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자극적이지 않은 일일 드라마 “금이야 옥이야”
많은 사람들이 일일 드라마를 보면서 한숨을 쉬고 저런 수준 낮은 드라마를 왜 만드는 거냐고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 없이 돈이 투자 되어 볼거리가 만들어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일일 드라마의 Target Audience, 즉 수요층은 절대적으로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의 여성층이다. 이들의 성향은 대단히 보수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래서 웬만한 허술한 내용은 그냥 넘어 간다. 그들의 시간을 때워주는 역할을 해 주면 그만이다. 수요층이 그런 즉, 배경 음악도 그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80년대 말, 90년대 인기 있던 대중음악을 리메이크해 집어 넣는다.
이런 조건과 배경이다 보니 드라마 작가들은 서슴치 않고 무리수를 집어 넣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줄거리에 있을 수 없는 캐릭터도 수요층의 흥미를 끌 수만 있다만 과감하게 삽입해 버린다. 일일 드라마 작가는 아니지만 일련의 무리수를 마구 집어 넣어 막장 드라마 작가라고 불리우는 대표적 작가가 바로 김순옥 작가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인물, 억지 스토리를 자신만의 기술로 버무려 마구 뿌려 놓는다. “왔다 장보리” 정도는 그래도 애교 수준이다. 개막장이라고 욕하면서도 보는 그녀의 드라마, 대표적인 것이 “펜트하우스”다. 이 막장 드라마는 시즌 3편까지 제작 되었다.
막장 드라마가 오늘의 주제는 아니다. 일일 드라마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일일 드라마 선에서만 이야기 해 보자. 어쨌든 일일 드라마에서 막장이 나오는 것은 김순옥식 이유와는 조금 다르다. 일일 드라마는 120편을 제작해야 하는 긴긴 여정의 드라마다. 그래서 일일 드라마는 태생적으로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제작비가 한정적이니 유명 배우도 쓸 수 없다. 로케이션도 제한적이고 세트도 많이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쓰는 방법이 가족별로 세트를 지어 놓고 그 세트에서만 촬영을 하고 정말 드물게 야외 촬영을 나간다.
오늘 소개할 “금이야 옥이야”도 이러한 법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잔디네 집 세트, 옥선생 집 세트, 주변인물인 호랑 미술학원 세트, 옥선생 남자친구 동사장집 세트….. 요런 세트를 만들어 놓고 그 세트에서 되도록이면 촬영을 하고 극히 제한적으로 야외 로케 촬영을 한다. 그러니 작가의 상상력도 장소에 의해 제한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무리수를 집어 넣는 쉬운 방법을 쓰게 된다.
너무 서론이 길어졌다. 위의 여러 조건들 때문에 허술한 막장 스토리가 용서가 되는 일일 드라마인데 그나마 오늘 이야기 하고 있는 “금이야 옥이야”는 자극적 내용 없이 가족간의 사랑과 미혼부와 재벌집 입양 딸의 사랑을 재료로 순항 중이다. 시청률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물론 신데렐라 스토리의 남성판이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용납 될 수 있다. 같이 방영되고 있는 MBC 일일 드라마 “하늘의 인연”을 보면 “금이야 옥이야”가 그나마 얼마나 잘 만들어지고 있는 드라마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하늘의 인연"은 언급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막장 재료가 총 동원 되어 있다. 출생의 비밀, 불륜, 살인에 태생적 악녀까지 김순옥이 울고 갈 정도다. 보다가 정말 모니터를 부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유통 되는 것이 일일 드라마 시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금이야 옥이야”는 가족간의 사랑을 근본으로 지저분한 막장을 극복한 그나마 볼만한 일일 드라마다. 자꾸 그나마라고 쓰는 이유는 일일 드라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서로 내용을 베껴 쓰는 반칙까지는 극복해 내지 못 하고 있어서이다. “금이야 옥이야”도 전작 “으라차차 내인생”의 기본 뼈대, 즉 처녀가 죽은 오빠의 남조카를 입양해 자신을 희생하며 키운다라는 골조를 살짝 성별만 바꿔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일 드라마 수요층의 특성상 그 정도 반칙은 아무런 약점이 되지 않는다. 그냥 고된 하루, 30분 동안 반 실신 상태에서 프로포폴 주사 한 대 맞는 것 같은 효과만 주면 된다. 그런 이유로 끈질기게 일일 드라마 시장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 할 것이다. 지금의 MZ 세대도 나이가 들어 4,50대가 되면 일일 드라마를 또 보게 될 것이기에, 이 허술하고 구멍 투성이의 드라마 장르는 없어지지 않고 계속 우리 곁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붉은 망또님! 오랫만에 주옥같은 드라마 평설을 읽습니다.
오월도 상순 늘 건필하시고 행복한 성하되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