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뜨자 마자 그냥 뛰쳐 나갔으므로 잠자리 조차 그대로 있어 몸이 바빠졌다. 짐을 꾸리기 전에 주문된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토스트에 오트밀스프와 야채 스프링롤 그리고 밀크 티를 마시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와 정신없이 짐을 꾸렸다. 여행이후 이렇게 허둥대며 짐을 꾸리기는 처음인것 같다.
9시 45분 출발... 오늘도 늦은 출발이다.
포터 펨파가 우리 짐을 매고 나가면서 오늘 일정은 매우 힘든 코스라고 귀띰을 한다. 비단 펨파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예견한 일이다. 생애 최고 높이의 해발 5,535m의 패스를 넘는데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콩마라 패스를 넘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해발고도가 높을 뿐만아니라 하루에 걷기엔 너무나 빡센 기인 코스에 롯지가 하나도 없기때문에 우리처럼 중간지점-콩마라 패디에서 야영을 하기위해 추쿵에서 야영 장비를 또 챙겨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천막 포터가 한명 더 늘었다.
시작부터 만만한 코스가 아니었다. 롯지를 벗어나자 마자 바로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이 바닥에 좌악 깔린 수풀과 바윗돌 사이로 넓다란 냇물 처럼 흘렀다. 돌도 미끄럽고 수풀도 젖어서 여간 미끄럽지 않았다. 여간 조심해서 걸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만 일이 터지고 말았다. 대장님이 바윗돌에 미끄러져 물에 빠지신 것이다. 순간 경악을 했는데...다행히 재빨리 일어나 등산화에 물이 들어간것 같지는 않았고, 괜찮다고 하신다.(사실 나중에 안일이었지만 좀 다치셨다고 한다. )
마치 늪지대와도 같아 힘들었던 광활한 저지대를 지나 드디어 오르막에 도달했다. 문득 뒤돌아 보니, 벌써 까마득해진 추쿵의 모습과 넓다랗게 흐르는 늪지대, 그리고 광활한 너덜 바위 지대가 어우러져서 판타스틱한 풍광을 자아냈다.
천천히 걸어오르며 뒤돌아 볼때 마다 펼쳐지는 추쿵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운무가 뒤덮어 쌀쌀한 날씨때문에 패딩에 고어쟈켓, 고어장갑, 배낭커버까지 쒸우고 카메라도 배낭에 집어 넣었지만, 꺼내들 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판타스틱한 장면 뒤로 새벽에 보았던 어마 어마한 아마다 블람의 하얀 설산이 거대한 모습으로 턱 버티고 있어야 하지만, 적어도 이순간은 벌써 그 모습을 운무가 다 덮어 버렸다는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너무 엄청나서....
아!! 그래~ 운무가 잔뜩 끼어서 사진이 잘 나올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콩마라 패스 넘는 길이 얼마나 판타스틱했는 지 ....기록 사진은 남겨야지.
바위 너덜지대를 지나니 끝없이 이어지는 매혹적인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길 섶에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아직도 얼어붙은 얼음을 다 떨구어 내지 못한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특히 설연화는 그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고 이뻐서 마치 크리스탈 꽃을 보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춥고 손도 시려웠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수없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며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맘같아선 점 4 렌즈를 꺼내서 제대로 찍고 싶었지만... 이 날씨에 그럴 여력은 없었다.
한참 이렇듯 야생화에 홀려있는데, 저만치서 총알같은 속사포가 터져온다.
"야~ 너 그렇게 이 고도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 고산병 온다~ 너 라닥에서도 야생화 찍다가 밤에 고산증 왔잖아~"
야생화에 홀려 힘든 줄도 모르고 한 참을 걸어 올랐다.
아!! 세상에~~ 이건 또 뭐야~~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곳에 이렇게 광활한 평원이 있다니...
노오란 고산 잔디 위에 좌악 피어있는 에델바이스와 설연화... 그리고 파아란 나팔꽃 같이 생긴 야생화와 빠알간 꽃.... 그리고도 형형색색 수없이 많은 빛을 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운무속에서 물방울을 머금은 채 온 평원을 뒤덮고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배낭을 맨 채로 벌렁 누었다.
"세상을 다 가진 자!" "한없이 자유로운 자!"
한 참을 그렇게 누워 세상을... 히말라야를... 콩마라 패스를 ....만끽 했다.
