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1신 : 오월 역사기행, 울릉도 독도 탐방 - 울렁술렁 울릉도(1)

[이계양]

오월 역사기행, 울릉도 독도 탐방 - 울렁술렁 울릉도(1)

2021년 10월 8일 01시경

어둠을 뚫고 광주비엔날레 주차장에 속속 사람들이 도착하고 있다. 멀리 함평에서, 나주에서 올라온 이들도 있다.

모두들 심야의 어둠 속에서도 어떤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국토 최동단의 섬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국토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시 해가 가장 먼저 떠서 우리나라에 첫 햇빛을 비추기 시작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버킷리스트 삼아 꼭 한 번 가보리라 다짐했던 데서 비롯한 마음들이 주는 느낌이 아닐까.

출발을 약속했던 01시 30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줄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승차한 후 후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한 시람의 지각자도 없이 전원이 시간 내에 도착하여 울릉도로 가는 선착장이 있는 후포로 향하였다. 도착 예정 시간은 06시란다.

1년 반이 넘는 코로나와의 전쟁 속에서 긴장과 불안의 나날들을 보내느라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마침 경애하는 오월어머니집 이ㅇㅇ 관장께서 오월 역사기행 - 울릉도 독도 탐방을 권유하셨다. 갑작스런 권유였지만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마음이 먼저 동요하였다. 아내에게도 동참을 안내하였더니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아마 갑작스런 제안에 미처 준비되지 않은 까닭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내 동의하였고 그래서 직장의 일정을 조정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밤은 여행을 준비하느라 초저녁잠을 애써 참으며 멀미약과 옷가지 등을 챙겨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 얼마만의 여행인가.

작년 2월. 지리산 화대종주를 끝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없었는데 이제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치고 다소 안심한 가운데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래도 방역수칙 준수와 마스크 쓰기, 손 소독 등에 유의할 것을 다짐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한밤중인지라 출발하자마자 버스는 소등하고 모두 취침에 들어갔다. 중간에 2번의 휴게소 정차를 제외하고 줄곧 달려 예상보다 빨리 후포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이미 거창휴게소에서부터 기상청의 예보대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후포항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슬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후포여객선 터미널

다행하게도 바람이 심하지는 않았다. 아침 식사로 준비된 전복죽을 먹고 곧장 후포 여객선 터미널로 이동하여 탑승을 대기하였다. 다들 멀미를 대비하느라 부산하였다. 키미테를 붙여달라는 사람. 귀밑에 붙여달라니까 목밑에 붙였다며 농담하는 사람, 수삼을 먹는 사람, 알약을 먹는 사람, 조제약을 먹는 사람, 올벼쌀을 먹는 사람 등등 갖가지로 멀미를 대비하는 모습들이었으나 나처럼 다들 멀미보다는 ‘울릉도 독도에 간다’는 설렘, 기대감에 들떠 있는 듯했다.

출발 전에, 코로나 때문에 여행객들이 많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여행객들이 여기저기에서 몰려들어 대합실이 가득찼다. 거리 두기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인파였다. 다행스럽게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으나 그래도 여행인지라 들뜬 모습 또한 역력했다.

울릉도라는 자연자원 하나가 이렇게 많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심신을 위로, 위무하는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자연자원의 소중함을 다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잠시 시간을 내어 후포항에 나가보았다. 바닷바람을 쐬며 바다를 배경으로 아내인 강두희 씨의 사진을 찍어주며 건강상태의 양호함을 확인하였다.

7시 25분부터 후포발 울릉도행 J페리호에 승선이 시작되었다. 물론 독도에서 인증샷에 필요한 태극기와 오월어머니 손피켓도 잘 챙겨서 안전하게 승선하여 자리를 잡았다. 정박 중인 배가 좌우로 흔들림이 느껴졌다. 이슬비는 계속 내리고 배마저 흔들리니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는 사이 탑승을 완료하고 8시가 되자 여객선터미널 직원들의 손 흔들기 배웅을 받으며 울릉도 사동항을 향해 출발하였다. 곧이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선 중 유의 사항과 운항에 이상이 없음, 그리고 파고가 1.5m~2에 이르며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것임을 안내하였다.

