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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역사기행, 울릉도 독도 탐방 – 울릉도의 해를 품고 제자리로(4)
2021년 10월 10일(일)
울릉도를 떠나야 하는 날이다.
5시에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비는 안 오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후포로 가는 중 배멀미가 걱정이 되었고 또 하나는 어제도 날씨가 흐려 보지 못한 일출을 보기 어렵겠단 생각에 실망감이 들었다. 어제 석양에 강두희와 함께 행남해안 산책길을 걸으며 강두희가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모습만으로도 울릉도에 온 의미는 충분하다고 여기며 감사하고 있는 터였다. 또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의 예배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해도 혼자 기도하고 감사드리는 시간을 따로 가졌다.
5시 38분.
숙소에서 별 기대감이 없이 아침 산책에 나섰다. 도동항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연휴 이틀째여서 그런지 여행객들이 곳곳에서 나들이 준비에 나서고 있었다. 이곳저곳의 식당에서는 아침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띠었고, 식당을 나서서 일정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비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울릉도의 아침이 울렁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역시 발걸음이 도동항에 이르르자 밤샘 작업을 한 오징어배에서 부지런히 오징어를 뜰망에 담아 퍼 나르고 있었다. 싱싱하게 살아 펄떡거리는 오징어들이 뜰망 안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할머니들이 오징어 내장을 분리하는 작업을 익숙하고 잽싼 손놀림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침을 깨우는 삶들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일출을 보러 나온 여행객들, 울릉도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 밤을 새워 잡은 오징어를 하역하는 고단한 어부들, 새벽을 깨워 가며 오징어를 퍼 나르고 손질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 등등.
6시가 되자 도동항 독도 조형물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약간 흐린 날이어서 일출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행남해변 산책로 입구 쪽 계단에까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을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마음속에는 바라고 기도하는 것들이 있으리라. 모두 절박하고 절실하고 필요하고 간절한 바람들을 들고나와 햇님에게 빌어보려고 기대하며 기다리고들 있다. 날마다 뜨는 해이건만 오늘 해는 오늘 처음 뜨는 해요, 생애 처음 뜨는 해요, 생애 마지막 뜨는 해이다. 난 아직까지 일부러 마음먹고 일출을 기다려본 적이 없다. 어제는 일기가 나빠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오늘 처음으로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흐린 날씨로 인해 못 볼까봐 염려가 되긴 했으나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래, 인생이란 이렇게 희망을 안고 날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견디는 것이 아니런가. 벌써 주변엔 인파라 할 만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급한 마음에 강두희를 전화로 호출하였더니 이미 강두희도 동료들과 함께 광장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다.
6시 18분쯤 되니 아니 동쪽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뻗쳐오르질 않는가.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거의 숨을 멈추다시피 한 채 긴장하고 기다렸다. 넘실대는 바닷물 위로 해가 실눈만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휴대폰으로 조심스럽게 모습을 담기 시작하였다. 일출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마음 속에 현장을 새기고 내 손으로 휴대폰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참으로 엄청난 사실이다.
‘그래, 이렇게 엄청난 시작을 날마다 하는 거다. 대단히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거다. 절대적으로 소중한 새로움으로 태어나는 거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과 학교, 세상에 대하여 사람으로, 나로 새롭게 사는 거다’를 굳게 마음먹어 본다.
일출의 장관을 만끽한 후 돌아보니 강두희와 일행들도 같은 장면을 감동적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같이 볼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6시 40분이 되어 강두희와 해변길을 잠깐 산책하고 오징어 손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가까이에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서 떠날 준비를 하였다. 물도 아껴 쓰고 잘 잠그고, 전기 스위치도 잘 끄고. 떠난 자리도 아름다운 사람을 떠올리며 뒷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숙소를 나와 숙소주인과 작별 인사를 하는데 숙소주인이 하는 말 ‘오늘 바람을 보니 마파람이 불어 배의 요동이 심할 것이다. 차멀미 약이 아니라 배멀미 약을 먹어야 한다’며 미리 주의를 당부했다. 일행들은 모두 더 긴장된 마음으로 멀미에 미리 대비할 것을 마음속에 새기게 했다.
7시 40분이 되어 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울릉도에서 보낸 이틀 동안 아침마다 배와 사과를 깎아 일행들에게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준 경애하는 이OO 누님의 세심한 배려는 늘 일행들에게 감사와 감동을 느끼게 했다.
8시가 되어 식당에서 오징어내장탕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어제부터 그 맛이 궁금하였는데 의외로 평범한 맛이었다.
식사 후엔 10시 30분까지 자유시간을 주었으나 아침에 숙소 주인의 경계의 말씀도 있었고, 스스로들도 긴장이 되어 어디 갈 생각도 없이 그냥 대합실에서 쉬기로 했다.
사동항으로 이동할 버스승차 시간이 다가오자 너나없이 멀미를 대비하는 갖가지 대비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멀미약을 기본으로 먹고, 인삼을 씹어 먹고, 남은 올벼쌀도 마저 먹고, 챙겨둔 오징어 말린 조각도 먹고, 계피사탕도 빨고 등등
이윽고 도동항에서 버스를 타고 10시 45분 사동항에 도착하여 승선권을 받아들었다.
11시 30분.
오직 멀미에 대한 걱정을 안고 승선한 배가 후포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일행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하나같이 긴장한 채로였으리라.
