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사문학 작가론 1, 박영주, 고요아침, 2025.
주지하듯이 우리 고전시가 가운데 조선시대에 즐겨 향유되었던 대표적 갈래들은 시조와 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민중들이 일상에서 부르던 민요가 있었으나,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은 시조나 가사를 통하여 자신의 정서와 생각들을 표출하곤 했다. 물론 당시 사대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학 행위는 한문으로 이뤄졌으며, 시는 당연히 한문으로 쓴 한시(漢詩)를 의미했다. 그러나 한시는 읽어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기에, 들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시조나 가사를 창작하여 활용해야만 했다. 3줄로 구성된 시조는 짧은 노래라는 의미에서 단가(短歌)하고 불렸으며, 그보다 더 길게 노래할 수 있었던 가사는 긴 노래라는 뜻을 지닌 장가(長歌)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 책은 가사문학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가사의 형식은 대체로 한 줄이 4개의 음보(소리마디)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형식이 3행으로 정해진 시조와 달리 시행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한 행이 4개의 음보로 구성된다는 것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 아니기에, 때로는 한 행이 3음보에서 6음보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이 글자 수는 엄격하게 제한하는 한시나 일본 시가와 명백히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시행을 작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전하는 가사 작품들은 50행 정도의 작품에서부터 2천 행이 넘는 장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사가 언제부터 창작되었는지는 분명하게 언급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고려 후기에 창작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하겠다. 아울러 현전하는 최초의 가사 작품은 불교적인 이념으로 구성되어, 죽은 사람이 극락이라고도 하는 서방정토에 가기를 기원하는 <서왕가(西往歌)>라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승려인 나옹화상 혜근에 의해서 14세기에 창작되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사찰과 불교 신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향유되다가, 1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처럼 뒤늦게 문자로 기록된 것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구전되던 작품이 나중에 기록으로 정착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에 그것을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다고 하겠다.
가사 전문 잡지에 연재되었던 것을 일부 수정하여 책으로 엮어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 책은 48편 가운데 24편의 논문을 먼저 수록한 전체 2권 가운데 1권이다. 작가의 생존 시기를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기에, 고려 말에 창작된 <서왕가>의 작가 나옹화상 혜근과 조선시대에 창작된 <상춘곡>의 작가 정극인이 앞 부분의 항목에 배치되어 있다. 이어서 <매창월가>의 이인형과 <만분가>의 작가 조위, <낙지가>를 창작한 이서와 <면앙정가>의 송순, 그리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평가되는 <관동별곡>을 비롯한 작품들을 창작한 정철 등 모두 24인의 가사문학 작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에 수록된 <봉산곡>을 지은 채득기가 17세기의 작가로 확인되는데, 아마도 2권에서는 그 이후에 활동했던 작가들과 그들이 창작했던 작품들이 소개될 것이라 기대된다. 현전하는 작품들 가운데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적지 않으나, 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확인된 작가들을 소개하는 이러한 작업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