*후포에서 울릉도를 출발하기 시작하던 때의 배 안

10분쯤 지나자 배가 파도에 따라 상하좌우로 출렁대니 승객들의 입에서는 비명 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배와 창문에 파도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 치는 듯하였다.

배 안의 TV에서는 장OO 의원의 아들이 공무집행방해와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다는 보도를 하고 있는 사이 파도의 파편이 창문을 세차게 때리며 배가 크게 요동하기 시작하였다. 롤러코스트를 타보지 않았지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창가에 쉼 없이 비와 파도의 파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8시 15분쯤부터 일행 중 한 사람이 멀미를 시작하였다. 바로 그 옆자리에 앉았던 아내가 바로 이어서 구토를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코로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멀미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에서 위생 봉투를 요청하는 손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자들처럼 긴박함을 호소하였다. 어쩌나. 강두희를. 약한 건강으로 이번 여행을 망설였는데 괜히 가자고 부추겼나. 건강이 더 악화되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 되었다. 앞으로 2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젠장 자리마저 옆자리가 아닌 뒷자리여서 더욱 좌불안석이었다. 1분에도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강두희의 상태를 살폈다. 하얗게 변한 얼굴빛을 하고서 계속해서 위생 봉투를 입에 댄 채 눈 감고 기도하듯 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미 아내 옆자리의 유OO 님은 화장실에 갔는지 자리가 비어 있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내가 고통 중에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기력함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찌 해 볼 방법도 없으면서 그래도 그냥 앉아 있을 수 있을 수만은 없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내에게 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어서자마자 배가 요동을 쳤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화장실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 만약 아내가 화장실이라도 가겠다면 부축해 가리라 생각하면서. 아내 자리에 가서 가만히 손을 잡으니 손대지 말란다. 움직이면 토할 것 같단다. 그야말로 애써 자리를 이동하여 뭔가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손도 댈 수 없다. 민망함, 무기력함이 겹으로 얹힌다. 함께 한 일행 8명 중 4명이 멀미로 고통 중에 있다. 다행히 일행 중 가장 연로한 79세의 정OO 이사장님은 멀쩡하시다. 다행이다. 그 옆자리 이OO 관장님도 비교적 무사한 듯해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울릉도에 도착하려면 80분을 더 버텨야 하는데. ‘강두희 잘 견뎌라. 우리 일행들 잘 버텨라. 이 배에서 고통받고 있는 승객들 모두 잘 버텨라’ 속으로 응원으로 기도했다.

그러면서 코로나와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 이 상황이 겹쳐 보였다. 얼굴색이 하얀 채 토하고, 더 토할 것이 없음에도 헛구역질로 온몸을 구부려 쥐어짜며 눈 감고 있다. 마치 기대를 포기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랄까. 남편도 아내도, 친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지위가 높아도 낮아도 상관없이 누구도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는 현실과 이 상황. 오직 스스로 견디는 것뿐.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 다 채워줄 것같이 굴어도 지금 당장 고통스런 멀미 문제, 코로나 문제, 실업 문제, 주택 문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는 존재. 오직 현실은 코로나만 문제이듯 지금 상황은 멀미만이 문제다. 모든 사람이 힘과 지혜를 모아도 해결이 불가능한 이 상황은 하나님께 기도하게 한다. 힘들고 어려워 죽겠을 때, 두손 두발 들 수밖에 없을 때에야 염치 무릅쓰고 하나님을 찾는다. 미련한 바보천치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수밖에 없으니.

다시 자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옆자리의 정OO 이사장님이 내게 슬며시 몸을 기대기에 돌아보니 자고 계신다. 아아, 바로 뒷자리 일행들은 멀미로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잠을 잘 수 있다니. 이것도 세상의 현실과 다르지 않겠거니 여긴다.

