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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도덕적 정서의 성격과 종류에 관한 연구」, 도덕윤리과교육, 2013, 38호, p91.
도덕적 정서의 성격과 종류에 관한 연구
A study in the characteristics and kinds of moral emotions
김 태 훈 (공주교육대학교)
《요약》
도덕 심리학에서 일반적으로 사고, 정서, 행동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결정하는 세 가지 요 소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사고 혹은 인지를 강조한 인지발달 이론이 이성 중심의 도덕철학 에 편승하여 이에 관한 이론적 논의의 대세를 주도하여 왔다. 이런 가운데 근대 영국 경험주의 윤리학자들이나 정신분석 이론가들은 정서를 도덕적 행동의 주요 원천으로 강조하였다. 본 논 문은 도덕 심리학이나 도덕 교육학 분야에서 그동안 소홀히 취급되어왔던 도덕적 정서의 중요 성을 인식하고 그의 특징과 종류를 고찰해보았다.
도덕적 정서는 유발인과 행동 경향성이라는 준거를 토대로 다른 일반 정서들과 구분될 수 있 다. 도덕 규칙 혹은 원리와 관련되고 그 경향성이 친사회적인 특징을 지닌 도덕적 정서들은 초 점과 유의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교차를 통해 네 가지 범주로 그 종류가 유형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수치심, 죄의식, 공감, 동정 등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도덕적 정서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나, 차후에는 자긍심, 비난, 혐오 등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다양한 도덕적 정서들 에 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주제어: 사고, 정서, 행동, 도덕적 정서, 유발인, 행동 경향성, 초점, 유의성
I. 서론
도덕 심리학에서 사고, 정서, 행동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로
간주되어왔다. 비록 근래에 이르러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세 요소를 아우르는 인격교
육 이론이나 긍정 심리학이 관심을 끌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도덕 심리학의 주요 이론
들은 세 요소 중 특정한 요소를 도덕성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다루어 왔다. 이 가운데에
서도 인간의 사고 혹은 인지를 강조한 인지발달 이론은 플라톤 이후 이성 중심의 도덕
철학의 막강한 힘에 편승하여 이에 관한 이론적 논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이끌어 왔
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이성은 완전한 인간의 요소였다. 반면에 머리가 여럿 달린 동물로
비유된 욕망은 길들여져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사자로 비유된 기개 또한 이성의 협력
자가 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할 요소일 뿐이다. 이러한 사유방식의 기저에는 소크라
테스의 ‘덕은 선의 지식’이라는 명제와 더불어 그 역인 ‘지식은 덕’이라는 주장이 자리
하고 있다. 덕 혹은 도덕성이란 순전히 지적인 노력에 의해 얻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지식을 얻는 자만이 덕스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이성은 도덕적 행동에서 최상위의 요소
로 간주되었고, 정서는 부가적인 특질로서 통제되고, 정복되고, 길들어져야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1) 다만, 정서에 대해 보다
실제적인 관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플라톤이 인간의 지식에 대한 모델을
수학적으로 이해하였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적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처럼 도덕성을 무엇이 옳은가 혹은 ‘옳은 규칙’
을 아는 지식의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그는, 그들과 달리, 옳은 방식에서 행동하는 것이
그러한 지식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뒤따라 나온다고 보지 않았다. 거기에는 자기 통제 혹
은 자기 훈육이 개입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지금까지도 도덕
적 행동에서 정서나 의지의 역할을 강조할 때 주요한 근거로 기여하고 있다.
도덕 심리학의 이론적 흐름을 주도하여 왔던 인지발달 이론은 앞에서 언급한 플라톤
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었다. 피아제는 이를 자동차의 구조와 연료에 비유하였다. 심정
(affectivity)은 지성의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원료일 뿐이다. 심정이라는 연료는
지성이라는 자동차의 구조를 결코 변경시킬 수 없다. 피아제는, “스크린 뒤로 사라지는
대상은 지식의 대상인 동시에 흥미, 놀람, 만족, 혹은 실망의 원천”(DeVries and
Kohlberg, 1987: 33)인 것처럼, 모든 도식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인지적 요소와 심정적
요소를 지니면서 변증법의 원리로 작동되지만, 심정이 이해의 원인이 되기보다는 이해
가 심정의 원인이라고 규정하였다. 이후 콜버그 등의 후속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시각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대세 속에서도 정서의 역할을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자들도
있었다. 근대 영국 경험주의 윤리학자들이 도덕감(moral sentiment)의 존재를 언급하면
서 정서를 다루었고, 도덕 심리학 분야의 한 축을 형성하였던 정신분석 이론 또한 정서
를 도덕적 행동의 주요 원천으로 강조하였다. 프로이드의 관점에서 보면, 죄의식과 그
를 회피하고자 하는 바람은 도덕적 행동의 핵심적인 토대가 된다. 또한 자아 이상은 아
동이 부모에 의해 승인된 이상적인 표준에 따라 행동할 때 자긍심과 개인적 가치를 북
