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사』 楚辭의 시 중 굴원의 어부(漁父) 한편으로부터 시작하자.(고성우)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쓰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굴원이 유배 중에 쓴 시이다. 부패한 세상에 대해 비타협적 저항을 하다가 유배된 굴원은 어부와 대화를 나눈다. 굴원의 비타협적이며 고고한 처세에 대한 어부의 대답이 바로 위에 들어놓은 유명한 구절이다. 어부의 대답이기도 하지만 이는 조금 전 “강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깨끗한 몸을 더럽힐까 보냐”하며 자신의 고고함을 표현한 굴원 자신이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쓰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강의>의 저자 신영복은 이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으로 읽는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함께 배제하는 태도로 말이다. 김대중 전前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조정의 신하들이 왕의 등원 요청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은거할 때 위의 구절을 언급했다. 타락한 조정을 비판하며 현실개혁을 위해 비타협적 투쟁을 벌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지만 수많은 선비들은 위의 구절을 떠올리며 초야(草野)로 떠났다. 유가(儒家)적 전통에서 은거는 단순한 도피가 아닌 또 다른 방식의 현실 비판이었다. ‘창랑의 물이 흐릴 때 발을 씻는다’ 는 바로 세상이 더럽혀져 있을 때 발을 씻고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읽는다. 굴원의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내 주변의 정황과 이에 대한 내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위로 받는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은 이렇게 현재의 내 삶과 관련되어 있다.[출처] 강의 |작성자 고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