배가 좌우상하로 요동하는 것에 대하여 출발할 때에는 승객들의 환호와 탄식이 고성으로 표현되었다면 이제는 처음보다 더한 요동에도 승객들은 그냥 고요할 뿐이다. 일부는 잠을 자고, 일부는 멀미로 인해 고통받고, 일부는 긴장된 마음을 부여잡고 고요함으로 침잠하고 있다. 세파라는 파도에 시달리다 보면 결국 고요하게 되어야 하나 보다. 자연은 결국 사람들의 왁자지껄을 고요하게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것인가.

승선한 지가 1시간쯤 지났을까. 나도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지난밤 광주에서 후포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한 까닭일까 아니면 아내의 멀미로 인한 긴장감이 승선 한 시간 만에 풀렸음인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다시 일어나 강두희에게 다녀오기로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곁에 서 있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일어섰다. 강두희는 하얀 주먹을 움켜쥔 채 가슴에 얹고 있다가 또 구토를 한다. 기침까지 해가면서. ‘어서 도착 해얄 텐데’. 주위를 둘러본다. 아내 옆자리 유OO 님의 자리가 아직도 비어 있다. 어딘가에서 누워있거나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있거나 하는 모양이다. 그 옆자리 정OO 님도 가끔씩 구토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 옆자리 신OO 님도 앞 탁자에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있는 것이 힘든 모양이다. 그중 강두희의 상태가 가장 심하게 느껴진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옆자리의 정OO 이사장님이 화장실을 가신단다. 부축해 드리려고 함께 따라나선다. 요동치는 배의 복도를 걸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이사장님께선 한번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조심스레 팔을 부축하여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정OO 이사장님께서 “화장실 다니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네” 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셨다. 그래도 웃는 모습에 긴장이 다소 풀린다.

10시 10분. 출항한 지 2시간 10분이 지나고 있다. 울릉도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파도가 심하여 예정 시간보다 20분쯤 늦은 10시 40분경에 도착할 것이란다. 아내와 멀미하신 분들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한데 지연 도착이라니. 야속한 마음에 더디 가는 시간만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실루엣처럼 보이기 시작한 울릉도가 그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아, 아내 강두희를 울렁이게 하고, 우리 일행들을 울렁이게 하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승선객들을 울렁이게 하는 울릉도. 울릉도는 이렇게 울렁거리게 하는 섬인가.

목적지인 울릉도가 점점 선명한 자태를 눈앞에 드러내는 마지막 순간에 아내 옆자리 정OO 님께서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계피 사탕을 아내에게 건넨다. 건네준 정OO 님의 손길과 받아먹는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인다. 사탕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0시 30분. 울릉도가 코앞에 다가오자 고요하던 승객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울릉도 사동항에 하선하기까지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소리가, 다물고 있던 입들이 열려 수런거리는 소리가 살아서 기다리는 울릉도와 짝을 이루는 듯하였다.

드디어 울릉도에 도착했다. 광주에서 01시 30분 출발하여 9시간 만에 울릉도 사동항에 발을 디딘 것이다. 멀미에 지친 일행과 승객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 보였다.

*울릉도 사동항에 입항하다

울릉도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울렁이게 하여 고요하게 하고 다시 술렁이며 살아나게 하는 울렁술렁 마법의 섬인가.

[leehan202]

아.
언제쯤 을릉도의 비경에 대한 감탄사가 나올까
기대했는데 다음편이라니 ㅠ
어서 읽고 싶습니다.
두희님의 멀미로 인한 고통에 덩달아 안쓰러웠고 빨리 기력을 회복하기를 응원했답니다.
울렁술렁 을릉도 기행, 다음편을 고대합니다~

[날아(捏娥)]

울러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연락선을 타고가면 울릉도라
뱃머리도 신이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릉도..

노래도 생각나지요.멀미로 고생하셨는데 가기 힘든 만큼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한아]

아내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노심초사에 눈물까지 흘리며 읽었습니다.
저도 멀미가 두려운 사람인데 흑산도 갔을 때 생각나네요. 계피도 생강도 좋은 것 같아요, 멀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