그리곤 문득 생각이 나서 배낭을 열고 다른 카메라를 꺼냈다. 한참을....사방에 깔린 보물을 찾아 흥분에 겨운듯 야생화에 또 몰두했다.
고개를 들어 가득한 운무속을 바라보았다. 잠시 새벽에 나타났던 아마다블람을 운무속 가득 떠올렸다. 아!! 그렇구나~ 저 운무속엔 장엄한 히말의 하얀 설산이 들어차 있구나~ 정말 이곳이...어마 어마한 곳이었어.
잠깐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지금...그 설산을 못 보는 대신 기막힌 천국의 다른 모습을 보고 있잖아~ 운무에 휩쌓여 살얼음에 젖어있는 기막힌 야생화들.... 그 형언할 수 없는 매혹적인 빛깔.... 마치... 얼음궁전에 와 있는 것만 같잖아~ 신비스런 공주님이 된듯한 기분 마저 들어~ ㅎㅎ
잠시 쉬며 초콜릿과 허브 티를 마셨다. 추위에 마시는 따끈하고 향긋한 향내를 풍기는 티는 온 몸 깊숙이까지 파고들며 행복감을 더해 주었다. 그 어디서 마시는 티가 이보다 더 매혹적일까....
다시 배낭을 챙기고 걷기 시작했다. 오르면 오를 수록 야생화 천국이다. 길을 한 가운데로 해서 까마득한 아래 위로 펼쳐지는 에델바이스 언덕에 거친 히말라야가 아닌 아름다운 오스트리아를 떠 올렸다.
'사운드 오브 뮤직' 그려~ 이 매혹적인 광경에서 어찌 영화의 주인공이 되지 않겠어~
그때 저만치서 우리의 포터...펨파와 푸리가 보인다. 헐!! 벌써야?? 벌써 오늘의 목적지에 닿아 짐을 풀어놓고 우릴 마중 나온거야??
알고 보니, 그건 아니었고, 날씨가 추우니, 티를 마시기 위해 적당한 곳에 짐을 풀어놓고 우리를 마중나온 것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한바탕 둘의 사진을 찍어주고는 배낭을 그들에게 주고 걸었다.
어?? 문득 내 배낭을 매고 뒤따라 오는 푸리를 보니, 장갑도 없이 맨손이다. 세상에~ 장갑을 끼어도 손이 시려운데.... 털장갑은 카고백에 있고...문득 배낭에 고어 속장갑으로 끼려고 가지오 온 앙고라 털장갑이 생각났다. 손목에 털이 달린 여자 장갑이었지만, 추워 손이 시려우니 얼른 받아 낀다. 그나마 워낙 푸리 손이 작아서 잘 맞으니 다행이다.
한참을 걸으니, 거대한 바위 산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포터들.... 드넓은 평원에 거대한 바위 더미가 있어 바람을 막아주니, 잠시 이곳에서 쉬며 뜨거운 차를 마시고 몸을 데워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눕체빙하를 건너 콩마라 패디까지 가려면 적어도 1시간 반을 더 걸어야 하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함박눈때문에 그냥 오늘은 이곳에서 사이트를 구축하기로 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언제 텐트를 칠까....생각 들었지만, 순식간에 집은 만들어 졌고, 그 작은 공간에 우리의 짐까지 완벽하게 드리워졌다.
인간의 적응력에 한계는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움직임에도 금새 한웅큼의 눈이 덮여지는 가운데서도 그 작은 공간에서 널널하게 필요한 짐을 풀어내고, 에어 매트를 불어서 깔고, 침낭 펴고...코인 티슈를 적셔서 크린싱 크림으로 완벽하게 세안도 했다.
그러는 사이 키친보이는 따끈한 티도 배달하고, 밖으로 나오기 불편하다고 라면까지 텐트로 배달해 주었다.
아!! 라면이야~ 함박눈이 쏟아지는 콩마라 패스에서 얼큰한 신라면이라니... 역시 산에서는 매콤하고 얼큰한 라면이최고지~
라면을 먹자 마자 침낭속으로 들어갔다. 추위에 얼었다가 따듯한 침낭속으로 들어가니 잠자는 시간이 뭐 정해져 있을까....저절로 잠이 쏟아졌다.
한바탕 꿀낮잠을 자고나니, 언제 눈이 쏟아졌냐 싶게 눈이 그쳐 있었다.
