰 호와 관련한 구전자료를 소개하면서 정도전의 출생지가 단양읍 도전리이고, 호는 이곳 도담삼봉에서 따왔다고 하였다. 또 1997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낸 「국역삼봉문집」해제 글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그래서 한영우교수의 “정도전이 외조모가 천출이라는 가계(家系)와 함께 단양출신이고 호는 도담삼봉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사학계와 일반인들에게 정설화되어 있었다.
단양지방에서 구전되고 있는 전설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어느날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이 단양도담삼봉이 있는 마을 앞을 지나다가 관상을 보는 사람이 정운경에게 당신은 10년 뒤에 이곳 마을 여성과 혼인을 하면 장차 이 나라의 재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운경은 관상가의 말대로 10년후 도담삼봉이 있는 도전리 마을 여성과 혼인하면서 아이를 얻었는데, 이 아이가 정도전이라고 했다. 정운경은 도담삼봉이 있는 마을 앞을 지나다가 관상가의 말대로 아이를 얻었다고 하여 도전(道傳)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단양읍 도전리 마을 이름은 한자로 도전(道田)이라고 쓴다.
정운경은 관상가의 예언대로 형부상서, 오늘날 법무부장관의 벼슬을 지냈다. 출생지는 봉화정씨 족보에 정도전에게 두 아우가 있고, 정도전이 쓴 아버지 정운경행장에는 영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영주 2동에 있는 정운경의 생가로 알려진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의 유래를 보면 정도전이 영주출신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삼판서고택은 “판서가 세 사람 나왔다.”는 뜻이다. 이 집에서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이 태어나서 형부상서를 지냈고, 정운경은 이 집을 사위 황유정에게 물려주었는데 공조판서를 했다. 황유정도 사위 김소량에게 집을 물려주었는데, 그의 아들 김담이 이조판서에 오르자 ‘三判書古宅’이란 표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 집에서 판서급 인사가 5명 배출되었고, 문과 8명, 무과 1명, 소과 2명 등의 선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문헌을 봐서는 정도전의 출생지가 영주라는데 이론(異論)이 없을 것 같다.
三峰은 “세 봉우리의 산”이란 뜻인데 삼각산의 정식 명칭이 아닌 별칭으로 사용된 이름이다.
요즘 정도전이 자기 아버지가 도담삼봉이 있는 마을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을 생각하여 호를 지었다고 하는 단양지역의 전설을 바탕으로 정설화된 도담삼봉호유래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삼각산삼봉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한영우교수도 1999년 10월 출간한 「왕도(王都)의 설계자 정도전」에서 정도전의 출생은 물론이고, 이름과 호에 관련된 구전설화나 이야기가 과장되었거나 진실과 거짓이 함께 섞여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도전의 문집에 나오는 시에 三峰이란 시어가 여러 번 나온다.
이 시에 나오는 三峰은 모두 도담삼봉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여기서 三峰은 현재 서울 북한산의 옛 이름인 삼각산(三角山)을 가리킨다. 삼각산이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三峰은 삼각산의 또다른 이름이다.
정도전이 삼각산 三峰과 인연이 있는 것은 1375년 서른세살 때 고려조정으로부터 원(元)나라 사신을 영접하라는 명을 받고, 이를 거부하다가 파직당하여 나주 회진에서 4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도 개경(개성)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는 개경금족령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부평·김포·한강 삼각산(북한산) 주변지역에서 세 번 이사하면서 5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정도전은 부패한 고려사회를 개혁하여 유학(儒學)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꿈을 키워나갔다.
고려 말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는 도선의 십팔자위왕설(十八子爲王說)이 나돌고 있던 때이다.
정도전의 문집에 ‘三峰’이란 제목으로 쓴 시를 감상해 보자. 三峰이 도담삼봉인지, 아니면 삼각산삼봉을 가리키는 것인지 유념하자.
“홀로 옛 그리움에 젖어
三峰마루에 오르면
서북쪽 송악산이 바라보이고
검은구름 높게 떠 있다.
그 아래에서 벗들과 함께
밤낮으로 어울려 놀았지.”
