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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사랑함에
순례의 길을 시작하는 것은 인격적인 섬세함 그리고 고유한 영성적 동기들과 관련되어 오랫동안 형성된 신념을 전제로 한다.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일어나는 쇄신의 열망,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열의,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적인 요청,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특별한 은총을 청하고자 하는 바람 등이 이러한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나름대로의 깊은 영적인 동기들 없이는 올바른 순례가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순례를 시작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활동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까를로 마짜의 순례 영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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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도록 순례의 마지막 밤이라는 이유로 다들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남자들은 모여서 몰래 남겨두었던 깡통김치를 안주삼아 소주를 즐깁니다. 어떤 경우라도 마지막이란 말은 의미심장하거니와 지금처럼 한 평생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말까하는 순례의 경우는 더한층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냥 잠들 수가 없겠지요.
더욱이 수원교구 조암 본당 형제님들과의 만남이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부제품을 받은 한민택 부제 아버님의 감사 인사에 오히려 송구했습니다. 저야 말로 이렇게 훌륭한 순례길에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이 누구 덕인데요.
호텔 레스토랑은 이른 아침인데도 무척 붐비는군요.
어저께 무슨 전시회가 끝나고 불과 사흘 뒤로 다가온 또 하나의 무역전시회로 프랑크푸르트의 호텔은 전부 붐비고 있을 거라는 가이드의 말에 독일의 저력을 또 한 번 실감합니다.
이른 아침 호텔 레스토랑은 아침식사를 서두르는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왠지 비즈니스맨다운 사무적 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느꼈다면 제 선입관 탓일까요?
이제껏 지나온 이태리와 프랑스, 벨지움에서 마지하던 호텔의 아침 풍경과는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무언가 느긋한 여유와, 일상을 떠나 온 자유로움이 가득했거든요. 모두들 제대로 잠을 못 주무셨는지 푸석 푸석한 얼굴로 마실 것만 찾는 폼이 아무래도 지난밤에 이별의 술자리가 길었던 모양입니다.
어저께 밤늦게 체크인할 때 이슬비에 젖어들던 도시는 이른 새벽, 비는 그쳤지만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탓인가 가로등이 희미하게 졸고 있는 안개 젖은 유럽의 전형적인 겨울 아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하이델베르그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하이델베르그 고성(古城)과 학창시절에 우리가 얼마나 그리워하던 곳인지 그대는 알고 있으리라.
위수령이 내려 더욱 뒤숭숭한 학교에 고작 열여섯 명의 관객을 바라보며 막을 올렸던 "황태자의 첫사랑"이 불현듯 그리워집니다.
그래요 암담한 시절이었지요. 착검한 군인들의 총칼 위로 무심하게 내려쬐는 가을 햇빛이 사금파리 되어 가슴을 찌르는데 은신한 운동권 학우가 부탁한 불온삐라를 등사하느라 몰래 써클 룸에 들어갔어요. 그때 철필로 가르방을 긁으며 세상이라는 넓고도 막막한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땐 그랬어요. 요령 없이 크고 넓기만한 바다가 내 신산한 청춘에 대해 빈정대더구먼요.
"어떡 헐 래? 내게로 헤엄쳐 올 수 있겠니?... 넌, 용기가 없잖니.."
어두워오는 캠퍼스를 내다보면서 김지하를 떠올렸습니다.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모든 것이 돼먹지 않아 우리를 우울하게 했지만 더 심했던 것은 무언가 일어나 말대꾸라도 하고 싶은데 말대꾸는 커녕 쥐죽은 듯 엎드려 있어야 했지요 그시절은...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나가본들 취직할 곳 하나 없는 암울한 대학 4학년의 허기진 가슴으로 지켜보았던 황태자 카알의 열정과 방황이 흠씬 묻어나던 그곳으로 제가 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생맥주 한 조끼 마시면 제 젊은 날의 타오르던 목마름이 시원하게 씻겨질까 하는 이 무망함 을.....어찌해야 하나요?
흡사 가을, 우리나라의 산사(山寺)를 찾아 온 기분이라면 가장 적합한 표현이랄 수가 있겠지요.
