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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으로 부터 3일 전, 나는 장염에 걸렸다. 오한이 들고, 한여름에 두꺼운 옷들을 감싸입어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으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이 어지러웠다. 와중에 열도 나고, 몸살 기운도 났다. 마치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고,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밤 동안에는 자꾸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10시 30분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꾸역꾸역 본관으로 나왔다. 뭐랄까, 굉장히 현실감각은 없고, 세상이 나와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을 받다가, 그 사이로 배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받고 나는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나의 증상을 유추해 보고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진하게 설사를 하고 난 후 작년 요맘때 즈음 걸렸던 장염과 증상이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나는 장염에 걸리고야 말았다. 아뿔싸, 하는 심정은 별로 없었고, 나는 살림 교실로 가 열심히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시던 여공에게 나의 상태를 알렸다. 여공은 내 이야기를 들은 후, 현곡께 다시 내 상태를 전달하시며 나에게는 나갈 준비를 하라고 이르셨다. 다시 꾸역꾸역 방으로 들어가 양말을 신고 나온 나는 현곡과 오디세이에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현곡과 병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현곡의 이야기를 듣기만을 반복했다. 사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정신을 부여잡느라 말을 할 힘이 나질 않았다.
병원에서는 친절한 의사 선생님께 진단을 받고, 간단하게 장염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은 나는 다시 현곡과 차를 타고 삼무곡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삼무곡에 도착하고 나서는 살림 교실로 들어가 여공께서 미리 준비해 주신 흰 죽을 먹었다. 사실 이 전까지는 장염에 걸렸다는 게 별로 와닿지가 않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내가 장염에 걸렸구나 싶었다.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있는 애들을 보니, 워크샵 생각도 나고, 건강한 아이들 사이에 아픈 내 모습 또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여공께서 차려주신 흰 죽을 먹다 보니, 자꾸만 애들 접시에 눈길이 갔다. 또 마침 오늘이 한희 생일이어서, 나는 한희에게 생일 그림 아직 그려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한희가 아프지 말라고 동문서답 답변했다. 그때 좀 명확하게 환자라는 나의 현재 입장을 좀 자각하게 되었다. 마침 흰 죽이 양이 너무 많아서, 결국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는데, 왜인지 당시에는 정말 너무나도 많게 느껴졌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방에서 폰을 보다가 여공께 걸려서, 그냥 푹 쉬고 잠을 쭉 잤다. 잠을 자니 나의 몸에 대한, 위크샵 진행 상황에 대한, 그 외 다양한 나에 대한 것들이 멀어지는지도 모르도록 멀어져 갔다. 현곡은 아마 특별히 음식이 문제였다기 보다는, 워크샵 준비 과정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되고 피로가 되어서 이렇게 되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게 힘들었나. 이번 워크샵 준비 되게 즐기면서 했던 거 같은데. 어쨌거나 목요일은 푹 잤다. 그래도 중간에 잠깐 윤하가 와서 걱정도 해주고 갔다. 새삼 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리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하지만 아파서 방에 누워있는 시간 동안에는 배움도 없었고, 내가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느낌도 없었고,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여러 삶의 요소들이 배제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들도 전부 무디게 느껴지고, 애초에 외부와 나의 이 공간이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는 것만 같았고, 나는 분명히 이 공간 안에 있었다. 굉장히 지루한 삶의 밀도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여러 나날들을 이어 나갔다.