돋우며, 그것은 이후 자발적인 도덕적 행위의 귀중한 원천으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인간의 도덕성 발달에 있어서 정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실증적
자료가 보고된 바 있다(Walker & Taylor, 1991: 264–283). 연구자들은 부모와 자녀들
이 도덕적 이슈에 관하여 토론한 형식을 토대로 인지적으로 자극하는 측면(예컨대, 다
시 말해보기, 정보의 공유, 비평)과 인지적으로 간섭하는 측면(예컨대, 마음을 혼란하게
하기, 왜곡),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측면(예컨대, 칭찬하기, 유머)과 정서적으로 간섭하는
측면(예컨대, 방해하기, 훼방 놓기)을 구분하여 아동들의 도덕성 발달을 분석하였다. 결
론적으로, 가장 큰 도덕성 발달을 보인 아동들은 정서적으로 지지적인 토론 유형을 보
인 부모를 둔 경우였다. 이는 도덕성 발달이 부분적으로 부모의 정서적인 지지 작용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이성이나 추론과 더불어 정서에 대해서도 깊이 통찰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도덕 심리학은 도덕교육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준다. 그런 점에서 도덕
심리학이 어떤 방향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느냐는 도덕 교육의 목표나 내용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인간의 도덕적 삶에서 정서가 어떤 방식에서
든 개입되지 않은 도덕적 선택을 요구하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논문은
도덕적 정서가 인간의 도덕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정서의 일반적인 유형을 검토한 후, 도덕적 정서의 성격과 종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II. 정서(emotion)ᆞ감정(feeling)의 유형
인간의 정서는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특정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서로 구분될 수 있
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정서의 구분 방식들을
종합해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묶여질 수 있다. 예컨대, 차원적 접근, 기본-혼합 접근,
유사성 접근, 범주적 접근, 위계적 접근 등이 그것이다. 어떤 방식에서 접근하느냐에 따
라 정서들이 범주화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앞의 네 가지 접근들은 정
서들을 평면적 차원에서 비교하여 범주화하는 방식이고, 마지막의 위계적 접근은 앞의
접근 방식들과 달리 정서들을 입체적 차원에서 분류하고 유형화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특히 이 접근은 인간이 도덕적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어떤 가치와 감정의 발달에 관
심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차원적 접근에서는 정서를 범주화하기 위해 이를 분명하게 구분되는 비연속적인 상
태가 아니라 연속선을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으로 기술한다. 즉, 이들은 자극과 사
태에 대한 정서 반응을 두 가지 차원, 즉 유의성(유쾌-불쾌 또는 좋음-나쁨)과 각성(내
적 정서반응이 얼마나 강한가 : 높음-낮음)으로 구분한다(김유미, 2012: 19). 예컨대 환정
서모델(The circumplex model of affect)에서는 유의성 차원(the valence dimension)을
가로축으로, 활성화 차원(the arousal or activation dimension)을 세로축으로 하여 수직
으로 교차시킨 뒤 둥그런 원을 따라 정서들을 배열한다. 이에 따르면, “동요된, 스트레
스 받은, 신경질적인, 긴장한, 빈틈없는, 흥분된, 고양된, 행복한, 만족한, 침착한, 이완
된, 평정한, 피곤한, 무기력한, 우울한, 슬픈” 등의 정서들이 가로축의 유의성 차원 왼편
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순서대로 둥그렇게 배열된다(Posner, Russell, and Peterson,
2005: 715-734).
반면에 유사성 접근은 정서에 포함된 여러 기분이나 감정을 그의 유사 정도에 따라
유형화하는 방식이다. 유사의 기준이나 준거가 뚜렷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이를 도
식화하면 다음과 같다.2) 유사 정도에 따라 구분된 정서들은 각기 왼쪽으로 갈수록 그
강도가 세며, 오른쪽으로 갈수록 그 강도가 약하다.
황홀감(ecstasy)-기쁨(joy)-평온(serenity)
경계(vigilance)-예상(anticipation)-관심(interest)
격노(rage)-분노(anger)-짜증(annoyance)
증오심(loathing)-혐오감(disgust)-지루함(boredom)
비탄(grief)-슬픔(sadness)-수심(pensiveness)
경악(amazement)-놀람(surprise)-주의산만(distraction)
공포(terror)-두려움(fear)-불안(apprehension)
감탄(admiration)-신뢰(trust)-수락(acceptance)
또한 기본-혼합 접근으로 감정의 유형을 구분하기도 한다. 이 접근은 감정을 기본 감
정과 이의 혼합으로서의 이차적 감정으로 구분한다. 다시 말하면, 감정 기저에는 기본
혹은 일차 감정이 있고, 이들이 혼합되면 여러 다양한 감정들이 나타난다. 이런 관점을
보이는 학자들은 인류 보편적인 것, 생존에 유용한 것, 생애초기에 나타나는 것, 얼굴
표정으로 구분 가능한 것, 생리적 반응(뇌와 자율신경계의 활동)을 보이는 것 등을 기
본 감정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정서(emotion)와 얼굴 표정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에서
선구자격에 해당하는 에크만(P. Ekman)은 얼굴표정을 기준으로 공포, 분노, 행복, 혐오,
슬픔, 놀람 등의 여섯 가지 감정을 기본 감정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산
물이듯이 감정도 진화의 결과로써 다른 동물에서도 관찰되는 보편적인 것이라 하였다
(Ekman, 1992: 470-471). 이 전통을 잇는 자들은 이를 ‘6가지(big six) 기본 감정’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놀람’, ‘행복’이 단순한 감정이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
란이 있다(최현석, 2011: 77-78).