다행히 날씨는 햇볕이 들지 않았지만 구경하기에는 아주 쾌적하여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오래된 낙엽이 짙은 부엽토 냄새를 풍기며 겨울비에 젖은 한적한 도로와 아름드리나무가 어우러진 고성의 고즈넉한 풍경화 안으로 제가 들어왔네요.
적색사암의 고성(古城)이 더러는 반 틈이나 무너지고, 오랜 세월을 이기고 견디어 낸 상처를 흉하게 들어낸 산 중턱에서 우뚝 서서 오만하게 우리를 맞아주고 있네요. 분명 그건 환영하는 투는 아니었지만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않는 혼기를 놓친 귀족 따님의 엉거주춤한 표정이랄까요?
길 따라 낙엽을 밟으며 아내와 걸어가고 있노라니 멋진 가을 날 동화처럼 아름다운 한편의 영화를 찍는 분위기에 푹 젖어듭니다.
트랜치 코트를 입은 저는 아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어느새 입에서 흘러나오는 ’봄날의 꿈((Fruhlingstraum)’을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 ich träumte von grünen wiesen 나는 푸른 초원의 꿈을 꾸었다./ 즐거운 새 소리로 가득 찬 //… 그런데 창문 유리 위에 누가 잎사귀를 그려 놓았을까?/ 너는 꿈꾸는 나를 비웃고 있겠지. /겨울에 꽃을 보았다고?// … 내 마음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나는 여기 홀로 앉아 꿈을 되새겨 본다./ 창유리에 비친 잎사귀는 언제 파랗게 되려나?♬♪♩…”
방랑하는 젊은이는 까마귀가 우짖는 황량한 겨울에 봄꿈을 꿉니다. 화사한 꽃과 푸른 초원을 꿈꾸고, 아름다운 처녀와의 사랑을 꿈꿉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이것이 다 꿈이었음을 알고 한없이 낙담하게 되지요. 그럼에도 이 꿈을 접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노래는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24곡 중 열한 번째 ‘봄날의 꿈’입니다. 어떻게 이 노래냐고요?
3선개헌과 교련반대 등으로 줄곧 학생운동으로 지새우던 시절에 어둡고 쓸쓸했던 내 청춘의 무게를 이겨내려고 나지막하게 불러보던 희망가였거든요. 봄날의 꿈은 암울한 시절에 ‘마침내 봄이 올 것이다’ 희망을 품고 있지요. 그랬어요. 아이엠에프사태로 회사는 부도가 나고 실직한 내 현실과 맞닿아있었거든요. 그래도 봄날의 꿈은 달콤하게 시작하여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흥얼거리며 하이델베르그 고성의 숲길을 올라갔습니다.
“…♪♬♪ Wann halt’ ich mein Liebchen, im Arm?” 그녀를 언제 다시 안아보려나?“
순례를 마감하는 제 아쉬운 마음과 자연스레 맞아 떨어지지 않나요. (오해하실까. 그녀란 청춘의 봄날을 의인화한 말입니다)
아무래도 하이델베르그 고성, 낙옆 진 오솔길에서 듣기엔 밝으면서도 청춘의 달뜬 기분을 처리하는데 헤르만 프라이가 부르는 리트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일의 오래된 고성인 하이델베르그 성은 1225년에 새워졌으나 낙뢰로 파괴된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축조되었다 합니다. 그 후 30년 전쟁을 비롯하여 숱한 전란으로 황폐해졌으나 제2차 세계전 때 파괴를 면한 몇 안 되는 성이지요. 하이델 베르그 사람들의 자랑인 이 고성은 그 아래 흐르는 네카강에 고성의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절경입니 다. 통상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도시의 또 다른 자랑인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어떻고요.
인구 약 13만 명, 주민의 약 60%가 루터교인 이 도시는 라인강과 네카강이 만나는 곳이 가까워서 수량도 넉넉합니다. 도시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유럽주둔 미군총사령부가 이 도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와는 남쪽으로 약95km 떨어져 있지요.