이 시는 정도전이 개경에 있을 때 벗들과 어울려 함께 놀았던 추억을 읊은 것이다. 개경은 고려의 도읍지, 지금의 개성이다.
이 시에 나오는 三峰 곧, 삼각산(북한산)은 개경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곳에 위치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정도전의 호는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 아니고 삼각산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산중(山中)’이란 시 한 편을 더 보자.
“하찮은 나의 삶의 터전은 三峰 아래라서
돌아와 산중에서 가을을 맞네.
집안이 가난하여 병든 몸 돌볼 길없고
마음 고요하니 근심을 잊게 되는구나.
대나무를 가꾸고자 길을 돌려내고
산이 예뻐 작은 정자 세웠다오.
이웃 스님이 찾아와 글자 물으며
해가 다 지나도록 머물러 있네.”
이 시는 정도전이 한해에 부모상을 연이어 당하고 영주에서 3년 시묘살이를 마친 후 자기가 살던 三峰, 三角山 생활 터전으로 돌아와 사는 집 주변 풍경을 읊은 것이다.
이 시에서도 三峰은 삼각산, 지금의 북한산으로 개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므로 정도전의 호, 도담삼봉설과는 관계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문집에 나오는 三峰이란 시어는 모두 삼각산 三峰을 가리킨다.
정도전의 호를 삼각산 三峰에서 따왔다고하면 이곳에서 야인생활을 하는 동안 조선창업을 설계하고 도읍지를 한양(漢陽)으로 옮긴 혁명가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은 어떤 사람인가?
정도전은 이성계가 조민수와 함께 1398년 위화도회군에 성공하자, 정도전은 이성계의 천거로 성균관 대사성에 오르면서 정치력을 발휘해나갔다.
정도전은 1392년 4월 목은 이색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되자 공양왕을 퇴위시키고, 그해 7월 이성계가 개국군주(開國君主)로 추대되고 고려왕으로 즉위하였다. 새왕조의 기틀이 갖추어지자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으로 고치고 한양(漢陽)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그는 경복궁(景福宮) 궁궐·전각 대부분과 한양8개 도성문(都城門) 이름을 직접 짓고, 조선왕조 법전편찬의 기초가 된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였다. 경복궁을 둘러보면 정도전이 꿈꿔온 유학의 이상적인 정치실현의 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도전은 자신이 조선창업에 크게 기여했다는 말을 자주 술자리에서 했다고 한다.
“한(漢)나라 고조 유방이 장자방(장량)을 발탁하여 한나라를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유방에게 왕위를 열어주었다.”고 했다. 이 말은 정도전 자신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얼어주었다고 한 것이다.
이성계 태조도 1395년 10월 20일 경복궁 낙성식 연회장에서 정도전에게 하사한 “유종공종(儒宗功宗)”이란 편액을 통해 이성계도 정도전이 유학도 으뜸이고 조선창업에도 공이 으뜸이라고 화답하였다.
정도전은 고려말 난세를 고민한 진보적인 사고(思考)를 가진 신진유학자·정치가로서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시작이라고 한 민본사상(民本思想)을 최우선으로 하고, 임금에게 휘둘리지 않는 검정된 재상(宰相)중심의 신권정치(臣權政治)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치철학은 왕권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방원에 의해 묵살되고, 제1차왕자난 때 피살되면서 만고역적으로 몰렸다가 고종 때 대원군에 의해 복권되고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도전의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왕도 정치의 시작”이라는 민본사상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으로 이어져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임금이 되어 광화문 광장에 국난극복의 영웅 이순신장군과 함께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민본사상은 박근혜대통령의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건설”한다는 국정목표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적 인식이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후세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6백년전의 정도전의 민본정치사상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할 것이다.
정 성 삼
아호 송재(松齋) ․영천출생․계간 『문학예술』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 언론인, 한국신문교열기자회 부회장. 『대학의 주해와 평설』, 『삼오당 문집』등 역서외 논문 다수 있음.
첫댓글 송재형 반갑소, 비록 카페라는 한정된 공간이나마
숨겨둔 문재를 아낌없이 펼쳐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