범 주 감 정
생존 및 발달 관련 감정
기쁨, 분노, 불쾌함, 슬픔, 놀라움, 두려움, 호기심, 성적 욕망
및 사랑
성취 관련 감정 자부심, 자신감, 희열, 질투, 성취감
도덕 관련 감정 죄책감, 수치심, 불안, 동정심
성격 관련 감정 조급성, 우울, 쾌활, 무력감, 잔인성
사회문화 관련 감정 권력욕망, 물질적 욕망, 우정, 가족애
이와는 달리 감정(feelings)을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측면을 중심으로 유형화하는 범
주적 접근도 있다. 이런 관점을 지닌 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생존 및 발달 관련 감정,
성취 관련 감정, 도덕 관련 감정, 성격 관련 감정, 그리고 사회문화 관련 감정으로 유형
화한다(이훈구, 2010: 6). 이에 따라 다양한 감정들을 범주화하여 표로 나타내보면 다음
과 같다. 그러나 이런 유형화 방식은 정서의 다양한 성격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
다. 예컨대, 분노, 자부심, 두려움 등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도덕적 삶과 밀접히 관련될
수 있다.
한편, 위의 방식들과 달리, 감정의 유형을 위계적 접근을 통해 구분하는 방식이 있다.
정서의 기능을 현상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쉘러(M. Scheler)가 대표적이다.3) 그는 감
정들이 여러 종류로 존재하고, 그 종류에 따라 작용하는 성격도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감정은 네 가지 위계수준으로 구분된다(쉘러, 1998: 398-412). 감성적 감정 혹은
감각적 감정, (상태로서의) 신체 감정과 (기능으로서의) 생명 감정, 순수 심리적인 감정
(순수 자아 감정), 그리고 정신적 감정(인격 감정)이 그것이다(Zaborowski, 2011: 30).
그는 감정들을 단순히 평면적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유형화하였다.
쉘러는 각각의 감정들 간의 관계를 독특한 양식으로 설명한다. 네 가지 감정들은 서
로 다른 층에 존재하기 때문에 강도(intensity)나 질(quality)에서가 아니라 그 본질
(essence)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들이 질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본
질에서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어떤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고귀하고 어떤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저속하다고 말한다. 또한 어떤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더 지속적이거나 덜 지
속적이고, 의미통일성이 강하거나 약하다(쉘러, 1998: 398-412). 쉘러의 설명 가운데 무
엇보다 각 종류의 감정들이 지향하는 가치들이 서로 다르다는 설명은 주목받을 만하다.
예컨대, 감성적 감정보다는 생명적 감정이, 생명적 감정보다는 심리적 감정이, 그리고
심리적 감정보다는 정신적 감정이 더 고귀하고 더 지속적이고 더 의미통일성이 강하다
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어떤 감정의 발달을 도모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해준다.
III. 도덕적 정서의 성격과 종류
1. 도덕적 정서의 성격
도덕적 정서는 매우 중요함에도 흔히 간과되어온 인간의 도덕적 기제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도덕적 정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적 표준에 따라
행위를 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게 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Tangney,
Stuewig, Mashek, 2007: 346). 그렇다면 과연 도덕적 정서란 어떤 성격을 지닌 정서인
가? 여기에서 우리가 도덕적 정서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덕적’이란 말의
의미부터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도덕적’이란 말의 의미는 결국 도덕성에 관한 정의와
관련된다.
이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떤 명제를 도덕적
명제로 만드는 형식적 조건을 상술하는 것이다. 예컨대, 헤어(R. M. Hare)가 제안한 바
와 같이, 그것은 ‘규정적이다.’ 혹은 ‘보편화 가능하다.’ 등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도덕적 이슈의 구체적인 조건들을 상술하는 것이다. 예컨대, 도덕 규칙과 판단
은 판단자 혹은 의지자보다는 전체로서의 사회 혹은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이나
복지에 관한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Gewirth, 1984: 978). 헤이트(J. Haidt)가 도
덕적 정서를 “전체로서의 사회의 이익이나 복지 혹은 최소한 판단자나 행위자 개인보
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익이나 복지와 관련된 것(Haidt, 2003: 276)”으로 정의한 것도 이
런 맥락에서이다. 결국 도덕적 정서는 형식적 조건, 즉 보편화 가능한 도덕적 규칙의
준수 혹은 위반에 반응하는 것이거나 혹은 타인들의 안녕에 기여하거나 침해하는 행동
의 동기에 반응하는 것으로 제한될 수 있다.