1225년 라인 백작령(領)이 되었으며 1720년까지 약 500년간 선제후의 거성이 자리 잡고 있는 독일에서 고풍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기후는 온화합니다. 1618∼1648년 독일을 무대로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 간에 벌어진 30년간의 종교 전쟁기간 중 1622 년에는 황제군에게, 1633년에는 스웨덴군에게 각각 정복당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후 팔츠 계승 전쟁 중 1689년·1693년 2차에 걸쳐 프랑스의 루이14세 군대의 화공을 받아 성이 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1720년 선제후의 거성이 만하임으로 옮겨지고 난 뒤 예전의 중요성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제 2 차세계전 중에는 전화를 입지 않아 고도의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지요.
참으로 이곳은 그림같이 너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고성 위로 한참이나 높이 달음질쳐 솟아 오른 산꼭기가 시원한 산그늘을 만들어 넉넉한 가슴으로 고성을 품어 안고 있었고, 고성 아래 마을을 끼고 네카강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강 건너편에 높다랗게 솟아 오른 산기슭에는 가파른 산자락임에도 풍성하게 농작물이 푸르게 자라고 있네요.
눈대중으로 올려 봅니다. 철학자들의 오솔길이 어딘가 하고. 숱한 하이델베르그의 철학자들이 평생을 두고 연구해온 화두를 붙들고 산책하던 ‘철학자의 오솔길’ 말입니다. 칸트와 20세기 서구문명의 몰락을 예감했던 야스퍼스가 걸었던 그 길 위에 제가 서고 싶었지만 눈으로 일별하고 맙니다.
모든 것이 넉넉해 보이는 이곳 가을의 단풍은 유럽에서는 알아준다 하네요. 제가 가이드한테 물어 보았어요. 설악산 보다는 어떠냐고요. 에~이, 우리나라 설악산한테야 어림없지요. 그래도 가을에 한번 와 보시면 대단하답니다.
와~우! 유럽순례 내내 괴롭히던 문화 콤플렉스에 벗어나는 기분 좋은 해방감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요?
옛날 이 곳을 지배하던 영주가 살았던 고성은 규모가 대단한데 축성의 양식은 독일-네델란드 르네상스풍의 성관과 중세풍의 성곽(성쇄)의 일부가 혼용되어 있네요.(이건 안내서에 있는 겁니다) 먼저 네델란드 풍의 건물로 들어가서 약방을 둘러보았는데 그 규모와 잘은 모르겠지만 갖추어진 약과 약에 관한 자료는 대단한 수준이라 하네요. 그래서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약학부문도 명문중의 명문이랍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하이델베르그의 명물은 세상에서 제일 큰 술통, 와인저장고가 아닐까요?
삼층이 넘어 보이는 지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온통 둥그런 오크술통 하나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규모가 무려 22만 리터의 술을 저장할 수 있다지요. 뭐 감이 안 잡힌다고요? 서투르지만 호기심으로 계산해 볼까요? 와인 한 병이 750ml 되겠지요, 약 30만 명이 한 병씩 마신다면 하이델베르그 와인 저장고 하나를 비우겠네요. 그러니까 지금 하이델베르그 온 시민이 달려들어 마셔도 두 번이나 걸릴 양이랍니다. 그래도 좀 남는다고요? 어때요 대단하지요! 놀라지 마시고 그 옆에 는 그보다는 못해도 버금갈 정도의 큰 술통이 하나 떡하니 버티고 있더이다.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고 물러납니다. 영주님이 대단한 술꾼이었는지, 또는 이 지역이 포도를 엄청 많이 재배했는지 아무튼 거대단한 술통 옆에 올라가기 좋도록 가설한 삐걱거리는 계단을 타고 걸어올라 가보았어요. 술 맛보려고 너댓 뼘도 넘는 커다란 마개를 따고 어쩌다가 술통에 빠져 죽은 행복한 사람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강 쪽으로 난 성 마루에 나갑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저 아래, 영주님의 충성스러운 백성들이 꼬물꼬물 살아가던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첨탑이 뾰죽한 전형적인 고딕식 교회와 무리를 이룬 하이델베르그대학 전경, 오밀조밀 어깨를 맞닿은 고단한 백성들의 살림집도 한 눈에 들어오는 평화로운 정경에 취합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네카 강이 일으키는 물소리가 송알송알 들려 올 것 같은 정오의 하이델베르그가 순례를 마감하는 우리를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또 오면 되잖아. 그럼, 세상사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게 아니겠어!"
