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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가이담(訓家俚談) : 개요
아래 내용은 현재 공개된 백과사전·고전문학 데이터베이스·지역 자료·도서관 목록으로 확인되는 범위를 종합한 것이다. 자료마다 작가 이름과 생몰년, 창작 시기 표기가 일부 다르므로 그 차이도 함께 밝힌다.
1. 기본 정보
항목 내용
작품명 훈가이담(訓家俚談)이다.
다른 이름 훈가사(訓歌辭)라고도 한다.
작가 일반적으로 배이도(裵爾度)로 표기한다.
창작 시기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은 1781년에 지은 작품으로 해제한다.
시대 조선 후기, 정조 초기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갈래 교훈가사·훈계가사·장편가사에 해당한다.
형태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쓴 국한문 혼용 필사본이다.
분량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총 355행이다.
구성 가족윤리·사회윤리·자기수양·학문·농업 등을 다룬 15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대상 작가의 자식과 후손을 비롯한 집안의 ‘후생’을 주된 청자로 삼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작품을 장편가사로 분류하며 훈가이담을 훈가사의 이칭으로 소개한다.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은 배이도와 1781년이라는 작가·연대 정보를 제시한다.
2. 제목의 뜻
훈가이담(訓家俚談)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훈가(訓家)는 집안사람을 가르치고 훈계한다는 뜻이다.
이담(俚談)은 꾸미지 않은 평이한 말, 민간에서 사용하는 쉬운 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제목 전체는 대체로 “집안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쉬운 말로 풀어 쓴 이야기”라는 의미가 된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권위 있는 문학작품으로 높여 부르기보다는 ‘이담’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그러나 홍대용을 비롯한 주변 인사들은 이를 노래로서 완성된 작품으로 평가하여 ‘훈가사’라고 불렀다. 작가가 사용한 본래 제목에 가까운 것은 훈가이담이고, 후대 문학사에서 널리 사용된 제목은 훈가사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담’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지만 소설이나 설화가 아니다. 일정한 율격을 지닌 조선 후기의 가사문학 작품이다.
3. 작가 배이도
3.1 이름과 생몰년 문제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은 작가를 배이도(裵爾度, 1706~1786)로 기록한다. 예천군 자료에 인용된 문학 연구 내용 역시 배이도와 1706~1786년이라는 정보를 사용한다.
다만 자료상의 혼란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자를 裵爾度라고 제시하면서 한글 이름을 ‘배이탁’이라고 적고 있다.
예천군 게시 자료의 첫 인물 설명에는 1726~1787년이라고 되어 있으나, 같은 페이지에 인용된 문학 연구에서는 1706~1786년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배이도, 1706~1786년을 중심 표기로 사용하되, 생몰년은 자료에 따라 이견이 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3.2 출신과 신분
배이도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 사람으로 전해진다. 선대는 영남의 사족, 즉 지방 양반 계층이었지만 가문이 몰락하면서 예천의 이족 또는 지방 관청 실무층이 된 것으로 설명된다. 그는 지방 관청에서 무속(武屬)으로 활동하고 첨정이라는 직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여기서 무속은 무당과 관련된 巫俗이 아니라 군사 업무에 속한 사람을 뜻하는 武屬이다.
배이도는 단순한 하급 관리가 아니라 글과 병법에 모두 식견을 지닌 인물로 평가되었다. 홍대용은 배이도가 젊어서 군대에 종사하여 병법을 익혔고, 자신도 그에게 진법을 묻곤 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전한다.
3.3 성품과 지역사회에서의 평가
관련 기록은 배이도를 근면하고 곧으며 인정이 많은 인물로 묘사한다. 만년에 가난 때문에 예천을 떠나려 하자 주민들이 연명으로 관청에 소지를 올려 그가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여러 마을의 무인들이 돈을 모아 여섯 칸짜리 초가집을 마련해 주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작품의 필사본 뒤에는 배이도의 유임을 요청한 55명의 연명소지가 부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배이도가 단순한 개인 작가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도덕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 창작 연대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은 이 작품이 1781년에 지어졌다고 해제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표제 설명에는 ‘영조 때’라고 적혀 있으나, 1781년은 정조 재위기이다. 더욱이 작품 뒤에 후기를 쓴 홍대용은 1779년 영천군수에 임명되어 1783년까지 재임하였다. 따라서 작품의 성립과 초기 유통은 정조 초인 1779~1783년 무렵으로 보는 것이 자료상 자연스럽다.
