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오묘함에 놀란다. 자연은 인간에 계절마다 색다른 선물을 안겨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파트 사잇길은 단풍으로 물들어 간다. 자연의 조화로운
섭리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2박3일 굳이 가까운 곳을 마다하고, 수학여행 기분으로 동해안과 설악산을
가기로 했다. 천안에서 합류한 한 팀과 광주 두 팀의 가을 여행이다.
첫날은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를 갔다. 원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길이도 상당
하고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낙석 위험 때문에 스카이워크 전망
대는 갈 수 없었다. 식당에서 막국수와 메밀묵, 전병, 녹두전, 더덕막걸리를
한잔씩하고 평창 오대산 월정사로 향했다.
월정사 입구에 다리를 지나며 보는 단풍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절 입구 우측
으로 유명한 1km 구간의 전나무숲을 걸었다. 우리나라 최대의 전나무숲길은
마스크사이로 스며드는 전나무 향기와 냇가 사이로 햇빛에 반짝이는 단풍이
마음을 너무나 차분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나타나 반겨주는 다람쥐가 너무나
귀엽고 우리도 마치 다람쥐 형제가 되어 숲속을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월정사는 6.25때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는 것이 아쉬웠고, 국사책에도 나오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탑인 8각9층 석탑을 보고서 발길을 돌렸다. 모두들 전나무길
은 여름에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라 했다.
첫날 저녁은 숙소에서 준비해온 김밥과 부대찌개, 막걸리로 조촐하게 즐겼다.
이틀째 일정은 예약자의 착오로 조금 늦게 숙소에서 출발한 설악산은 고등학
교 때 수학여행 온 기분이었는데, 긴 차량행렬로 인해 중간에 두사람은 내려서
케이블카 예약을 하러 30분 정도를 걸었다. 케이블카 예약은 2시간 30분 후
탑승이어서 일행과 합류 후 간단히 요기를 하고 주변을 산책했다. 형형색색의
오색 단풍이 색다른 가을을 연출한다. 은은한 노란색 단풍, 미치도록 빨간 단풍
들은 봄꽃의 아름다움에 뒤지지 않게 펼쳐져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땐 없었
던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봉우리에 올라
사진 몇 장을 찍고 숨을 돌리며, 나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봉우리에 풍경을
보는 것은 좋지만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말라 죽은 나무나 상처 난 바위들이
조금은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울산바위와 흔들바위를
보며 교복을 입고 줄지어 걸으며 동향의 여고생들을 만나게 됐던 기쁨도 한순간
스쳐 지나간다. 숙소에서 쪽지 한 장 건네지 못한 마음 약한 소년이었지만....
설악산을 뒤로하고 한계령 가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순두부집으로 갔다.
30년 전통의 할머니 순두부가 정말인지 재료 소진으로 우리가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담백한 순두부와 전병, 나물반찬이 정말 맛갈스러웠다.
한계령을 오르는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계곡에 단풍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최근에
단풍 중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본 것 같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따뜻한 한방차 한잔
씩 마시고 강릉으로 향했다. 가던 길에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와 저녁은 회
와 찰밥으로 맛있게 먹고 반주로 청하 한잔씩으로 여행을 자축했다.
삼일째 마지막 행선지는 정동진 심곡바다 부채길로 향했다. 해변길을 달리다 누구의 핸드폰에서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에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어요.
~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노래를 나지막이 따라 부르던 한 사람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고 있었다.
남편을 보며 대학 때 날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을텐데...
힘든 병마와 싸우는 여인의 애절함에 마음이 찡해졌다.
‘10년 후 우리가 이렇게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라며, 속마음은 내년에도
다시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장호원 근처 임원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황혼에 태양이 붉은 눈물을 머금고 산속으로 사라져 갔다.
단풍숲에서 가을 불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다.
세상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따습게 느껴지고 싶다.
첫댓글 하하님들 모두 잘 계신지요?
좋은 가을 나들이 함께 하지 못해 아쉽네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가을 단풍처럼 울긋블긋한
늦가을 행복하게 보내세요.
끝없이 파란 하늘, 하얀 구름들.설악산에 가면 더 청명하게 느껴지곤했지요. 늦가을을 멋지게 보내셨네요. 오래전 수학여행도 생각나요. 경주로 갔었거든요. 토함산 해 뜨는 광경 본다고 새벽 깨어나던 부시시한 얼굴들. 기차 입구에서 교련복 바지, 노란 티셔츠 입고 참 쑥스럽고 숫기없는 어린 날의 내 모습이 서 있어요. 잊혀진 계절만큼 나에게 아픈 추억은 없지만 친구 강** 그 말없는 아이가 이 노래를 들으며 훌쩍거리던 가녀린 손, 투명한 눈물이 다가옵니다. 마이프렌드 님을 뵙지 못해도 이리 파란 편지지에 쓰여진 아름다운 소식만으로도 반갑습니다. 감사해요. 언제 시간 내 영화라도 보러 오세요.
즐겁고 또 즐거울 여행 소감에 눈물이 납니다.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은 얼마나 좋던가요.
고즈넉히 걷던 때가 생각나며 다시 한번 상원사로 이어지는 길을 떠올립니다.
설악산의 붉게 타오르는 단풍,
구불구불 한계령,
북적이던 주문진,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뜻깊은 시간.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을텐데 눈물이 나는건 벌써부터 그리워서일까요.
행복한 여행이었지요?
부럽습니다.
설악산 단풍,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덩달아 다녀온 기분 듭니다. 몇 년 전 가을, 홀로 속초행 버스 타고 지인을 만나러 아침 일찍 나섰다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띠동갑쯤 되시는 언니와 설악산을 함께 올랐던 기억이 나네요.
하루 종일 그 분과 동행하다가, 교사인 지인께서 퇴근하시는 시각에 헤어졌었죠. 그 후로 가끔 연락했었는데
제 눈엔 그 언니가 참 멋져 보였어요.
훌훌 털고 자유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았죠.
마이프랜드 님, 어김없이 올려주신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설악산 울산 바위,흔들바위~
수학여행 생각나네요.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꼭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마이 프랜드 님, 가을 여행으로 확실한 소확행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