순례를 마친다는 막막한 기분에 잠겨있는 우리 내외를 달래기보다는 유혹하고 있는 소리는 누구의 것인가요?
멀리 전장 터에 나간 영주님 몰래 왕비님이 로맨스를 불태웠다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한창 사랑을 속삭이던 중에 갑자기 영주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왕비님은 그 사내를 왕비님 방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게 했대요. 간통의 현장을 치워버리려고요? 사층 높이가 될까, 목숨을 걸고 뛰어내린 사내는 불륜의 흔적을 남기고 맙니다. 뛰어내린 자리에 커다란 발자국이 남았으니까요. 제 발을 대어봅니다. 그 로맨스를 부러워하며 보았자 제 발은 넘 작아서 실쭉했습니다. 발 크기와 로맨스, 타오르는 열정은 아무 상관이 없는 대도 말입니다.
로맨스라니요? 넌 불륜을 꿈꾸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도 왕비님의 사내가 부러웠습니다. 아니, 전장 터에 나갔으면 용감히 싸울거지 집에는 뭐하러 돌아와 가지고,,,,,,어느새 왕을 원망하고 있다니요. 후후~, 하이델베르그의 전설이어서 달콤한 로만스지 불륜에 왜 이리 부러워했는지 알다도 모르겠습니다. 또 열정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육정으로의 끌림...그리스도인이 육정을 못 이겨 사고 친 것을 부러워하다니. 말이나 될 법한 소리입니까? ....이러는 제가 밉지요? 제가 전설 속의 하이델베르그와 영 코드가 맞지 않다고요? 이 아름다운 경치에 홀려 있을 제가 아니지요.
발걸음 종종거리며 마을로 내려오는 경사길을 따라 제 마음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몰고 유유하게 다니는 대학가의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면 어김없이 하이델베르그 대학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상식 속의 대학 캠퍼스는 아무 데도 없고 모퉁이마다 대학건물이 들어 서 있습니다. 주민들의 집과 이웃하여. 파리의 소르본느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옆에 자리한 사층이나 될까, 불빛이 환한 곳이 바로 소르본느라고 하던 걸요. 요즈음은 이름을 다 바꿔버렸다지요. 파리 몇 대학하고. 아무튼 넓은 켐퍼스와 파아란 잔디밭, 드문드문 서 있는 강의동이 어우러진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의 대학과는 너무 달라 보였습니다. 주민들이 생활하는 생활 소음과 함께 강의와 연구가 병행되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소이다.
1386년 이곳의 영주인 選帝侯(중세 독일황제 선거자격을 가진 큰 성의 영주) 루프레히트1세에 의해 창건된 독일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엘리네크, 막스.베버, 야스퍼스와 같이 당시 최고의 석학이 연구 활동을 했던 학생 수 19,000여명에 달하는 세계적인 대학이지만 마리오 란자가 열연했던 음악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더욱 유명세를 떨쳤다고 볼 수 있지요. 빈 강의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교단에서, 빈 의자에 앉아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석학들의 숨결을 함께 호흡해 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꼬불꼬불 학가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가 마을의 중심지인 첨탑이 뾰죽한 교회 앞에 서 봅니다.
독일은 루터교가 47% 가톨릭이 36%가 되는 곳이지요. 이 교회는 루터교 교회인데 건물 외관이며 내부도 밋밋한 게 별로입니다. 교회 앞은 제법 넓은 광장이 자리했는데 기념품을 파는 우리나라의 난장터 같은 곳이 지나가는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습니다. 광장을 둘러싸며 오래된 호텔과 레스토랑이 고색창연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제가 그리워하던 그곳은 아직 강 쪽으로 한 블럭 더 가야 한다네요.