홍대용의 문집인 『담헌서』에는 「제배첨정훈가사(題裵僉正訓家辭)」, 즉 ‘배 첨정의 훈가사에 쓰다’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작품과 작가의 존재 및 당시의 평가를 확인해 주는 중요한 외부 기록이다.
5. 작품의 형식
훈가이담은 국문과 한문 어휘를 섞어 쓴 필사본 가사이다. 기본 율격은 한 행을 네 개의 의미·호흡 단위로 나누는 4음보이며, 전체 분량은 355행이다.
형식상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5.1 항목식 구성
작품은 하나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가족관계와 생활윤리를 항목별로 나열하고 각각의 원칙을 설명한다. 오늘날의 윤리 교본이나 가정생활 지침서에 가까운 구성이다.
5.2 청자 지향적 발화
화자는 후손에게 직접 말을 건다. 실제 작품에는 “뭇노라 후생들아”, “이보아 후생들아”와 같이 청자를 직접 부르는 표현이 나타난다. 명령형과 청유형을 사용하여 행동을 금지하거나 실천을 권한다.
5.3 암송과 낭송에 적합한 문체
4음보의 반복적 리듬, 대구 표현, 항목식 배열은 내용을 기억하고 낭송하기 쉽게 한다. 홍대용은 이 작품의 곡조와 음률이 정제되어 관현악에 올려 읊을 만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한다. 당시 읍내 사람들 사이에서 작품의 낭송이 끊이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훈가이담은 묵독용 책인 동시에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소리 내어 읽고 기억하는 구전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6. 15개 항목의 구성과 내용
작품은 다음 15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각 항목의 행수를 합하면 총 355행이 된다.
순서 항목 행수 핵심 내용
1 조손(祖孫) 25행 조상과 후손의 관계, 가문의 계승과 조상에 대한 공경을 다룬다.
2 부자(父子) 49행 부모의 은혜와 자식의 효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도리를 강조한다.
3 신민(臣民) 26행 임금과 백성,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설명하며 충성과 공적 책임을 권한다.
4 부부(夫婦) 32행 부부 사이의 분별·존중·화합과 가정질서를 다룬다.
5 형제(兄弟) 35행 형제간 우애와 갈등 억제, 재산이나 감정으로 인한 불화를 경계한다.
6 붕우(朋友) 30행 친구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믿음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7 순천성무화목(順天性務和睦) 14행 타고난 선한 본성을 따르고 가족·이웃과 화목하기를 힘쓰라고 한다.
8 정기심결기행(正其心潔其行) 23행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깨끗하게 하라는 자기수양의 원칙이다.
9 수천명수기분(守天命隨其分) 13행 천명을 지키고 자신의 처지와 본분을 따르라고 한다.
10 인인과신오신(忍人過愼吾身) 16행 남의 잘못은 참고 자신의 행동은 더욱 삼가라고 가르친다.
11 물해인구환란(勿害人救患亂) 18행 남을 해치지 말고 위기와 환난에 처한 사람을 구하라고 한다.
12 근시서윤기신(勤詩書潤其身) 26행 시와 경서를 부지런히 익혀 인격과 교양을 갖추라고 한다.
13 조기심태기한(操其心兌飢寒) 18행 마음을 굳게 다스리고 가난과 굶주림, 추위 같은 생활고를 견디는 태도를 다룬다.
14 무농상윤기옥(務農桑潤其屋) 24행 농사와 양잠에 힘써 집안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라고 한다.
15 자탄(自嘆) 6행 작가가 자신의 처지와 삶을 돌아보며 작품을 마무리하는 후기적 부분이다.
