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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페 문무자 이옥의 후예들이 합천을 방문하다
孤竹 추천 0 조회 107 16.10.05 14:07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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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10.05 16:12

    첫댓글 조장군은 조계명을 말한다. 조계명 칼에 대해 삼가면 금리 이균식 아버지(1928년생)의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교 때인 1940년쯤, 갓골 조장군의 후손인 조동훈씨 초가집 방안 찬장에 왕골로 싸서 보관하고 있던 조계명이 사용한 칼 두 자루를 보았는데, 한 자루는 녹이 쓸어 있었고, 한 자루는 번쩍번쩍했으며, 모두 칼집은 없었고, 크기는 약7,80㎝ 정도였다. 그후 일제말 공출을 피하기 위해 조동훈씨가 녹이 쓸지 않은 칼 한 자루를 1940년 초에 남명선생 선산에 묻었다”고 했다.
    조계명(曹繼明, 1568-1641)은 무과에 급제하고, 임란 때 의병투쟁을 했으며, 은진현감, 양주목사를 역임했다. 묘소는 남명 아버지 묘소 옆에 있다.

  • 작성자 16.10.05 19:05

    영의정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1536∼1623)은 남명 조식의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합천 가야에서 창의하고, 경상도 의병대장을 지냈다. 가야에 있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왜적으로부터 지킨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1623년 서인들에 의한 이른바 인조반정으로 88세에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초상화도 없다. 그런데 이옥이 "정인홍이 죽은지 1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지역민이 숭상하고 있었고, 얼굴은 늙은 여우를 닮았다"고 한 소중한 사실을 봉성문여에 기록해 둔 게 아닌가.
    조선 500년 동안 영의정을 역임한 사람이 162명이다. 경상도에서는 진주의 하륜, 안동 유성룡, 합천 정인홍 세 사람뿐이다. 159명은 경기 및 충청이 다했다.

  • 16.10.06 23:53

    뒤 늦게나마 그 날의 안내에 감사 드립니다
    아쉽게도 이옥 선생님은 화성지역 모습은 별로 남기지 않으셨지요
    삼가에서도 이옥 연구가 할발하기를 빕니다

  • 작성자 16.10.09 16:39

    ㅎ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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