도덕적 감정을 다른 감정들과 구별 짓는 이러한 설명은 ‘유발인(elicitor)’과 ‘행동 경
향성(behavior tendency)’이라는 준거로도 역시 가능하다. 이 두 가지 준거는 형식적 조
건에 해당하는 도덕 규칙과 더불어 사회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
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발인’이란 정서 발생의 원인이 되는 외적 자극을 일컫는다.
어떤 정서가 도덕적 정서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유발인이 도덕 규칙 혹은 원리와
관련되어야 한다. 도덕 규칙이나 원리 정향적인 유발인에 의한 정서일수록, 그것은 전
형적인 도덕적 정서로 간주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즉, 도덕적 정서를 다른 정서들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서 유발인은 자기 자신이 도덕적 규칙이나 원리를 위반하였
거나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때,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사례
를 경험할 때 갖는 심정적 반응과 관련이 있다. 결국 도덕적 정서의 필요조건은 자기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규칙이나 원리의 준수 혹은 위반에
대한 자각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된 심정적 반응을 ‘규칙 정서(rule-emotions)’라 부
를 수 있다(Spiecker & Straughan, 1988: 46).
그러나 어떤 도덕 규칙이나 원리를 준수 혹은 위반함으로써 경험하는 것 그 자체로
도덕적 감정을 규정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앞에서 말
한 그러한 도덕적 정서를 경험하지 않고 도덕 규칙이나 원리와 상충하는 방향에서 의
도적으로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또 다른 필요조건이 요청된다. 도덕적
감정의 두 번째 요건은 일반적으로 부모나 교육자들이 자녀나 학생들이 미래에 성장하
기를 기대하는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획득하기를 바라는 감정과 관련되는 것으로, 그
것은 ‘행동 경향성’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동 경향성’이란 타인들의 삶과 관련된 행
동 방향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이타성의 정도를 뜻한다. 어떤 정서가 도덕적 정서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행동 경향성이 친사회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리사욕을 벗어
나 타인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 감정을 ‘이타적 정서(altruistic emotions)’이라
부를 수 있다.
이 두 가지 형식의 정서는 발달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다.
다시 말하면, 규칙 정서와 이타적 정서는 아동들의 정서 발달에 상호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이타적 정서들은 아동들이 규칙 정서들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을 형성해주고,
또 한편으로 이타적 정서들의 정당화와 적절한 정도는 규칙 정서들에 의해 영향을 받
는다(Spiecker & Straughan, 1988: 50). 발달의 측면에서 보면 이타적 정서들이 먼저 나
타난다. 어린 아동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빠른 반응을 보인다. 호프만(M.
Hoffman)은 이와 관련한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Hoffman, 1984: 290). 규칙 정서의 발
달은 동료의식, 공감, 동정, 상호 이해와 같은 기본적인 이타적 정서들의 기초 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Spiecker & Straughan, 1988: 53).
한편 이타적 정서들은 규칙 정서들의 도움으로 정당화되고 또한 교정될 수 있다. 즉,
규칙 정서들은 나타난 이타적 정서들이 적절한지 혹은 부적절한지를 결정한다. 특히 이
타적 정서들의 범위(scope), 지속성(duration), 강도(intensity)와 관련하여 그 적절성의
기준을 제시해준다. 죄의식, 정의감, 의무감과 같은 규칙 정서들은 이타적 정서들을 위
한 정당화의 조건을 형성한다. 규칙 정서들은 이타적 정서들의 제한된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다. 예컨대, 처음에는 이타적 정서가 자신과 가까운 동료들에게만 향하였다하더라
도, 다른 사람들의 복지와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규칙 정서에 의해 교정될 수
있다(Spiecker & Straughan, 1988: 54-55).
2. 도덕적 정서의 종류
도덕적 정서는 그동안 기껏해야 죄의식, 수치심, 공감 혹은 동정심, 분노 정도가 연구
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
하였다. 도덕성 연구의 중심추가 ‘추론’에서 ‘정서’로 옮겨가고, 도덕적 정서의 연구 대
상 또한 그 지평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경향성은 관련 학계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 편수들의 변화에서 뚜렷이 나타난다.4) 도덕적 정서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크게 증가하였으며, 전통적인 주제였던 공감(empathy)과 죄의식(guilt)은 별
로 증가하지 않았으나, 다양한 도덕적 정서들이 새로운 학문적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야 할 도덕적 정서들의 종류를 나름의 준거에 의거하여
분류하고 그 특징을 검토해 본다.
