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 모월 모일. 가을 하늘답게 쾌청하다.
돌아가는 강 언덕 위에 벚꽃이 만발해 있다. 그 풍경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돌아서면, 허전하다. 나는 정말 꽃을 본 것일까? 꿈에 꽃을 보다니. 하필이면 봄에 피는 벚꽃일건 뭐냐? 궁금해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생시인가 꿈인가 구분이 되지 않는 아침이 정말 싫다. 좀처럼 마시지 않던 커피를 타다가 씁쓰레한 향기가 거슬라 버리고 만다.
산길을 오른다. 이름 모를 들꽃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을인가 꽃 색깔도 촉촉하게 젖어 있다. 구절초하며 자그마한 야생국화가 만발하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라지? 저만치서 뻘줌하게 서있는 개망초가 안개처럼 흐드렀지만 아무래도 처연해 보인다. 계절을 잃어버린 탓이다. 참나무 숲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조차 비쩍 마른 흙냄새가 난다.
바람의 소리는 어떤가? 서걱거리는 건조한 참나무 잎새가 내는 소리야말로 가을이다. 걷다가 숨이 차면 단풍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나 잘까. 살푸시 잠이 들면 꿈속에서 보았던 벚꽃이 난분분 내리는 그 언덕,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벚나무 숲을 볼 수 있을까? 눈을 뜨면 보이는 게 버석거리는 참나무 숲, 간혹 바람이 불어가면 우수수 낙화하는 마른 나뭇잎이 청명한 가을 공기를 찢으며 비명을 지른다. 벚꽃이 한창인 봄과 가을이 교차하는 어지러운 꿈을 내가 즐긴다.
대동문에서 진달래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보면 기막힌 자리 하나 있지. 으레 보따리를 풀고서 우아한 점심자리를 가지는 자리. 한 그루 키 낮은 소나무가 노적봉을 사모하여 몸을 트는 산자락 끄트머리지만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시작이다. 곡예하 듯 절벽 위에서 다리쉼을 하며 내려다보는 삼각산자락이 우이동으로 우당탕탕 펼쳐지는 웅대한 경치를 어찌 지나갈까 부냐.
산은 확연히 갈라지는 두 가지 빛깔로 대비된다. 짙다 못해 시커먼 침엽수림과 연녹색 신선한 빛깔로 살아 움트는 활엽수림으로 엉켜있는 봄날부터 나무들은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는지 몰라. 겨우내 잠들어 있던 활엽수들이 보란 듯이 깨어나 맹렬한 기세로 침엽수림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고 할까. 주춤하던 침엽수림은 여름이 지나자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가, 다시 침엽수 세상이 온 게 아니겠어. 분기 탱탱하게 초록의 열기를 끌어올리던 활엽수들도 가을이 오면 어느새 연노란 색으로 물들어간다. 가을산은 그렇다. 붉은 색의 단풍으로 온전히 물드는 내장산보다야 연노랑에서 갈색으로, 종내는 붉은 빛깔에다가 생김새도 각각인 단풍이 어우러지는 잡목의 삼각산이 윗길이 아닐까? 비우고 비운 활엽수들이 그 무성하던 잎사귀를 떨구면 어디로 갈까? 부왕동암문을 내려오다가 만나는 허물어진 부왕사 옛터에서 가을의 소리를 듣는다.
이상도 하지, 내 꿈에는 모든 게 그늘이 없다. 난분분하는 벚꽃은 물론 내가 누워 있는 꽃나무에도 어느새 그늘이 사라졌다. 세상 모든 것에서 그림자를 뺏어간 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늘은 사물에 풍성한 입체감을 불어넣어준다. 다시 말하면 밝은 면이 있으면 분명히 어두운 곳도 있기 마련. 세상을 음양, 두 가지로 사유했던 철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웬 조화런가? 입체감이 사라진 세상은 그랬다.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각기 제 자리에 있는 건지 혹은 어디로 사라지고만건지, 어쩌면 서 있는 것들이 죄다 허깨비인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내가 평생을 두고 누볐던 전장터조차도 깡그리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게 도무지 실감나지 않아서 좀 우습다. 내가 산 게 아니라니 누가 산거지?
문득, 그 아침에 떠올렸던 친구의 표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흔히 슬픈 눈을 가지고 있다' 는 루이 아라공의 시구만이 귓전을 맴돌 뿐이다. 떠난 사람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을 가진 친구였는데. 그래 열아홉, 아홉수에 꺾여버린 청춘, 젊은 나이였는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의 몸에서 수분이 사라져 간다는 거라며? 그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수분을 빼앗아 가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 고유한 형태를 지니고 있을까. 다 으스러지겠지, 으스러진 부스러기만 남고 다들 어디로 갈까? 바스락 거리며 뒹구는 낙엽도 수분이 완전 증발한다면 제 모양을 지니고 있을까. 가루처럼 바람에 날려가 버릴 테지. 물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일 줄을. 어느덧 내 인생도 휑하니 바람 불어가는 메마른 6학년인지라, 자리에 있어도 내가 여기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가을, 국화 무더기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렀다. 하늘은 맑고 구름도 자꾸만 멀어져 간다. 돌아갈 기러기를 위해 하늘 길을 내느라. 귓가에 들려오는 재잘거리는 소리는 누구의 수다인가? 고개를 돌려보면 올망졸망한 난쟁이 일년초가 부스럭 거릴 뿐이다. 일년초 주제에 분수를 모르고 껍죽대더니 막상 가을이 오니까 뭐가 뭔지 몰라도 제 살판나는 세상은 어느새 지나간 것을 눈치 챘겠지. 완연하게 풀이 죽은 모습이다. 마음이 아리다. 분수모르고 설쳤던 내 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마뜩찮다.
