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사위성)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때에 많은 수행승들이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안부를 나눈 뒤에 한쪽으로 물러 앉았다.
그들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이교도의 유행자들이 우리들에게
'벗들이여, 수행자 고따마는 무엇을 위해서 청정한 삶을 사는가?' 라고 질문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고 저희들은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해 청정한 삶을 산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저희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맞게 말한 것입니까?,
잘못 비난한 것은 아닙니까? "
[세존] "수행승들이여, 진실로 이렇게 설명했다면, 그대들은 내가 말한 것과 같게 말한 것이고,
비난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해 청정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이교도의 유행자들이 '그런데 벗이여, 이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그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위한 길이나 방도는 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은 어떠한 것이고 방도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팔성도)입니다.
즉,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이고 방도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이교도의 수행자들에게 이와 같이 대답해야 합니다."
-쌍윳따니까야, 제45쌍윳따 길, 무명품, '무엇을 위해'의 경, 전재성 역, (윤문)
첫댓글 부처님은 우리 삶의 고통은 탐욕과 분노와 무지에서 일어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와 생계(직업)를 성찰하는 것은 늘 우리의 일상을 사색하고 성찰하는 수행입니다. 부처님의 8정도의 가르침은 실천할수록 보석과 같은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