교회광장에서 강 쪽으로 한 블럭 걸어가니 조그마한 또 하나의 광장이 우리를 반겨 줍니다. 광장 중앙에는 아담한 금빛 조각품이 있는데 품안에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이 둥근 지구를 굳건히 딛고서 깃발을 내려뜨린 창을 쥐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역동적이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더욱이 하이델베르그 고성이 쏟아질 듯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광장에서 왼편으로 강으로 내려가는 조그만 골목길에는 바로 황태자 카알.하인리히가 학사주점 종업원 케티에게 흠뻑 사랑에 빠져 매일 드나들던 주점, "roten ochsen"(?)(집에 돌아와 주점 간판을 보고 읽어 보아도 독일어 실력이, 글씨가 너무 멋을 낸 탓 이어서 도무지 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영어로 red oxen 붉은 황소일걸요) 어쨋건 도로로 돌출된 둥그런 간판에는 붉은 황소 머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시카고 불스 농구팀 로고 같다면 아~ 하시겠지요. 이곳이 암담했던 학 졸업시절에 그렇게도 와 보고 싶었던 곳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탓으로 할아버지 대공에 의해 궁정 안에서 곱게 자라던 프러시아 칼즈버그 왕국의 젊은 황태자 카알이 하이델베르그에 유학을 오게 된 것이 운명적인 사랑의 아픔을 예고하고 있지요. 카알은 학사주점 하녀 케티를 만나고는 금새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신분의 차이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두 사람의 사랑과 애절함이 그 시절 같은 또래였던 제 가슴을 많이도 애태웠지요.
하얀 칠을 한 벽과 붉은 기둥의 삼 층짜리 주점은 정오의 햇볕에 화사해 보였지만 글쎄요, 실망스럽게도 사십 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주점이네요. 내 추억 속에 그리던 이 주점은 우리의 열정과 꿈을 다 보듬을 수 있으리만큼 크고도 넓었는데 말예요....
한 낮이어선가, 텅빈 주점이 저녁이면 하이델베르그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먼 옛날 선배였던 황태자와 케티의 순수한 사랑을 기리며 노래할까요? 드링킹.송을
...Drink! Drink! Drink! Drink!
Ein zwei drei vier
/Nip your stein and drink your beer/Ein zwei drei vier
Nip your stein and drink your beer
Drink! Drink! Drink!
To eyes that are bright as stars/
when they're shining on me!
Drink! Drink! Drink!
To lips that are red and sweet/as the fruit on the tree!/Here's a hope that/those bright eyes will shine/Lovingly, longingly soon into mine!
May those lips that are red and sweet,/Tonight with joy my own lips meet!
평민학생들의 합창단 웨스트 벨리언즈의 입단식에서 전통의식에 따라 녹색 모자 차림으로 1000CC가 넘는 생맥주 잔으로 원샷을 할 때 부르는 곡이 바로 Drink! Drink! Drink! 드링킹송입니다. 녹색 모자를 쓴 학생들과 여종업원 케티가 잔을 부딪치며 부르는 합창이 눈물겹게 떠오르네요.
Drink! Drink! Let the toast start!/
May young hearts never part!
Drink! Drink! Drink!
Let every true lover salute
/his sweetheart!
Drink! Drink! Drink!
To arms that are white and warm/
as a rose in the sun!
Drink! Drink! Drink!
To hearts that will love one,/
only when I am the one! Here's a hope that /those soft arms will twine Tenderly, trustingly soon around mine!
가사는 간단합니다. 독일말로 듭시다! (Ein Prosit) 편안히! (Der Gemuetlichkeit)
아~! 연극의 막은 내려지고 출연진 배우와 객석의 몇 안 되는 우리들이 합창으로 즐겨 부르던 드링킹 송의 노랫말도, 대공 할아버지에게 로맨스 건으로 호출되어 갔다가 얼만가의 세월이 흐른 후 돌아온 카알이 떠나가버린 케티를 회상하며 쓸쓸하게 읊조리던 대사 한마디도 기억할 수 없네요.