도덕적 정서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규칙 정서’와 ‘이타적 정서’로 양분될 수도 있으
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덕적 정서’를 다른 ‘일반 정서들’과 구별 짓고자 하는 준거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도덕적 정서들을 본격적으로 구분한 연구로 헤이트(J.Haidt)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발인’과 ‘행동 경향성’을 기준으로 도덕적
정서를 네 가지 군으로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 정서들은 타인 비난군(비난,
분노, 혐오), 자의식군(수치심, 당황, 죄의식), 타인 연민군(연민), 타인 칭찬군(감사, 존
경) 등으로 구분된다(Haidt, 2003: 852-870). 그러나 헤이트가 도덕적 정서를 일반 정서
와 구분 짓는 특징적 준거로 유발인과 행동 경향성을 적용한 것은 옳지만, 그의 접근방
식은 다양한 도덕적 정서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예컨대,
자의식군에 속하는 정서들도 부정적, 긍정적 정서들로 구분이 가능하며, 타인 연민군
또한 타인 비난군이나 타인 칭찬군과 중복될 여지가 많아 새로운 대안이 요청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도덕적 정서를 일반 정서와 구분 짓는 특징적 준거인 ‘유발인’
과 ‘행동 경향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도덕적 정서들을 포괄할 수 있는 방안
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초점(focus)’과 ‘유의성(valence)’5)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중심으로 도덕적 정서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다. 도덕적 정서들은 두 차원을 교차시킴
으로써 네 가지 범주로 유형화될 수 있다(Tangney, Stuewig, Mashek, 2007: 361). 여기
에서 초점이란 정서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아와 타인을 스펙트럼의 양극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유의성이란 어떠한 뜻이나 의미가 있는 성질을 나
타내는 것으로, 긍정성과 부정성을 스펙트럼의 양극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도
덕적 정서들은 자아에 초점을 둔 유의성과 타인에 초점을 둔 유의성으로 구분되고, 다
시 각각의 도덕적 정서들은 긍정적 유의성과 부정적 유의성으로 구분된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그에 따른 정서적 반응(예컨대, 죄의식
대 긍지, 자기 칭찬)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자아 정향의 도덕적 정서들, 즉 자아에
초점을 둔 도덕적 정서들은 기대된 행동과 실제 행동에 관련된 중요한 피드백을 제공
함으로써 도덕적 선택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정서
적 반응을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과거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다. 즉, 비슷한
실제 행동과 사건에 대해 과거에 결과 되었던 정서들에 근거를 둔다. 자아 정향의 도덕
적 정서들은 다시 긍정적 유의성의 정서들과 부정적 유의성의 정서들로 구분된다.
부정적 유의성의 자아 정향 정서군에 속하는 대표적인 도덕적 정서들로는 수치심
(shame), 죄의식(guilt), 당황(embarrassment)이 있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 정서는
지금까지 도덕 심리학의 주요 연구 대상으로 지위를 누려왔던 것들로, 자아에 대한 기
대와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반응들과 관련되며 자기반성과 자기평가로 인해 야기
된다(Tangney, Stuewig, Mashek, 2007: 347). 이러한 자기 평가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
일 수 있고, 우리의 자각 장치 아래서 의식적으로 경험되거나 이식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아가 이러한 자기 의식적 정서들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자아가 자아를
반성함으로써, 도덕적 자아 정향 정서들은 행동의 직접적 처벌 혹은 강화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수치심, 죄의식, 당황은 우리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수용가능한 지에
관한 직접적이고 분명한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정서적인 도덕적 척도로서 기능한다.
당황은 “여러 사람들과 관련된 사회적 곤경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으로 기피하고 싶은
굴욕, 부끄러움, 유감의 상태(Miller, 1995: 322)”를 의미한다. 그러나 당황은 수치심과
죄의식만큼 지금까지 그렇게 도덕성의 중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예컨대, 성
인들이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느낄 때와 당혹감을 느낄 때의 비율을 비교해보면, 후자의
경우가 도덕성의 이슈와 덜 관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Miller, 1995: 359). 그럼에도 불
구하고, 당황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적 표준과 일치하는 방식에서 삶을 살아
가도록 하는 노력을 지지해주거나 방해할 수 있는 어떤 조건들이 존재한다.
당황에 의해 자극된 동기는 도덕적 행동을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당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승인을 얻고 그들과 동류가 되고자 타협적인 방식에서 행
동하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하면, 당혹감을 느낀 사람들은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경향
이 있다. 따라서 비록 직접적인 사회적 환경의 작은 규범들에 의존하긴 하지만, 당황은
넓게는 사회적으로 수용된 도덕적 표준을, 혹은 지역적으로 승인된 행위에 따르고자 하
는 성향을 보인다. 수치심이나 죄의식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당황을 경험하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보면, 신경증적 성향, 높은
부정적 정서 수준, 자의식, 그리고 타인들로부터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당혹감을 잘 느낀다(Miller, 1995: 315-339).
도덕 심리학에서 도덕적 정서에 관한 대부분의 이론과 연구는 부정적 유의성의 자아
정향 정서들을 강조하여왔다. 그러나 도덕적 정서의 지평에는 훨씬 더 넓은 범위가 존
재한다. 다행히 최근에 긍정 심리학 운동이 관심을 끌고, 몇몇 학자들이 긍정적 유의성
을 지닌 정서들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점차 도덕적 정서에 대한 연구의 영역이 확장
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긍정적 유의성의 자아 정향 정서군에 속하는 대표적인 도덕적
정서로는 자긍심(moral pride)이 있다.
