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날..
시골 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고향집 노모를 뵙고 왔다.
한창때의 노모는 동네 경로당에 대장이었고, 내가 드리는 용돈이 최고의 파워였다.
가끔씩 고향집에 가면 노모와의 용돈 절차가 있었다.
인사 하고 마누라가 용돈 봉투 드리고, 노모 한참 공치사 하시고는.. 이후 부터는 아들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눈을 안때신다.
내가 찬스 봐서 드리는 추가 용돈을 며느리 눈에 안띠게 싹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며느리 없는새에.."옴마 이거 너어 두이소.." 하고 지갑에서 봉투보다 더 많이 뽑아 드리면..
"오-냐.." 하시며 받으시고는...하나. 둘.. 세어 보고 얼른 줌치에 넣어신다.
여러번 해본 솜씨라...모자간 눈 짓으로 .. 순식간에 다다닥 이다.
가끔은..
"야아야 이.. 이번 파스(기간에)는 돈이 떨어저서 죽을뻔 했다..아이가.." 하신다.
일부러 "어.. 옴마.. 생생한데요..폿대가 안나는데요..?" 하면...
" 아이다야..돈이 똑 떨어저서...힘이 항개도 없었다. 니 오기만 기다맀다 아이가..내 쉽겁뭇다이
..인자 됐다..고맙다이.." 하시며 대만족, 돌아 앉아 쓸돈들 항목별로 도리도리 챙기신다.
이런 노모가 고령으로 몇년째 집에만 계신다.
어제도 " 옴마..." 하고 ...고향집에 들어 가니 방에서 "누고..? 왔나..?니가 우짠일고..?" 하시며
일어나 앉으시며 이 아들 손을 잡고 또 볼에 비비며 우신다.
세월에 밀려서 노인이 온통 하얗다. 백발의 머리 부터 깨끗하라고 입어신 옷 까지 온통 하얗다.
눈물이 흐르는 눈도 전에는 부리 부리한 쌍꺼풀 이었는데 반쯤 감겨서 작다.
흘러내린 바지 허리춤께로 군데 군데 검은 반점도 보인다.
아직 변하지 않은건 아들 반가워 하시는 모습뿐이다.
큰 봉투는 모시는 형님 드리고 지갑에서 작은금액 용돈을 꺼내 "옴마.." 하고 드리니..또 만원. 이만원..
하고 다 세어 보시고는 당신은 집에만 있으니 씰데가 없다며 한장만 할테니 나머지는 갖고 가서 내
아이들(손자) 주라고 하신다.
"옴마..고마 딱 갖고 있심서 묵고 싶은거 있으모 형님한테 사 달라고 케서 사묵고 하이소.." 했더니
"오냐.." 하고는 금방 또 만원..이만원.. 하고 웃목에 놓으며 좋아라시다.
잠시 이런 저런 노모의 덕담 듣고 "내가 오래살아서 우짤래..너거가 고생하는데.." 하시면서도 더 많이
살고 싶으신 속마음의 이야기 까지를 듣고.. 행사 참석 때문에.."옴마..갈께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도..."그래 가 봐라..채금을 맡으면 단디 해야 한다..빨리 가봐라이.." 하신다.
" 예..옴마 갑니더. 방학하면 아이들 대리고 같이 또 올께요.." 하고 나와서 마당을 지나는데...
노인이 대성 통곡을 하신다.
" ...니가 인자 가면..언제 또 보노..내가 죽었다 쿠모 와봤자 그만..이고...내가 왜 이리 되었노..자석들
마음대로 보지도 못하고..집밖에 한번 못나가고 천날 만날 집안에서만 박히 가지고...자석들한테
애물만 되고...예날에는 어디든 다니고 했건만..내가 와이리 되었노." 하시며 방에서 혼자 우신다.
마당 가운데서 노인이 안타까워서 한참을 그대로 섯다가 다시 방에 가서
"옴마..내 금방 또 올게요..걱정말고 가만히 계시이소.. 또 올께요..." 하고 같이 손 잡고 울고 나왔다.
행사 내내...안타 까운 노인 생각에 마음이 아파서...매년 조금씩 하든 찬조금 협찬도 못했다.
내 옴마에게 용돈 충분하게 못드리는 불효자가 남의 일에 돈 잘내고 좋은 소리나 들을려고 하는게
위선이고, 폼만 잡을려는거 같아서..차마 못내고... 그냥 넘겼다.
만 하루가 지났지만 고향집 노모가 눈에 선하고 속수무책 늙어 가시는 노모의 모습이 안타까워 마음
이 아려온다...
앞서니 뒷서니 하면서 누구나 거쳐야 하는 삶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노모 생각에 또 눈물이 날려고
한다.
첫댓글 울 엄니도 지금 마이 펺찮으신데요...이글 읽으니 남동생집에 계시는 엄니 한테 가 뵈어야겠네요.~가슴이 찡 합니다.
가슴이 아려서 눈물나네요. 내 부모님도 그러실텐데~
연꽃송이. 수국 님 답글 감사 합니다...글 보아 주신님들께도 두루 감사 올립니다...건강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