어느새 푸르던 숲이 갈색물감이 번져간 것을.
바람도 불고 이따금 고추잠자리가 눈을 어지럽히는 저녁 무렵에 더운 커피를 마신다. 혀 끝에 감도는 씁쓸한 맛을 누구는 낙엽에 갖다 대더라만. 갈색의 커피가 가을에 어울린다. 어울린다는 건 커피와 낙엽, 브라운 톤으로 흐르는 가을빛이 흡사하다는 거겠지. 가을에는 세상이 다 브라운 톤으로 바뀐다. 주황빛이 감도는 감나무 잎도, 잎새를 떨군 가지에 댕그르르 걸린 대추까지도 손을 대고 누르면 연갈색 물감이 묻어나올 것만 같다.
가을감기에 걸려서 뱉어내는 그대의 얕은 기침소리마저도 브라운 톤이다.
산을 내려오면 내 즐겨 서성이는 곳이 하나 있지. 그 연못 위로 바람이 불어가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난다. 순간, 정갈하던 푸른 산허리가 물결 따라 어지러이 흩어지고 만다. 고즈넉한 풍경이 깨져버린 걸 어찌하랴. 여름내 예쁘게 치장 하던 수련의 붉은 꽃은 사라지고 난들난들 납작한 잎들만 물결에 몸을 맡기고 호수는 조용했다. 하늘을 찌르듯 솟아오른 참나무 군락은 말없이 수련 위로 그늘을 만들고 모든 게 조용했다. 겨울맞이가 대수인가. 한해살이풀들이 조잘대지만 대책이 없다. 이상도 하지, 봄에 그렇게 조잘대던 조팝나무가, 이팝나무는 어디로 간 걸까? 가을 산은 말이 없다.
이 가을, 서재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구식 진공관으로 듣는 음악은 슬펐다. 라디오 안의 성악가는 날 선 여름날, 힘찬 목소리가 아니었다. 풍성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서 낙엽을 태우는 맛이다. 가을이면 마당 가득하던 감나무와 대추나무, 배롱꽃나무까지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져버린 낙엽을 태우곤 했지. 외할아버지는 수염을 쓸면서 눈물을 훔쳤어. 연기가 매워서 그랬다지만 봄에 출가 시킨 막내 이모를 생각했음이 틀림이 없었어. 디지털이 주는 생경함과는 달리 진공관에서 덥혀서 나오는 소리였지만 이 가을에 듣는 노래는 어딘지 차가웠고 씁쓰레했다.
노래가 무엇이었을까? 어딘가 북부 독일의 낮으막한 리드 같다. 함부르그였나? 아니, 퀼른 성당을 끼고 돌아 지하철역으로 향해 걸어가던 좁다란 골목길에서였지. 낮고 우울한 목소리로 부르던 디스카우의 겨울 나그네가 떠오를 건 뭐람. 겨울 나그네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내 귀는 쇄락하지 않았는데. 멍하니 내다보는 아파트 정원을 가로질러 누군가 바삐 걸어가고 세상은 왠지 물속에 잠긴 도시 같다. 일체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내가 듣는 라디오는 어느새 깊고 음울한 첼로가 토해내는 협주곡으로 넘어갔다.
서쪽 하늘에 누군가 핏빛 물감을 뿌렸던가 장엄한 노을이 핀다. ‘얄밉던 첼리스트 그 가시내가/ 죽으며 토하던/ 피 피빛 같다’ 던 노을이란 시가 생각날게 뭐람. 백일장에서 장원을 먹었다고 돼먹지도 못한 시를 가지고 우쭐대던 치기조차 간지럽다. 아직도 맬랑콜릭한 치기에 머물러 있는 내가 전장터를 떠돌던 장군이었다니? 날이 빠진 녹슨 창을 길게 끌고서 석양에 돌아온다.
편지를 읽는다. “내 꿈, 좀더 보람 있는 삶을 지향했던 내 희망은 가슴에 묻어둔 채 삶의 무게를 이고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시작했던 것이 그때였습니다. 어지러워 주저앉고 싶은 가혹한 시절이 닥친 게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세상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주섬주섬 일어서야 할 때가 아닌가요? 너무 오랫동안 주저앉아서 다리가 풀렸다면 맨손체조라도 하면서 치열한 삶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 세상으로 한 발짝 걸어 나가렵니다.
어쩌다 여기 왔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들고 어둠 속에서 눈물짓는 세상의 못난이들을 향해 / "지난 일은 돌아보지 마십시오. 잘못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그 아픔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가던 길 멈추고 서 있지 마십시오./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고/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며/ 지고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손짓하며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일러준 대로 말입니다. 이제 자아탐색의 성찰을 끝내고 세상을, 그리고 남을 조금씩 이해하고 껴안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랫동안, 전장터를 따라다녔던 무적의 도라지 부대의 부하가 보내온 편지다.
“과거는 이미 떠나 버렸고 미래는 '그분' 손 안에 있으니 오늘은 그저 길을 떠나야겠지요.” 추신으로 끄트머리에 붙여온 구절이 참아왔던 패장의 눈물샘을 건드릴게 뭐람.
패장에게 밤은 길고 불면의 나날 또한 길어 갈 테지.
자꾸만 커지는 세상에 비해 나는 끝없이 작아지고, 밤에 문득 눈을 뜨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