도덕적 자긍심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소홀이 취급되어온 도덕적 정서에 해당하는
것으로(Tangney, Stuewig, Mashek, 2007: 360), “자신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성과를
낳는데 기여하였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의해 야기된 정
서”(Mascolo & Fischer, 1995: 66)이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초자아의 한 측면인 자아 이
상은 개인으로 하여금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하는 내적인 역할 모델이 되어 자신
을 칭찬하고 보상하게 된다(김태훈, 2008: 48-49). 자긍심은 사람들의 자존감을 고양시키
고, 무엇보다 앞으로 사회적 표준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는데 기여한다.
초점이 타인에 주어진 타인 정향의 도덕적 정서들은 자아에 초점을 둔 도덕적 정서
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긍정적 유의성의 정서들과 부정적 유의성의 정서들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데 도덕 심리학에서는 지금까지 주로 죄의식, 수치심 등의 부정적 유의성의
자아 정향 정서들과 함께 공감, 동정 등 긍정적 유의성의 타인 정향 정서들이 연구 대
상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따라서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도덕적 정서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온 셈이다. 특히 부정적 유의성의 타인 정향 도덕적 정서들에 대한 연구는 거
의 불모지에 가까운 형편에 놓여 있다.
최근에 헤이트는 도덕적 정서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시사
점을 제공해주었다. 지금까지 긍정적 유의성의 타인 정향 정서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타인들의 칭찬할 만
한 행위들을 관찰할 때 경험되는 그리고 관찰자들로 하여금 칭찬할만한 행위 그 자체
를 스스로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정서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오랫동안 관심의 소외
지대에 매몰되어 왔던 존경(elevation), 감사(gratitude) 등에 시선을 집중한 것이다. 물
론 공감과 동정은 고통 받는 타인에 대한 관심의 정서를 유발하고, 고통 받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행동을 자극하며, 타인들에게 해가 되는 공격성과 다른 행동들을 억제하기
쉽다는 점에서(Tangney, Stuewig, Mashek, 2007: 360; Eisenberg, Spinrad, Sadovsky,
2006: 517-549) 도덕적 심정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만함은 물론이다.
존경은, 혐오가 사람들이 신성성의 윤리를 파괴하는 것을 목도할 때 경험하는 도덕적
정서인 바와 같이, 특별히 덕스런, 훌륭한, 혹은 사람의 일 이상의 방식에서 행동하는
타인들을 목격할 때 유발되는 긍정적 정서이다. 이것은 가장 순수한 형체의 긍정적 정
서로 보이며, 특히 세계에 대한 “확장과 수립 이론(broaden and build theory)” 정향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Tangney, Stuewig, Mashek, 2007: 361). 다시 말해, 긍정적 정서
가 주의와 인지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개인적 자원을 확립시키고 안녕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
감사는 긍정적 유의성을 지닌 타인 정향 도덕적 정서의 또 다른 종류이다. 사람들은
특히 다른 사람의 자비에 반응하여 감사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이 다른 사람
들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 특히 그런 은혜가 기대되지 않았을 때 이런 유형의 정서를
경험하기 쉽다. 감사는 유쾌한 심정적 상태로서 책무가 부여되는 그리고 흔히 부정적
상태로 경험되는 부채와는 구분되는 정서이다(Tangney, Stuewig, Mashek, 2007: 361).
감사는 자체에 그리고 그 자체로 ‘도덕적’이란 점에서 도덕적 심정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정서가 은혜를 베푸는 사람(후원자)의 도덕적 (예컨대, 친사회적, 도움을
주는) 행동으로부터 나오고, 또한 수혜자들에게 후속적인 도덕적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는 점에서 도덕적 정서로 분류된다.
끝으로, 도덕적 정서에는 부정적 유의성의 타인 정향 정서군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도덕 심리학에서 가장 관심의 시선에서 비켜나 있었던 정서군으로, 비난(contempt), 분
노(anger), 혐오(disgust) 등이 이에 속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서이다. 이런 정서들은 상
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의 도덕성의 기원을 연구하여왔던 진화 이론가들에
따르면, 그들은 그의 원천을 상호적 이타주의에서 찾았다(킬렌, 스메타, 2010). 인간은
고도로 발달된 인지능력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협력하여 온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감
정을, 그리고 자신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발달시킨다는 것이
다(Tangney, Stuewig, Mashek, 2007: 361). 따라서 타인을 힐난하는 정서 곧, 비난, 분
노, 혐오의 정서는 타인들의 인격 혹은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속하는 것으로,
상호주의에 대한 이탈로부터 반응하는 정서이다.
