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화엄사에서 백 팔 배를
박 금희
108계단을 딛고 오른 적멸보궁
석등 탑을 향해 꿇어 앉았다
마귀처럼 일어나는 번뇌에
무릎은 저릿한데
와 닿지 않는 스님의 염불은 마치,
래퍼의 랩처럼 빠르고 경쾌해서
바라춤을 추듯 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내 치마자락은 승려의 승무처럼 나풀거린다
어느샌가
리듬을 타고 있는데
번잡했던 마음이 평온해지고
몸 수행의 결실 인가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흐른다
내려오는 길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듯
애당초 뜻 없는 나를 꿰뚫어 보는
사천왕의 웃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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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웃음이 끓다
박금희
뚝배기 끓듯
웃음보 끓어 오르면
뒤집어진다
익어 망가진 표정에 배꼽은 춤을 추고
실성하듯 끓어 젖히는데
쇠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자지러지던 시절 어머니는
저 속 창아지 없는 것들 이라 하셨는데
속 창아지 없으면 좀 어떤가
누군가에게 웃음 줄 수 있다면
이렇게 즐거운 것을
지천명의 시간 동안
엄마와 아내로 여백 없이 살아온
삶이 지겨웠다면 친구들아
오늘은
실컷 웃어보자
뚝배기보다 장맛
자글자글 입담으로 끓여내는 맛
호탕하고 환하게 웃음이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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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님의 발걸음
박금희
우연치 않게 왔는데
놓치고 가기 아쉬워
둘러보는 이 길이 누군가가
딛고 갔을 그 걸음이었네
홀로 다녀갔을 발자국 따라
바쁘게 걷는 발걸음
오래 머물지 못해
서둘러 산을 내려 오는데
문득, 올려다보는 하늘에
떠 있는 저 뭉게구름도 나와같이
두리번거리다 놓친 듯
밀려왔다 사라지는 그녀의 흔적을 아쉬워하는데
아쉬움이란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은 아닐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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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죽녹원에서
박금희
죽향이 스며드는 죽녹원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움이란 빛을 얻기 위해
양분을 모두 내려주고 속을 비우는 맹종죽처럼 꼿꼿이 앉아
벗은 오로지
대를 타고 노는 담쟁이 녀석과 죽을 치는데
시간은 줄기 마디마디
지루함을 재는 눈금인 듯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나무늘보처럼
더디게 흘러 가지만
어느덧
댓잎 흔들리는 소리에 드러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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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물수제비
박금희
추억이 찰랑거리는
부둣가를 거닐며 수제비를 뜬다
둥글납작 비스듬히 2인분을 빚어
둘만의 시간을 뜯어 넣으면
홍두깨에 면이 밀려 나오는 것처럼
밀당으로 빚어낸 사랑은 더욱 쫄깃학진다
잠방잠방 돌 튀기는 자리마다 파문이 일고
밀물처럼 물결치는 감정, 수면 위에 소용돌이친다
나누고 즐기는 동안
밀물에 잠겼다 드러내는 섬처럼
감추지 못한 재채기처럼 고백인 듯
펼쳐 보이면 사랑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후끈 달아올라
세상은 온통 핑크빛 설레임으로
숨이 차오른다 내 발목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