이렇게 흘러 가버린 세월의 무정함이, 떠나간 내 순수가 야속하네요...
이렇게 제. 가. 왔. 는. 데. 요....
참 꿈같은 세월이, 밤에도 은비늘 반짝이며 한강은 쉬임 없이 흘러갔지요.
잠시도 쉬지 않고 삼선개헌, 교련 반투쟁과 위수령으로 얼룩진 학창시절은 우리를 얌전하게 강의실에 두지 않았습니다.
매일 거리로, 농촌과 구로공단으로 우리를 내몰았지요.
청계천 피복노조의 꽃처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분사도 카바이트 술잔을 기울이며 삭혀왔지요.
그때는 아름다운 청춘의 추억조차 없었던 줄 알았는데 오늘 제가 그리워했던 추억의 현장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봅니다. 취하지 않고는 잠 못 이루던 모순투성이 현실과 토악질나는 내 나라의 돼먹지 않은 꼬라지가 참 싫었지요.
그래서 그랬나요, 신분을 뛰어넘는 황태자와 하녀의 사랑이 무언가 희망의 끝자락 하나 움켜쥐지 못했던 그때, 저를 홀려 버렸던 걸까요?
무심하게도 세월의 강은 흘러...
어쩜, 잘 된 것인지도 몰라요. 이렇게 서 보니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 시절의 울분과 이루고 싶었던 그 무엇을 잊어버리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내 모습을 오히려 감사해야 할 걸요. 제가 무얼 할 수 있었겠어요.
내려오면 금새 네카강입니다. 강폭이 한 70미터는 되겠지요?
그러나 강 양편으로 모래밭이 하나도 없이 강둑에 가득 차게 강물이 흘러가느라 한강보다는 무척 폭이 작다고 보이나 그 수량은 풍부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온통 넓게 나지막하게 펼쳐진 평야를 보아서인지 우리나라처럼 높이 솟아오른 산꼭기에서 깊고도 빠르게 산자락을 펼쳐 내리는 이곳이 더 정이 갑니다.
네카강을 두고 건너는 두어 개의 다리가 보입니다만 바로 고성 아래 놓인 칼 데오도르교가 으뜸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자랑하는 이 다리에는 이쪽에서 댓 걸음 정도 되는 곳에 불룩하니 둥근 공간이 있고 아름다운 아테네 여신상이 청동으로 빚어 세워져 있습니다.
잘된 영화는 소품 하나도 다 아름답다 더니 하이델베르그 고성과 대학, 다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순례지가 아니어도 꼭 들러보셔야할 곳 같습니다. 칼 데오도르교에서 아름다운 하이델베르그 고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허락한다면, 단풍이 아름답다는 가을에 와서 또 다른 하이델베르그를 보고 싶었습니다.
대학가의 좁은 골목길에는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강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2차선 시원한 도로에는 예쁘기 짝이 없는 딱정벌레 경차가 아장아장 귀엽게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별입니다. 간호사 출신인 현지 가이드와 이별을 하고 공항에 들어갑니다.
순례를 시작할 때 유럽에 첫 발을 디딘 곳이긴 합니다만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이곳 프랑크프르트 공항 대합실에서 잠시 머물렀지요.
황혼에 물든 공항,
길고 긴 여행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쉬고 있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맥주 한 잔 기울이며 추억을 반추합니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쇼핑이라고 하던데 맞는 말입니까? 돌아가기 아쉬어 하는 제 마음을 아는지 비행기가 2시간이나 연발이어서 느긋하게 돌아봅니다.
공항 창 너머로 비에 젖어가는 프랑크푸르트 시가지는 밤을 준비하는 등불을 켜고 있네요. 배낭을 챙기며 순례자는 모든 게 고마웠습니다.
순례를 떠나게 불러 주신 ‘그분’의 한없는 사랑에 그저 제 몸을 맡기고 긴 여정을 이만 접을까 합니 다.
하지만 프롤로그로 시작한 터라 에필로그까지 기다려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