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귀남이’에 얽힌 이야기(하귀남)
나는 마산 회성동에서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지금 살고있는 곳도 회성동이지만 원래 내 본적은 마산시 월영동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그 곳에 계속 사셨고 나도 월영동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은 지금의 경남대 앞이다. 경남대학교 교문에서 좌측으로 내려오면 시장가는 길이 있는데 그 입구에 내가 살던 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에 편입되어 집은 철거되고 없고 그 위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넓은 도로만이 펼쳐져 있다.
그렇지만, 한번씩 경남대에 들를 일이 있으면 나는 꼭 그 자리에 가본다. 내가 태어나 10살 언저리까지 살던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남대 앞이 많이 개발되어 원래 있었던 시장도 없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보려고 가 보곤 한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다. 내 형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5남 2녀....아들 다섯에 딸 둘...내 이름이 '귀남'이라서 많은 사람들은 내가 3대독자쯤 되는 줄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께서 독자였고 원래 우리 집안이 손이 좀 귀한 편이라서 아버지께서 자식 욕심이 많으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첫째 형을 낳고나서 이름을 짓는데 작명소에서 '귀문(貴文)'이라고 받아오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머지 형제들에 대해서도 '귀(貴)'자를 가운데 넣기로 하고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따라서 둘째 형은 '귀성(貴星)', 누나는 '귀순(貴順)', 동생은 '귀룡(貴龍)'으로 하게 된 것이다. 다만 세째형은 '일성(日成)'으로 하여 '귀'자를 넣지 않았는데 애석하게도 아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 이유를 듣지 못해 지금까지도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 집의 형제들의 이름에 '귀'자가 들어가니까 한번씩 사람들이 우리 집을 '귀곡산장'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사실 이름에 '귀'자가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서 어릴 때에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귀신'이라고도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왜 내이름을 '귀남'으로 지었느냐고 따져 물은적도 있다. 그럴때 마다 아버지는 '이놈아 니 이름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느냐. 너를 낳을 때 할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큰 강물 가운데에서 왠 사내아이가 조그만 배에 실려 떠다니는 것을 네 할아버지가 건져내어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이상하다 싶고 왠지 큰 인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니가 태어났는데 그래서 니 이름을 그렇게 지은거란다. 너는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다' 하시며 이름을 풀이해 주시곤 했다. '귀신'이라고 놀림을 받다가도 아버지로부터 이름 풀이를 듣고 나면 나는 다시 위로가 되어 돌아서곤 했다. 그냥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란 걸 알면서도 왠지 아버지로부터 그 말을 듣고 나면 가슴이 뿌듯해지곤 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내 이름은 좀 단순하면서도 특이하기도 하다. 물 하(河)자에 귀할 귀(貴), 사내 남(男)자....뜻을 풀이해보면, 큰 강가의 귀한 사내 아이라는 뜻인데....꼭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비슷한 느낌이다. 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강대해지는 것을 막기위해 이집트 왕 파라오가 신생아로 태어난 이스라엘 민족 중 사내아이는 다 죽이려 했던 장면이 나온다. 모세도 그 중 한명이었는데 파라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기위해 그 어머니가 바구니에 모세를 싸서 강가로 띄워보내고 이를 파라오의 딸이 건져내어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장성하여 장차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큰 일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의 이야기를 몰랐겠지만,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내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그 후 교회를 다니면서 읽게 된 성경의 이야기 중 모세의 이야기가 나와 관련이 있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도 하였다. 정말이지 모세처럼 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을 가진 적도 있었다.
내 이름과 관련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젠가 유행했던 텔레비젼 드라마 '아들과 딸(백일섭 최수종 주연)'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그 드라마에서 3대독자로서 집안의 온갖 귀여움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아들의 이름이 바로 '귀남'이(최수종 분)였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꼭 여자같은 이름 때문에 상당히 쭈뼛거리기도 하였는데 그 드라마가 뜬 뒤로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어떤 이는 날더러 손이 귀한 집 아들로 여기기도 하였다. 심지어 그 드라마에서 귀남이의 쌍둥이 누이로 나왔던 '후남이'(김희애 분)를 들먹이며 누나가 있는지를 물어보곤 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드라마에서도 귀남이는 법대생으로서 사법시험을 공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끝내 합격하지 못하고 공부를 포기한 뒤 은행으로 취직했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결국 다시 사법시험을 공부하기 위해 은행을 그만두고 산으로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드라마와는 달리 나는 다행히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였기 때문에 은행에 취직할 일은 없었다. 아마, 나도 끝내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드라마에서의 귀남이처럼 은행이나 다른 직장에 취직을 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 드라마가 뜬 뒤로부터 나는 내 이름 석자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내 이름 석자에 얽힌 이야기도 다시 새기게 되었고, 그 이름의 뜻대로 '귀한 사내아이'로 자라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자녀의 이름을 짓는데에 대단히 신경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름에 맞춰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아직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귀한 아들'의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내 삶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몸을 바치는 '귀남'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이름을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지어주신 부모님의 뜻에 부응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사람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옛말을 실현시켜 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꿈꾸는 '귀남'은 귀족같은 모습이 아니다. 낮은 자세와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머슴'같은 일꾼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또는 계층적으로 귀하다고 자평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에서 그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다 라는 평을 듣는 '귀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