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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목사(1932~2018)의 저서들을 몇 권 읽으면서 그의 글쓰기에 매력을 느꼈고, <메시지 성경>을 통독하면서는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습니다. 마침 그가 직접 쓴 회고록인 <유진 피터슨>이라는 책이 탁월한 기독교 번역가인 양혜원 교수의 번역으로 출판되어 있어 읽게 되었지요.
유진 피터슨 목사의 삶뿐만 아니라 어떤 누구의 삶일지라도 간단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어렵고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회고록의 초점 중의 하나가 ‘목사’라는 소명에 대한 것이기에 그 부분을 중심으로 후기를 대신하고자 합니다(유진 피터슨 목사의 삶에 대해서는 위 사진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위의 글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것인데, 유진 피터슨 목사가 회고록의 제사(題詞 : 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로 삼은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이 제사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의 중심 주제인 목사의 소명에 대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잇는 것이었지요.
유진 피터슨 목사는 늘 직업적인 목사가 아니라 소명에 의한 목사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목사에 대한 소명의식은 없었습니다. 그의 꿈은 교수나 작가가 되는 것이었지요(신기하게도 나중에 그는 이 두 가지 소망도 이루게 됩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성경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관심이 컸던 유진 피터슨은 20대 후반에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면서 밧모 섬의 사도 요한을 통해 목사의 소명을 깨닫게 되고 평생동안 사도 요한을 자신의 멘토로 삼게 됩니다.
그는 1962년 메릴랜드에 ’그리스도 우리 왕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세운 뒤 29년 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 그의 나이 58세에, 그것도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자진하여 그만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요. 더 놀라운 것은 회중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요. 저는 오히려 이것이 진정한 목회자와 회중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가 목회를 하는 동안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회중들이 늘어나서 지하 카타콤 교회를 벗어나 새로 지은 예배당으로 이전한 후 6년 동안 그의 목회에 큰 침체기가 찾아왔지요. 이때 그는 장로회의에서 결단을 내립니다. 자신은 교회 운영에서 손을 떼고 교회 운영의 전권을 장로회의로 넘긴 것이지요. 이 때 그가 한 말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대화할 시간이 있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예배로 인도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바쁘지 않은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이 책에서 미국 교회의 소비주의를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소비자로, 목사들은 종교 사업가로 전락하여, 영성을 사고 파는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소비주의는 목사도 바쁘고, 성도들도 바쁘게 만듭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12)라는 말씀처럼, 이 흐름에 거슬러 바쁘지 않는 목사, 그러나 목회의 본질을 결코 잃지 않는 목사가 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 책의 맨 앞부분에 있는 제사가 비로소 이해되었습니다. 그는 목사를 작살꾼에 비유하였지요.
“역사는 곧 영적 전투가 펼쳐지는 소설이고, 교회는 포경선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소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에너지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배에 작살꾼이 없다면, 그 추격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혹은 작살꾼이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고 노를 젓다가 지쳐 버리면 작살을 던질 때가 됐을 때 정확하게 던지지 못한다.”
그는 “목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는 세례식과 장례식을 가장 좋아한다고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식에서는 세례받는 자가 주인공이고, 장례식에서는 묻히는 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두 가지 의식 모두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가 가장 존경했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칼 바르트(1886~1968)의 다음과 같은 말을 그가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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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유진 피터슨은 또 다른 방향에서 인간과 신앙을 해석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는 너무 영적이어서 정작 인간이 되는 법을 잊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신앙의 왜곡을 정확히 지적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거룩해 보이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더 종교적인 언어, 더 경건한 모습, 더 높은 영적 수준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비교와 경쟁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진 피터슨이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참 사람이 되고 싶은 존재인가, 아니면 종교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존재인가?”
이 질문은 신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묻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보다, 다른 사람보다 더 거룩해 보이려는 삶을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 경건한 말, 더 신앙적인 태도, 더 종교적인 모습을 추구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비교와 경쟁,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피터슨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피터슨이 강조한 첫 번째 핵심은, 성경은 본래 일상의 언어로 주어진 말씀이라는 것에 출발한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오래 “거룩한 책”으로만 생각한 나머지 마치 처음부터 어려운 종교 문서였던 것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실제 성경은 시장과 가정과 들판과 바다와 식탁에서 들리던 언어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삶의 이야기이다. 씨 뿌리는 농부, 잃은 양, 빚진 사람, 잔치, 장사, 노동, 가족 이야기이다.