분노는 비교적 같은 정서군의 다른 도덕적 정서들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
정서는 도덕적으로 관련된 영역에서 전형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던 부정적 유의성의 타
인에 초점을 둔 타인정향 정서이다. 사람들은 매우 광범위한 범위의 상황에 대해 분노
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사건이 전형적으로 자신과 개인적으로 관련된,
그러나 자신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다고 평가할 때, 그리고 그 사건이 책임을 져야 할
어떤 타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야기된 것으로 나타날 때 분노를 느낀다. 예컨대, 개인적
으로 관련된 목표가 방해되거나 좌절될 때, 가치 있는 소유물이 위협받거나 해를 당할
때 등이다. 거기에는 자신에 미칠 현실적 혹은 잠재적 해악에 관한 지각이 작용하며,
또한 타인들에 대한 상호주의에 따른 심정적 호소가 내재해 있다. 정당한 분노는 가해
자의 행동이 도덕적 표준을 파괴하는 사건들로부터 야기되는 특수한 종류의 정서에 해
당한다. 그런 경우에 그 해악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경험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제 3
자’인 관찰자들로 하여금 관찰된 부정의를 교정하기 위해 행위를 취하도록 동기를 제공
할 수 있는 도덕적 기능에 기여할 수 있다. 경멸과 혐오의 정서들 또한 타인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부터 기원한다. 그러나 이 도덕적 정서들은 정당한 분노가 도덕적으로 올
바른 행위를 하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다소 그 경향이 약하다.
한편, 비난, 분노, 혐오의 도덕적 정서를 자율성(autonomy), 공동체(community), 신성
(divinity)의 윤리와 상호 관련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자율성의 윤리’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혹은
한 개인으로서의 그 사람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나쁜 것으로 간주된다. 한
개인의 권리, 정의, 자유, 공정, 선택 등은 어떤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된
다. ‘공동체의 윤리’란 공동체의 위계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파괴하거나 어지럽히는
행위는 그 사람 자신에게 부여된 공동체 내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나쁜 행위
로 간주된다. 공동체에 대한 의무, 역할 책무, 권위에 대한 존중, 충성, 집단 명예, 상호
의존, 공동체의 유지 등은 어떤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끝으로, ‘신
성의 윤리’란 신성 혹은 순수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는 신
의 신성성을 존중하지 않거나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죄, 자연 질서, 신성, 타락, 영적 모독으로부터 영혼이나 세
계의 보호 등은 어떤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물론 문화적 환경에 따라 그 강도에서 차이가 나타나지만, 비
난, 분노, 혐오의 정서는 세 가지의 도덕률, 곧 자율성, 공동체, 신성의 윤리에 대한 파
괴에서 비롯된 각각의 심리적 반응에 해당한다(Rozin et al., 1999: 574-586). 그러나, 전
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난을 자율성의 윤리로, 분노를 공동체의 윤리로, 그
리고 혐오를 신성의 윤리로 각각 연계시켜 설명하는 데에는 그에 합당한 논거가 부족
한 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삶에서 비난, 분노, 혐오의 도덕
적 정서는 얼마든지 상호 중첩적으로 경험될 수 있기 때문이다.
IV. 결론
지금까지 이성 중심의 도덕 심리학자들은 심정(affect) 혹은 정서를 사고와 행위를 연
결시켜주는 가교 혹은 고리로 여겨왔다(Nucci, 1989: 8-9). 그러나 심정은 그 양자를 단
순히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행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뿐
더러 도덕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정은 개인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현재 행동의 결과를 얼마나 잘 예측할 수 있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관
찰자로서 혹은 과거에 도덕적 행동을 경험했던 자신의 정서 상태는 그와 유사한 도덕
적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도덕적 판단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Thomas, 1997: 140-142).
이제 도덕성을 도덕 규칙에 대한 단순한 이해나 지식의 문제로 설명하려 하는 도덕
심리학 접근은 적절치 않다. 도덕 심리학이나 도덕 교육학은 이 세상의 그리고 개인의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적 요소에 대한 관심이 필요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덕적 인간이 되는 데에는 도덕적 정서를 경험하는 능력이 필
요조건이다. 의도적으로 어느 누군가에 해를 끼친 후에도 반성이나 후회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마땅히 비난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 피해, 혹은 죽음을
가하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감정의 부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
은 도덕적 추론에서보다는 동정이나 공감, 사랑과 같은 도덕적 정서에서 결핍된 존재일
수 있다. (한나 아렌트나 도덕적 사고를 중시하는 입장에 대한 반론)
따라서 이성 중심의 도덕적 추론에 대한 편중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도덕적 정서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다각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동들이 단순히 지적인 기능들의 습득을 넘어서는, 정신(mind)의 습관만이 아닌 가슴
(heart)의 습관을 배우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선을 사랑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심정
의 양심, 내면의 목소리를 발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목소리는 옳음 혹은 선을 행
하고자 하는 보다 강한 욕망으로 하여금 탐욕, 이기심, 시기심과 같은 그런 감정들과
맞서 싸우도록 한다. 도덕적 정서는 도덕적 인간의 삶에서 불가분리적 요소인 것이다.
