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3대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이다.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기독교는 2000년 전, 이슬람교는 1400년 전에 출현하였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기독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종교이다. 지구에서 12~13억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으며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 중동과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이슬람교를 믿고 따르고 있다. 이슬람교를 회교라고도 한다.
이 종교는 1400년 전 아리비아 반도에서 마호메트의 노력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는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슬람교는 출발한다. 회교도들은 알라에게 기도한다. 그런데 사실 아라비아 어인 ‘알라Allah’는 ‘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신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과 같은 신을 말한다.
이슬람교를 마든 사람은 마호메트이다. 그는 예언자, ‘신의 사랑을 받는자’, ‘창조의 기쁨’으로 불린다. 이슬람교도들은 그를 숭배하지만, 그에게 기도하지는 않는다. 이슬람교에서 한 인간을 신과 동격시하는 것은 가장 큰 죄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수 많은 예언자나 성인 중에 하나로 여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 (유대교에서도 예수를 예언자 또는 랍비(선생) 정도로 취급한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구원자,메시아로 여기고 있다.)
사실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모두 유대교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1400년전 마호메트는 당시 중동 지방의 잡다한 신들을 모시며 수많은 민족과 신앙으로 갈라져 있던 아리비아 인의 정신세계를 하나의 신인 ‘알라’를 통해 통일한 것이다. 하지만 유대 민족만의 종교라는 유대교의 편협성을 거부하고 또한 예수를 신과 동등한 존재로 보는 기독교와도 등을 돌렸다. 이러한 교리적 차이에 의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갈등은 기나긴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포르투갈)를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면선 시작된 유럽(기독교)와 아라비아(이슬람)간의 전쟁은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마호메트는 예수 사후 57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부유한 도시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카디자와 결혼하고 10명의 부인과 2명의 첩을 거느렸다. 돈 많은 아내 카디자와 결혼함으로써 마호메트는 종교 문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40세가 되면서 그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산에서 홀로 기도하고 명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는다. “마호메트 그대는 알라의 사자로 선택되었다. 그대는 이제부터 알라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 이 말을 들은 마호메트는 “복종하겠나이다!”(이슬람!)라고 말한다. 이후 마호메트는 정기적으로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게 되고 이 계시를 모은 글이 ‘코란(꾸란)’이 된다.
마호메트가 태어난 메카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메카에는 아브라함이 세웠다는 카바(kabba)가 있었는데 카바는 수 많은 신들이 모셔진 곳이 되어 있었다. 이에 마호메트는 메카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를 멈추고 유일신인 알라만을 섬길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메카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을 부정하는 그에 대해 적대감이 강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마호메트는 그의 추종자와 함께 야트립이라는 곳으로 662년에 피신하게 된다. 이러한 피신 사건을 ‘헤지라’라고 한다. 이러한 헤지라를 이슬람교에서는 이슬람교가 메카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하며 이슬람의 달력의 1년으로 기원이 된다. 2013년은 이슬람력으로 1391년이 된다. (2013-622=1391)
마호메트가 피신한 ‘야트립’은 뒷날 ‘예언자의 도시’라는 의미의 ‘메디나’로 불리우게 되고 이슬람의 성지가 된다. 하지만 625년 메카는 이단자 마호메트를 토벌하기 위해 메디나(야트립)을 공격하고 이 전쟁에서 마호메트는 크게 패해 군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강한 군대를 조직하게 된다. 사실 이 전쟁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메카를 후원하였다. 그들의 교리와 다른 이슬람 세력이 위협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마호메트는 유대교와 기독교와 적대적인 관계를 선언하고 이러한 악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복수를 꿈꾸며 강한 군대를 양성한 마호메트는 5년 후인 630년에 복수전을 통해 ‘메카’를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2년 뒤인 632년 마호메트는 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불행히도 아들을 남기지 못한 그는 이슬람교의 후계자 문제로 역사의 크나큰 갈등의 씨앗을 남기게 된다.
‘마호메트의 후계자’, ‘이슬람의 지도자’인 칼리프의 선출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마호메트의 친구였던 ‘아부 베르크’가 1대 칼리프가 되었지만 2년 후 죽게 되자. 다른 친구였던 ‘우마르’가 2대 칼리프가 되었다. 불행히도 그도 2년 후 연이어 세상을 떠난다. 마호메트의 다른 친구였던 오트만이 3대 칼리프로 선출 되었다. 하지만 그는 칼리프가 된지 얼마 후 암살되고 만다. 마호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오트만의 경쟁자였던 ‘알리’는 암살범으로 몰리게 되고 661년 옴마아드 가문 출신의 무아위야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알리를 제거한 마아위야는 옴미아드 왕조를 세우고 마호메트의 후계자임을 선언한다. 그이 명령으로 마호메트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수나’가 만들어 지고 이로써 이슬람교의 가장 중요한 두 경전인 ‘코란’과 ‘수나’가 완성된다. 수나는 이슬람교도들의 생활의 길잡이가 되는 귀중한 경전이 된다. 무아위야가 만든 수나를 존중하는 이슬람교를 ‘수니파’라고 하는데 전체 이슬람의 90%를 차지한다.(수니파는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알리를 정통파 칼리프이면 전정한 마호메트의 후계자로 섬기는 이슬람교파를 ‘시아파’라고 한다. 시아파는 엄격하고 극단적인 면이 강한 이슬람교로서 이란을 중심으로 신봉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대결은 지속되고 있다.
옴미아드 왕조 또한 749년 아불 아바스에의 의해 물러나게 되고 아바스 왕조가 시작된다. 그리고 아바스 이후 말 만수르 칼리프가 통치하게 되는데 그가 통치하던 이슬람 세계가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로 일컬어지는 동화 세계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는 티그리스 강가에 아름다운 도시 ‘바그다드’라는 알라의 도시를 세운다. 알 만수르는 바그다드를 경제적으로 번영시켰다면 그의 손자 하룬 알 라시드 칼리프는 바그다다를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든다. 사실 이슬람의 가장 큰 공로는 고대 그리스의 예술, 철학, 자연과학 등의 자료를 보존하고 이를 다시 유럽으로 돌려보내 줌으로써 유럽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만약 하룬 알 라시드의 명령에 의한 수많은 고대 그리스의 저작들에 대한 기록과 보존이 없었다면 현재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통해 문화와 역사적 자료에 대한 보존이 갖는 가치는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모슬렘’ 또는 ‘무슬림’이라 한다. 그들은 코란을 믿고 암송한다. 코란을 경전으로 삼는 이슬람교는 매우 관대하다. 코란에 보면 “알라를 믿는 자,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도를 막론하고 신을 믿는 이, 선한 일을 하는 이들은 모두 신의 축복을 받으리라”(수라2, 62절)라는 구절도 나옵니다. 코란은 구약의 모세5경인 토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두 모세5경을 공유하는 같은 뿌리를 갖는 다른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큰 교리상의 차이는 예수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 보지만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알라) 이외에는 신이 존재할 수 없기에 예수는 단지 알라가 보낸 선지자인 인간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일부일처를 중시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성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때문에 일처다부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죽은 다음에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지만 코란은 천국은 알라 한 분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봅니다. 다만 성서에서 말하는 천국과 비슷한 개울이 흐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정원(Garden)’은 약속합니다. 그곳은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는 천국과는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