분량이 가장 긴 항목은 49행의 부자이다. 다음으로 형제 35행, 부부 32행, 붕우 30행 순이다. 이는 작품이 국가적 정치윤리보다 가족 내부의 관계와 일상생활의 질서를 더 상세하게 다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7. 핵심 사상
7.1 삼강오륜
작품의 가장 중심적인 사상은 유교의 삼강오륜이다.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형제, 친구의 관계마다 지켜야 할 도리를 설명한다.
다만 추상적인 유교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족 간의 말과 행동, 친구 선택, 갈등을 참는 법, 어려운 사람을 돕는 법과 같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원칙으로 바꾸어 제시한다.
7.2 효와 가족질서
효는 여러 윤리의 출발점으로 설정된다. 부모에 대한 봉양뿐 아니라 조상을 기억하고 가문의 명예와 생활기반을 후손에게 이어 주는 것까지 효의 범위에 포함한다.
부부와 형제의 화목도 강조한다. 개인의 감정보다 가정 전체의 안정과 지속을 우선하는 관점이다.
7.3 충성과 공적 책임
신민 항목은 집안의 도덕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확대한다. 가족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국가에도 충성해야 한다는 전통적 충효일치의 논리가 나타난다.
7.4 자기 절제
작품은 남의 과오를 쉽게 비난하지 말고 자신의 행동을 먼저 살피라고 가르친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실을 깨끗이 하며, 분노와 욕심을 조절하고 가난 속에서도 품행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7.5 학문과 독서
시와 서책을 공부하는 일은 단순한 출세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윤택하게 하는 수양법으로 제시된다. 배이도 자신이 무반·지방 실무층에 속하면서도 문자와 문학을 중시한 태도가 반영된 부분이다.
7.6 근로와 경제생활
훈가이담은 도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농사와 양잠을 부지런히 하여 집안을 윤택하게 만들라고 강조한다. 이는 경제적 자립과 도덕적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도 빈곤을 경험한 작가의 처지를 고려하면, 근면과 농업을 강조한 부분은 추상적인 권농이 아니라 가문의 생존과 재건을 위한 현실적 조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7.7 공동체적 상호부조
“남을 해치지 말고 환난에 처한 사람을 구하라”는 항목을 별도로 둔다. 훈가이담의 윤리는 가족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까지 확대된다.
8. 작품을 가사 형식으로 쓴 이유
연구자들은 교훈의 대상을 고려한 장르 선택으로 해석한다. 한문 문장은 한문 소양이 부족한 후손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가사 형식은 우리말을 중심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고 반복해서 낭송하기에도 적합했기 때문이다. 또한 명령·권유·설명·설득을 길게 이어 가기 쉬운 장르였다.
즉 훈가이담은 다음과 같은 교육 기능을 수행한다.
어려운 유교 개념을 우리말로 풀어 전달한다.
율격을 통해 내용을 외우기 쉽게 한다.
청자를 직접 부르며 주의를 집중시킨다.
경전의 원칙을 일상 행동규범으로 바꾼다.
개인적인 가훈을 지역사회가 공유하는 교훈으로 확대한다.
9. 홍대용의 평가와 당시의 유통
홍대용은 배이도를 오래 알고 지낸 인물로 전한다. 그는 배이도의 군사적 능력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적 재능은 충분히 알지 못했다가 훈가사 15편을 보고 작품의 리듬과 음악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홍대용의 후기에는 작품이 읍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낭송되고 있다는 취지의 기록이 있다. 이는 작품이 배씨 집안에서만 읽힌 사적인 가훈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진 텍스트였음을 나타낸다.
필사본 뒤에는 다음과 같은 부속 자료가 있었다고 전한다.
배이도 자신의 후기이다.
홍대용을 비롯한 군수·현감·지역 유지의 후기이다.
배이도의 유임을 요구한 주민들의 연명소지이다.
따라서 현전 필사본은 작품 본문만을 담은 문학책이 아니라 작가의 사회적 평판과 작품 수용 양상을 함께 보여주는 복합 문서라고 할 수 있다.