본 논문은 도덕적 정서가 인간의 도덕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기본 전
제하에 도덕적 정서의 성격과 그 종류를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도덕적 정서는 도덕적
규칙 혹은 원리의 준수나 파괴, 그리고 타인들의 안녕과 복지에 대한 관심의 반응과 관
련된다는 점에서 다른 정서들과 구별된다. 그리고 도덕적 정서들은 초점(focus)과 유의
성(valence)의 두 차원을 중심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부정
적 유의성의 자아 정향 정서군에 속하는 죄의식이나 수치심, 혹은 긍정적 유의성의 타
인 정향 정서군에 속하는 공감이나 동정 등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앞으로는 긍정적 유의성의 자아 정향 정서군에 속하는 자긍심이나 부정적 유의성
의 타인 정향 정서군에 속하는 비난, 혐오 등의 정서에 대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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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Emotion
http://en.wikipedia.org/wiki/Valence_(psychology)
Abstract
A study in the characteristics and kinds of moral emotions
Kim, Tae Hoon
In moral psychology, thoughts, emotions, and behaviors are generally regarded as
the three essential elements of deciding moral actions. But the cognitive structure
developmental theory, taking advantage of the reason-oriented moral philosophy, has
played the leading role in the theoretical arguments. While modern British
empiricists and psycho-analysts have given weight to the emotions as a principal
source of moral acting. This essay has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moral emotions
and studied those characteristics and kinds.
The moral emotions can be discriminated against other emotions by the standards
of elicitor and behavioral tendency. The moral emotions are characterized by relating
with moral rules or principles and showing a pro-social behavioral tendency. Also,
they can be classified into four types by the dimensions of focus and valence. Until
now, the researches in moral emotions have progressed within narrow limits. But,
next years, the various moral emotions which been neglected in the field of moral
psychology and moral education, for example, moral pride, contempt, and disgust
must be studied.
Key words: thoughts, emotions, behaviors, moral emotions, elicitor, behavioral
tendency, focus, valence
1)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분노는 어느 정도 이치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것을 잘못 알아듣는 것 같다. 마치 성급한 종이 말을 다 듣기 전에 뛰어나가서는 결국 주인의 뜻을 어기는 것이나, 혹은 개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그것이 친한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짖는 개처럼.”이라 면서 이성을 현명한 지배인으로, 그리고 정서를 어리석은 노예로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 리스토텔레스 저, 최명관 역 (1991),『니코마코스 윤리학』, 서광사, p. 9.
- 98 -
도덕적 정서의 성격과 종류에 관한 연구
2) http://en.wikipedia.org/wiki/Emotion
3) 영어권에서는 도덕성의 심정과 관련하여 ‘feeling’보다는 ‘emotion’이란 단어를, 독일어권에서는 ‘emotion’이란 단어보다는 오히려 ‘feeling’이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R. Zaborowski는 ‘감정(feeling)’을 심정적 현상(affective phenomena)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범주로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그 근거로 쉘러(M. Scheler)의 글을 번역하면서 독일어 ‘Gefühl’에 대한 가장 적절한 번역어로 본 것이다. R. Zaborowski (2011), “Max Scheler’s model of stratified affectivity and its relevance for research on emotionsmore”, Appraisal Vol. 8 No. 3 March, p. 31, 미주 1 참 조.
4) 숫자는 주제어 혹은 제목에 들어있는 단어를 포함한 논문들을 대상으로 한 편수들이다.
내용
- 99 - 년도
1975~79 1985~89 1995~99
emotion or emotions 211 933 1300
moral or morality 505 739 698 moral reasoning 54 110 81
정서
년도
1975~79 1985~89 1995~99
혐오(disgust) 0 10 36 수치심(shame) 18 70 173 분노(anger) 105 309 525 경멸(contempt) 1 9 4 당황(embarrassment) 10 31 22
공감(empathy) 혹은 동정(sympathy)
195 285 303
죄의식(guilt) 158 240 199
계 487 954 1262 J. Haidt (2003), "The moral emotions", R. J. Davidson, K. R. Scherer, & H. H. Goldsmith (Eds.), Handbook of affective scienc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852-870 참조.
5) ‘valence’라는 용어는 ‘원자가’, ‘유발성’, ‘유인성’, ‘유의성’, ‘유인가’, 심지어 ‘호감도’, ‘공감’ 등으 로 번역되기도 한다. ‘valence(유의성)’은 심리학에서는 특히 정서(emotions)를 논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사건, 대상, 혹은 상황의 타고난 매력(긍정적 유의성) 혹은 혐오(부정적 유의성)를 의미한 다. 예컨대, 분노와 두려움과 같은 정서는 “부정적 유의성”을 지니고, 기쁨과 같은 정서는 “긍정 적 유의성”을 지닌다. http://en.wikipedia.org/wiki/Valence_(psychology)
* 논문 접수 2013년 3월 13일 / 수정본 접수 4월 1일 / 게재 승인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