바울의 편지 역시 교회의 갈등, 관계의 문제, 돈과 노동, 슬픔과 위로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문제 속에 주어진 말씀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처음부터 삶과 분리된 종교 언어가 아니라 삶 속에서 들리도록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경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언어는 굳어졌고, 의미는 개념으로 바뀌었으며, 말씀은 삶이 아니라 설명의 대상이 되었다. 성경은 존중받지만 실제로는 멀어지는 구조가 되었다. 피터슨은 이런 단절을 명확하게 보았다. 그리고 원래 성경이 가지고 있던 성격을 다시 드러냈다. 즉, 성경이 삶과 연결된 말씀이라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키고자 애썼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 작업은 번역이 아니라 회복의 작업이었다.
그는 성경을 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원래부터 삶 가까이에 있던 말씀이라는 사실을 다시 들리게 만들었다. 성경을 높이 들어 올리면 존경은 생기지만 거리도 함께 생긴다. 거룩하게 느껴지지만 내 삶과는 연결되지 않는 책이 된다. 피터슨은 그 거리를 무너뜨렸다.
그는 성경을 예배당 안에만 두지 않고 부엌으로, 직장으로, 관계 속으로, 고통의 자리로 가져왔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자고, 먹고, 일하고, 살아가는 일상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로 풀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성경의 의미를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말씀은 이제 듣는 순간 끝나는 말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말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진정한 힘은 글이 아니라 삶에 있다. 그는 한 교회에서 오랜 시간 목회했다.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 반복되는 문제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삶의 복잡함 속에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나는 목사다”라고 고백했는데, 그 말은 종교적 권위를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고백이었다. 말씀과 삶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바로 거기에 자신이 서 있어야 한다는 소명의 고백이었다. 우리는 흔히 위대한 책만 기억하지만, 사실 그 책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 곁에 머무르려는 한 사람의 오래된 충성이었다. 결국 깊은 영성은 일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끝까지 남아 하나님의 진실을 증언하는 데서 나온다.
[출처] 상처와 결핍,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작성자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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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한 멘토는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알렉산더 화이트Alexander Whyte, 프레더릭 폰 휘겔Frederick von Hugel 남작이었다. p.353
우리 회중의 남자와 여자들이 나를 흥미롭게 하느냐 아니면 지루하게 하느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들을 데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지의 관점에서 그들을 영혼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p.355
종교의 세계는 순진한 미신, 심술궂은 격론, 원칙없는 속임수가 넘치는 곳이다. 영적인 삶에 대해서 글을 쓰고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안 좋은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피상적인 얄팍함에 서부터 유명세를 추구하는 쇼맨십까지, 우상숭배적인 유행에서부터 빛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목사들은 곧 알게 된다. 신경증적이고 유아적이고 종교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이러한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폰 휘겔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눈에 띄는 사람이다. 뉴먼처럼 그도 영국 사람이었지만, 직업이나 지위가 없었다. 그는 학자였는데, 옛 사본들을 연구하고 거기에 주석을 달았고, 평신도로서 영적인 삶에 대해 글을 썼다. 그는 많지 않은 개인적인 수입으로 아내와 세 딸, 그리고 퍽이라는 개와 함께 살았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사랑과 신앙과 순종의 문제에 대해서 조언과 지도를 구하러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편지를 썼다. 그는 내게도 편지를 썼다. 물론 나에게 직접 배달된 편지는 아니었다. 그가 그 편지들을 쓸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는 내가 태어나기 7년 전에 죽었다. 하지만 그가 쓴 편지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것이, 회중과 함께 살면서 온전하고 건강한 삶의 방식을 분별하는 데 필요한 언어와 기질을 찾고 있는 목사인 나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열정을 부추기는 것을 경계했고 ("우르르 몰려들어서 성취된 일은 이제까지 하나도 없습니다"),,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 단순하고 성급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경고했고 ("제발 단번에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영혼은 각자 고유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충고나 심리학적 범주를 사용한 피상적인 진단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도, 격려할 수도, 지도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영혼에는 '이하동문'이 없습니다").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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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회중의 영혼에는 큰 관심이 없다면 어떨까...?
본질적인 것은 '영혼'에서 시작된다.
근간이 바로 세워져야 부수적인 일도 가능한 것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
다른 모든 일보다 영혼을 돌보는 일이 우선시 되고 바탕이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프레더릭 폰 휘겔Frederick von Hugel의 책은 검색해 봤더니 번역서가 많지 않다.
유진피터슨의 회고록에는 피터슨이 멘토로 삼았던 좋은 책과 저자들이 소개되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