10. 문학사적 의의
10.1 비사대부 남성 작가의 가사
가사는 흔히 사대부 문학이나 여성의 내방가사로 설명되지만, 배이도는 몰락한 사족 출신의 지방 관청 실무자이자 무인 계층이었다. 그의 작품은 조선 후기 가사 창작층이 정통 사대부에 한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0.2 남성가사와 내방가사의 연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작품의 연대와 성격이 남성 중심의 교훈가사에서 여성의 내방가사가 파생되는 과정과 관련된다고 평가한다. 특히 집안의 생활규범과 가족관계를 세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후 계녀가·규방가사와 비교할 수 있다.
다만 내방가사의 발생 시기를 훈가이담 하나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여러 작품의 연대와 전승 계통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문학사적 가설이다.
10.3 문자문화와 구술문화의 결합
작품은 필사본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낭송과 암송을 전제로 한다. 문자로 보존된 윤리 지식이 입을 통해 가족과 지역사회에 전달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10.4 몰락한 가문의 문화적 대응
배이도의 가문은 사회적 신분이 하락했지만 유교적 가법, 학문, 문학적 교양을 유지하려 했다. 훈가이담은 가문의 경제적·신분적 몰락에 맞서 도덕성과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홍대용도 배이도의 선대가 영남 사족이었으나 뒤에 이족이 되었다는 취지로 기록하였다.
11. 문학적 평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존 해설은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훈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순수한 문학적 가치는 높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평가는 서정성이나 상상력 중심의 기준에서 나온 견해이다. 훈가이담의 가치는 다음 영역에서 더 분명하다.
조선 후기 지방사회의 생활윤리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지방 실무층과 몰락 사족의 문화의식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가훈·교훈서·가사문학이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작품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낭송되고 인정되었는지 알려준다.
가족질서와 경제생활, 학문, 농업을 하나의 윤리체계로 묶은 생활사 자료이다.
한문 중심의 유교 지식을 평이한 국문 가사로 전달한 교육사 자료이다.
따라서 서정가사로서의 미적 성취보다 문학사·사회사·교육사·생활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12. 현대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독해
훈가이담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적 질서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현대 독자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시대적 한계
부부관계와 가족관계를 위계적으로 파악하고, 개인의 자유보다 가문과 질서 유지에 우선권을 둔다. 임금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신분적 본분을 따르라는 가르침 역시 전근대적 신분질서를 반영한다.
현재에도 해석 가능한 가치
반면 자신의 행동을 먼저 반성할 것, 남의 잘못을 참고 용서할 것, 어려운 사람을 도울 것, 배움에 힘쓸 것, 경제적으로 자립할 것, 가족과 이웃의 갈등을 줄일 것이라는 내용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을 오늘날의 윤리 교과서로 직접 적용하기보다는, 18세기 지방 지식인이 이상적인 인간과 가정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
13. 원문과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곳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의 훈가이담 항목에는 필사본을 입력대본으로 한 원문 텍스트, 작품 해제, 주석 및 영인본 이미지가 수록된 것으로 안내되어 있다. 작가명은 배이도, 생몰년은 1706~1786년으로 제시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의 관련 가사문학집 목차에는 제20권 477쪽과 493쪽에 훈가이담이 각각 한 차례씩 수록되어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수록본이나 이본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목차 정보만으로 두 본의 구체적인 차이를 확정할 수는 없다.
주요 참고 연구는 다음과 같다.
김용숙, 「훈가사」, 『청파문학』 제10집, 1971년이다.
최강현, 「훈가이담」, 『가사문학록』, 새문사, 1986년이다.
임기중 편,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의 훈가이담 해제·원문 자료이다.
14. 시험·과제용 핵심 정리
훈가이담은 조선 후기 예천의 지방 무인·실무층 인물인 배이도가 후손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355행의 교훈가사이다. 훈가사라고도 하며, 조손·부자·신민·부부·형제·붕우 등 15개 항목을 통해 삼강오륜, 자기수양, 학문, 근면, 농업, 이웃에 대한 구제를 강조한다. 국한문 혼용 필사본이며 4음보의 율격과 후손을 직접 부르는 명령·권유형 문체를 사용한다. 홍대용의 후기가 전하고 당시 지역 주민들이 작품을 널리 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정적 문학성보다는 조선 후기의 가족윤리, 지방사회, 신분 변동, 교육과 구술문화를 보여주는 문학사·사회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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