금요일에는 더 아팠다. 몸은 더 나아졌는데, 사실 내 몸 상태가 정확히 파악이 되질 않았다. 좀 낳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내가 엄살 부리는 거 같기도 하고, 평소에도 이정도 몸살 기운은 달고 살았던 거 같다가도 어느새 정신 차리면 아팠다. 대체로 감각 기관이 무뎌졌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 청소도 나갔는데, 남자 화장실 청소하다가 어지러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근데 또 내가 엄살 부리는 건지, 진짜 힘이 드는 건지 헷갈리는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헷갈리기만 할 뿐 어떠한 대답이나 결론이 나지를 않았다. 이는 방 청소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냥 좀 힘들어도 힘내서 하고 끝내는 게 맞는지, 아니면 시체처럼 하는 게 맞는지 헷갈려하며 결국 시체처럼 하다가 엎어지고, 하다가 앉고, 하다가 쉬면서 어찌 저찌 방 청소를 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도 방 청소가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쨌거나 방 청소가 끝나니 이제 다시 쉴 수 있었다. 내일은 워크샵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운을 비축해 두었다가 마지막 리허설 때부터 다시 살아날 생각이었다. 그러니 일부러 생기있으려 하지도 않았고, 그냥 스스로도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분명 거기도 삶이 있는 자리였는데, 나는 그렇게 여기질 않았다.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워크샵 날에는 마찬가지로 쭉 자고, 또 아주 잘 쉬었다. 쉰다는 것에도 생기있게, 잘잘못이 나뉘어 진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마지막 저녁 밥을 먹고난 후, 리허설에 들어가자 없던 기운이 몸을 가득 채웠다. 버닝이 일어났는지, 잠시간 나는 몹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 왔다. 몸이 움직이고자 하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내 의도에 알맞게 죽어있던 감각 기관들이 살아났다. 그렇게 의미 있는 워크샵을 끝낸 이후, 버닝이 끝난 내 몸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 왔다. 그래도 해야할 일을 끝마쳤기에 한결 생기가 감돌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 아빠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다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삼무곡에 있을 당시에는 강하게 느끼지 못하던 결핍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식욕, 즉 음식에 대한 결핍이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특정적인 음식들, 그 음식들을 분명히 먹을 수 있는 환경임에도 먹을 수 없는 현실에 내 삶에는 제법 큰 상실감이 찾아왔다. 물론 바나나나 누룽지와 같이 몇몇 가능한 것들을 먹었지만, 그래도 비워진 상실감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데로 먹지 못한다는 상실감은 정말 거대하게 나를 감싸 안았고, 나에게 무기력한 나날들을 살게 만들었다. 정말, 세상 일은 내 뜻대로 되는 법이 별로 없다. 얼마 있으면 나는 해외 여행도 나가야 하는데. 도대체 내 삶은 나에게 왜 이런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내가 원하지 않는 모양의 옷을 입고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래도 사랑해야 할까? 그 모습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면 되나? 모르겠다. 아니, 정말 너무나 어려운 삶의 과제이다.
이 과제에 관한 궁극적인 대답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나름 대로의 모습으로 잘 살아 나가고 있다. 나름 대로의 마음 내기. 이게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내가 무언가 대단한 능력이라도 부렸나?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주어진 소소한 삶의 과제를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살아 나가게 된 건, 바로 시간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 덕분이었다.
삼무곡에서는 여공이 계셨다. 여공은 정말, 나보다 더 내 몸 상태를 신경 쓰시면서 내 옆에 있어 주셨다. 나조차 시선 두지 않는 나에게로 찾아와 준, 내게는 정말 소중했던 마음. 그 마음을 받으며 나는 육체적으로는 힘들더라도 덩달아 마음이 무너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 하는 엄마와 아빠의 노력에 점차 물들어 가며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조금만 틀어지더라도 내 삶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중요한 건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나는 장이 아프더라도 아픈 데로,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소소한 즐거움들에 만족하고, 그곳에 담긴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 대로 기꺼이 마주하고 사랑하면 되는 일이지 않은가. 결국 이 작은 마음, 내 앞에 나타난 삶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마음. 그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작은 마음 내기를 하기 위해, 이번에 내가 장염에 걸리고, 삶이 나에게 여공과 엄마 아빠라는 천사들을 보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나를 사랑해 준 수많은 천사들. 그들의 환희 빛나는 날개를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니, 삶이 이번에 과제를 다시 던져준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사실 이 장염이라고 하는 건, 돌이켜 보면 근래 3년 동안 매번 비슷한 시기에 나에게로 찾아왔었다. 작년 이맘때 즈음, 제 작년 이맘때 즈음. 그때마다 나는 그저 장염을 질병으로만 바라보고 불편한 내 삶에 불평을 늘어놓거나 한탄만을 이어 나갔을 뿐, 정작 그 순간 내 주위에 있던 천사들의 모습을 바라보거나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이건 내가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깨닫게 된 소소한 배움과도 연결점이 있는 배움이기도 하다. 바로 나 혼자 잘나거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전혀 그렇지도 않고,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말 그대로, 나 없으면 어떡하냐가 아니라, 우리 그래도 좋지 않았냐 하는 것. 정말 소소한 나의 일상 속에 위대한 스승님들이, 신이 나에게 보내준 천사들이 참 많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그게 너무나 알기 어려워서, 진짜 몇 백 걸음이고 다가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이번처럼 먼저 나에게로 다가와 주는 친절한 천사들도 있는 듯하다.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러니 평소에는 잘 하지 못하는 말, 진심으로 하지 못하는 말, 삶의 여러 순간 속에서, 거친 풍파를 맞아가다 보면 종종 까먹고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읽으면 좋은 거고, 읽지 못해도 좋다. 그냥 내가 이런 마음이라는 것만 모두 알아 주었으면 한다. 물론 내가 삶의 여러 순간 속에서, 그 순간의 감정에 씌여 선뜻 다른 모습으로 나타낼지라도, 결국 그 안 깊숙한 곳에는 이 말을 남겨두고 있다는 걸 말이다.
모두 정말 정말 사랑하고, 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번에 또 배움 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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