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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에서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며,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자세를 강조한 인물이다. 이들이 강조하는 ‘무위(無爲)’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리를 거스르며 무언가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은 도덕으로써 그릇된 새상을 바로잡겠다는 유가(儒家)와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장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가는 억지로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하는 ‘유위(有爲)’일 뿐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사상가 장자의 언행을 모아서 엮었다는 책 <장자>는 아마도 그를 추종하던 인물들이 장자 사후에 편찬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내편과 외편 그리고 잡편으로 구성된 체계에서, ‘내편(內篇)’은 장자가 직접 저술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어떠한 생각의 집착 없이 세상을 떠돌며 즐기는 경지를 일컫는 ‘소요유(逍遙遊)’라는 개념은 장자의 자유로운 사상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젊은 시절 부와 명예를 추구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며, 오십이 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즈음 <장자>를 읽고, 그 속에 담겨있는 자유로운 삶의 본질을 문득 깨닫게 되었노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집필한 이 책에서 저자 자신이 <장자>를 통해 깨달은 바를 하나씩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깨달음을 나이와 연관시켜 논하고 있지만, 실상 나이가 아닌 시점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하겠다. 다만 저자에게 그 시점이 오십이 넘은 나이였으며, 다른 이에게는 <장자>가 아닌 다른 책이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장자>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무렵 동학들과 더불어 강독을 했고, 그 이후 다른 책들에 밀려 깊이 있게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조금씩 떠오르고,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삼 깨닫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좌치(坐馳)’와 ‘좌망(坐忘)’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온갖 생각에 휘둘려 우왕좌왕하는 상태가 ‘좌치’라면, ‘좌망’은 모든 잡념을 잊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세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이른바 ‘불멍’에 빠져들면, 편안해지는 것도 역시 ‘좌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잇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불멍’이 끝나면 다시 온갖 근심속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좌망’은 그러한 자세를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겠다.
실상 이 책은 <장자>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저자가 그 책을 읽으면서 주목햇던 구절들을 제시하고 그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풀어내는 내용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어떤 구절에서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처한 입장이 다르기에 어떤 설명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과 명예를 추구했던 조급함에서 벗어나 ‘이제 치열함은 내려놓아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오십의 근심과 괴로움을 비우는 장자의 28가지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처럼 ‘복잡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들어가며’의 제목을 ‘장자를 읽고 오십의 여유를 되찾다’라고 붙이고, 본문은 모두 5개 항목으로 나누어 <장자>에서 취한 28개의 구절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항목들에 제시된 제목을 통해서, 저자가 생각했던 바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욕심 대신 자유’(1장)라든가 ‘후회 대신 준비’(2장), ‘외로움 대신 성찰’(3장)과 ‘공허함 대신 배움’(4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기 대신 활기’(5장)라는 제목들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각장의 제목 앞에 제시된 단어들은 그 이전 저자의 조급함을 드러내는 감정들이었다면, 뒤의 단어들은 <장자>를 읽으면서 새롭게 찾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에게는 <장자>가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었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또 다른 책이나 경험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또한 저자는 나이 오십에 접어들어 이러한 고민을 진지하게 했을 터이지만, 누군가는 지금의 시점이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무엇을 읽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지를 생각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있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장자>를 다시 읽어볼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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