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헌ㅡ시부문
1.운주사/김영헌
운주사 와불에게 물었더니
서면 앉고
앉으면 눕고 싶으니
옆에 와 같이 누워
하늘을 보자 하네
천년을 누워 생각하여도
하늘은 맑고 반짝이는데
아무도 같이 누워
그믐달 볼 수 없어
별을 헤아릴 수 없다네
작별 인사하였더니
눈빛만 주네
머물러 쉴 수 없는 가난이
애처롭게 웃음 짓네
와불을 지고
비탈길 내려와
초당 방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밤새워
천년을 풀어
나도 와불이 되네
2.창/김영헌
그들이 서있다
유리벽 너머
아무리 닦아도
못 지우는 흔적
그곳에 얼룩진 그들이 있다
지워버리고 싶은
차갑게 잠겨진 유리벽
내겐 망치도 없어
홀로 밖을 보지만
그들은 유리벽 안
얼룩진 나를 보고 있다
유리벽 너머
아주 먼 그곳
세상 잔인하기로
감정을 닫아버린 유리벽
얼룩에 얼룩을 그리고 있다
3.장마/김영헌
비 오는 날이면 철이 아빠
낚싯대 짊어지고 낙동강 간다
잿빛으로 아파 누운 강
침을 드리우고 비를 낚는다
오늘 밤 비 그치면
내일은 일하겠지
일주일 비를 낚았지만
바람결 근심만 일렁인다
모레는 철이가 수학여행 가는 날
내일은 부디 비라도 그쳤으면
비 오는 날은 옷만 적시고
이제는 낚시 그만 하고
달뜨면 공장에서 돌아오는 아내
'여보 내일은 집에서 쉬어요'
울먹이며 빨간 눈망울 설거지한다
4.탄저병/김영헌
사랑이 애가 타 둥근 흔적 남기니
연고동 빛 나이테 예쁘기도 하다
하룻밤 새긴 아픔 이리도 가슴 오려
가지마다 숨어서 멍들어간다
벌 나비 부르는 구릿빛 나이테
짝사랑 멍자국 참하기도 하다
내가 농부만 아니었어도
5.조문국 사랑/김영헌
아,누구의 무덤이 저리도 고운가
초록 치마 한가로이 펼쳐
아침 햇살 저고리 입은
옆 자리 저 무덤 누구던가
대지에 걸터 앉아
영혼으로 사랑했던 인연
천년을 약속한 부부인가
조문국 하늘 걸치고
능에 기대어 듣는다
누구의 체온이
천년 영혼을 설레게 하는가
죽음은 금방이고 세월을 지울 수 없어
바람처럼 사라져간 순간
먼산 묵묵히 지켜온 세월
역사의 울림이여 깨어나라
오늘 바람이 잠들었다고
천년 비바람을 피할 수 있으리
어찌 그날의 추억이라 말하리
혼을 바쳐 사랑한 임의 향기
무덤 속에서 꽃 피우는지 누가 알리오
ㅡ김영헌 프로필ㅡ
경북영천 출생
대구 영신고 졸
계명대학교 중국학과 졸
미8군NBC교관/전시지원담당 26년근무
저서:2015 소설<해고>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