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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으로 기도]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편100:3~4)
[성경봉독]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1)
서론 –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의 깊은 의미
[인사]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축복합니다.’
사람은 자기 이름이 불리는 순간 반응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서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은 히브리어 원문 속에 굉장히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원문은 “카라 베쉠(qara be-shem)”입니다.
직역하면 “이름으로 불렀다”, “이름을 알고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냥 멀리서 “야!”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 없는 군중 속 하나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존재, 인생, 사명,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은
“나는 너를 안다.”
“나는 네 인생을 기억한다.”
“나는 네 존재를 안다.”
“나는 우연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너를 선택했다.”
이런 뜻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입니다.
이사야 43장은 이스라엘이 무너지고 포로가 되어 절망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끌려갔습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끝났다.”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셨다.”
“우리 인생은 실패했다.”
그런데 그 절망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나는 아직도 너를 안다.”
“나는 여전히 네 이름을 기억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여러분.
사람은 성공할 때는 이름이 불립니다.
잘나갈 때는 사람들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넘어지고 약해지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가 눈물 속에 있을 때도,
무너진 자리에서도,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이름을 부르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이 말은 소유의 개념 이전에 사랑의 선언입니다.
어머니가 자녀 이름을 부르듯,
목자가 양의 이름을 기억하듯,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십니다.
오늘은 그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두 사람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 지명하여 부른 이름,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 사람이었습니다.
우상숭배가 가득한 땅, 세속 문화와 죄악이 넘치던 도시 속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러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냥 한 민족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아.”
그 부르심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단지 “복 받는 사람” 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복을 받는 사람은 자기 인생만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은 자기 한 사람을 통해 주변이 살아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가문이 살아나고,
민족이 살아나고,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갈대아 우르의 한 사람을 부르셔서
열방을 살리는 믿음의 통로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는 현재 모습만 보지 않으십니다.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으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장래의 은혜를 보십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의 삶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근이 오자 두려워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 뒤에는 수많은 흔들림과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패를 보면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을 보십니다.
아브라함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리고 마침내 백세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끝난 몸이었습니다.
가능성이 사라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가능 속에서도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인생은 실패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아브라함은 정말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그의 이름은 믿음의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꾸는 것입니다.
본론 2 – 지명하여 부른 이름, 나사로
또 한 사람, 하나님께 지명하여 불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급히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바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결국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울었습니다.
집안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장례는 끝났고 무덤 입구는 돌로 막혔습니다.
무려 나흘이 지났습니다.
이 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끝이라는 것입니다.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인간의 눈에는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은 그냥 “나오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야!”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죽음 속에 묻혀 있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끝났다고 여긴 존재를 다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죽음의 냄새를 뒤로하고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울음소리 가득하던 집안에 환호가 터졌습니다.
절망하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얼굴에 눈물 섞인 웃음이 돌아왔습니다.
죽음이 끝인 줄 알았던 자리에서 삶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주님이 이름을 부르시면 죽음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절망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어둠도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무덤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시간.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시간.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시간.
그런데 주님은 오늘도 우리 이름을 부르십니다.
“나오라.”
“다시 일어나라.”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님의 음성은 생명을 일으키는 음성입니다.
회복을 일으키는 음성입니다.
죽은 마음도 다시 뛰게 만드는 음성입니다.
결론 – 오늘도 우리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명하여 부르셨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지명하여 부르셨고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도 부르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러분은 우연히 여기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아브라함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으키시고, 나사로처럼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여~
환경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상황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붙드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은 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 이 예배 자리에도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기억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는 내 것이다.”
이 부르심의 은혜가 오늘 우리 모두의 심령 가운데 깊이 새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나사로를 불러 환희와 소망이 되게 하신 우리 하나님의 이 은혜가 오늘 저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복복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이름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시며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칠 때가 있고,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눈물 흘리는 시간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아픔,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한숨도, 두려움도, 말 못하는 아픔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갈대아 우르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던 하나님.
무덤 속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셔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던 주님.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동일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넘어진 마음은 다시 일으켜 주시고,
지친 심령에는 새 힘을 부어 주시고,
어두운 생각 속에는 하늘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우리 인생이 상황에 붙들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 붙드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혹 눈물로 지나가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조차 헛되지 않게 하시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주님.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흔들리지만 주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들고 계셨음을 믿습니다.
오늘 예배드린 모든 심령 위에 하늘의 평안과 위로를 덮어 주시고,
다시 살아갈 힘과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이름을 지금도 따뜻하게 불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