밖으로 나가 들판 가득 피어 있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운무가 벗겨지면서 거대한 설산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마다 블람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롯지에서 그렇게 멀리까지 걸어 올라가 보았어도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던 아마다블람이 오늘 오전 내내 반대쪽으로 걸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본 아마다 블람보다도 훨씬 더 가깝게 보였다.
흥분에 겨워 지른 환호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몰려든 운무는 거대한 설산을 흔적도 없이 또 삼켜버렸다. 그러나 우리의 흥분은 계속 되었다. 왠지 내일 새벽엔 날씨가 좋아져 추쿵에서 보다도 더 가깝게 저 엄청난 아마다블람을 볼것만 같았기 때문에....
저녁을 일찌감치 먹었다. 오늘 새벽에 새 김치를 담그었다고, 묵은 김치를 가지고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냈다. 컬리플라워 튀김도 만들고, 늘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는 김치찌게를 이곳 콩마라 패스에서 먹으니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나~ 아침엔 새벽부터 아마다블람에 홀려서 너무 오랫동안 추위에 걸어서였는지 밥이 먹히지 않았는데... 오랫만에 밥을 2공기나 먹었다.
해발 5500m 의 콩마라 패스에서.... 날씨도 이렇게 나쁜데, 밥을 2공기나 먹고... 고산증은 커녕 컨디션이 아주 좋다.ㅎㅎ
4월에 ABC를 다녀오고, 이어서 7월에 히말라야 라닥을 다녀온것이 고산 적응 훈련에 제대로 도움이 된것만 같다
낮에 한바탕 낮잠을 자서 일까.... 눕기만 하면 쏟아지던 잠이 쉬이 들지 않는다.
그려~ 이참에 그동안 밀렸던 일기나 쓰자. 어쩌면 그동안 너무 일찍 잠들어 오랫동안 자서 그리 자꾸 꿈을 꾸는 지도 몰라.
그나 저나 병석에 계신 친정엄마때문인 지, 연일 불안한 꿈을 꾼다. 덕분에 그 어느때 보다도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지만... 별일 없어야 할텐데... 통신도 두절되어 연락도 안되고... 설사 연락이 되어 소식을 안다해도 어찌 갈 방법도 없고.... 꿈까지 연일 꾸니,불안한 마음이 자꾸 가중된다. 앞으론 좀 늦게 잠들어 아예 푸욱 죽어서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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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베가
첫댓글 점점 추워지네요 겨울분위기가..
옷도 방한복으로 바뀌시고 설산들도 눈앞에 가까워져가고
님은 힘드셔 가겠지만 구경만하는 제눈과 마음은 션~해집니다^^
ㅎㅎ
힘들다기 보단 행복에 겨웁기만 했어요.
다시보니 더욱 그러네요.
눈에 선연한 것이 가슴이 뭉클해져요.
20년 전엔 몰라서 못간 길, 10년 전엔 갈 수 없어 못 간 길,
천천히 따라 가고 있습니다.
왠지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그래도 가고싶던 길을 뒤늦게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죠?
저 역시 댓글 주시는분 따라 수없이 걷습니다.
그때 마다 느낌이 달라진다는게 참 좋네요.
고지대의 척박하 환경속에서도 저렇게 아름다운 야생화가 필 수 있다니...
그래서인지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연합니다.
그 엄청난 콤마라 패스를 에델바이스와 환상적 야생화가 뒤덮고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살짝 얼어붙은.. ..
매혹적인 얼음궁전이었어요.
행복지수가 높을만 합니다요. 농사 안하니 풍수해 걱정 없고 등짐은 습관화 되었으니 짐 지나 안지나 같고 아둥바둥 생활
걱정 할 거 없고 보이는 것은 절경이고 연중 방문손님의 찬사 받을 일이 전부이니 행복 밖에 더 없겠지오...
그런가요?
엄청난 대자연과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으니 교만해질 수가 없는거지요.그러니 행복한 거예요.
생전 처음 보는 환상적인 장엄함 속에 있으면 그 풍광의 아름다움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이 안되는 그 무엇이 있답니다.그래서 저곳에 저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져요.그 순간은 적어도 아무 욕심도 없고..교만할 수가 없거든요.ㅎㅎ
그리고 지난해 네팔 랑탕지역에 엄청난 지진도 있었지만 수시로 일어나는 산사태는 상상을 초월하지요.우리나라의 태풍으로 인한 재해와는 비교도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