12시가 되었다. 지난번엔 출발한 지 15분 만에 구토 증세나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30분이 지났는데 일행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승객들이 무사해 보인다. 옆자리에 앉은 강두희 씨는 이미 잠든 듯했다. 잠든 것을 보니 멀미 안 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안도하게 되었고, 그 옆자리의 후배 유OO 님도 자는 듯 조용하였다.
12시 12분 쯤 강두희의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멀미하는가 돌아보니 그냥하는 기침이었다. 강두희의 모든 움직임을 멀미와 연결시키는 예민함이 우스웠다. 그래도 일행들과 승객들 대부분이 멀미로부터 무사하니 다행 중 다행이다. 하선할 때까지 모두 무사가 유지되어야 할 텐데. 12시 40분이 지나고 오후 1시 20분이 지나도 일행 중엔 멀미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30분만 더 견디면 후포에 도착한다. 그때까지만 ‘무사하여라’고 응원해 본다.
후포에서 출발할 때는 들뜨고 설레서인지 토하고 야단법석이었는데 후포로 돌아올 때는 차분하고 고요하기까지 하다. 배 탄 지 2시간이 다 되어가지 화장실 왕래하는 사람들만 간간이 있을 뿐 별다른 소요가 없다. 끝까지 멀미에 보탬 되라고 그러는지 사탕껍질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
1시 50분이 되자 선장의 안내 방송이 이었다. ‘높은 파도로 인해 예정 시간보다 20분 늦은 2시 20분쯤 후포에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숙소를 떠날 때 주인의 ‘오늘 바람을 보니 마파람이 불어 배의 요동이 심할 것이다’는 말이 생각난다. 주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바람이 심한 것은 맞다. 그러나 멀미 심한 것은 아직까지는 아니다. 아니, 혹시 그 주인의 말에 더 멀미 대비를 철저히 해서인가. 아무튼 신통할 만큼 멀미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우리 일행 중엔 없었다. 대비를 그만큼 잘한 것일까(이른바 학습효과인가) 아니면 배 타는 일에 그만큼 신속하게 익숙해져서인가. 그래도 또 조심. 앞으로도 30분이나 더 배를 타야 한다.
20분 지연 안내 방송에도 전혀 동요 없이 승객들은 차분하였다. 망망대해에 햇살을 받은 검은 물결들만 살아서 쉴 틈 없이 요동질하며 움직일 뿐이다. 자잘한 물결이 물비늘이 되어 반짝반짝 빛내며 살아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각각의 인생들도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에서 나름대로 반짝반짝 빛내며 살아가리라. 그러다가 거대한 배를 만나 부서지고 깨어지기도 하다가 이내 지나가 버린 뱃자국을 흔적도 없이 지우고 또 그저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리라. 여여(如如)한 인생살이로다.
2시 5분이 되자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이제 하선을 준비하는 것이다. 멀미 없이 후포항에 다 오가는 것이다. 강두희 잘 견뎠소. 그리고 우리 일행들과 승객 모두 잘 견뎠소. 나도.
드디어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안도의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제 광주다’하는 마음에 귀가와 귀향에 미리 마음이 설렌다.
2시 20분에 하선하여 늦은 점심을 회정식으로 마음 편하게 먹었다.
3시에 광주행 버스에 승차하여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그 이름만으로도 포근하고 따뜻한 광주를 향하여 군위, 거창휴게소를 거쳐 광주로 향하였다. 거창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소나기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을 뚫고 담양에 도착하자 비가 멈추었다.
옥과한우촌 식당에서 준비된 한우비빔밥을 먹고 난 후 8시 50분에 출발하여 처음 출발하였던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 10분이었다.
모두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울릉도 독도의 기억들을 안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향하였다. 울렁울렁거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던 울릉도, 시간과 공간 너머너머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그리움과 애틋함을 불러일으키는 독도를 머리와 눈과 귀와 가슴에 안고 품고 새기며 일상 속으로 돌아온다. 특별히 울릉도의 일출 장면을 품에 안고 빛고을 광주로 돌아와 빛나는 나날을 꾸릴 것을 소망하면서. 여행은 이렇게 제자리에 돌아오게 함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첫댓글 울릉도의 일출 장면.보기만해도 감격스럽습니다. 간절한 기다림이 눈앞에 펼쳐지니 더 멋집니다. 다시 보려구요. 사모님 멀미하실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아무 일 없어 감사하지요. 기침소리에 긴장하신 교수님 모습도 상상됩니다. 너무 멀미로 고생하셨기에 지레 겁먹으셨네요.^ 멋진 여행, 사랑 가득한 추억. 울릉도.
교수님과 사모님~만세 입니다.^^
소중한 추억 쌓으시고 뜻 깊은 여행 다녀오심에 축하드립니다.~🎊 사진 속 두 분 모습이 건강하니 참 보기 좋습니다.~ 장편 시리즈로 생생하게 펼쳐 주신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편안 밤 보내세요.^^⚘
아직 가보지 못한 을릉도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세세한 기록에 마치 다녀온듯합니다.
어렵다는 독도입항까지 하시다니 정말 3대가 덕을 쌓으셨나봅니다.
두희님이 멀미할땐 같이 멀미하는듯 했답니다.
노란바지입은 두희님 모습, Y면티입은 교수님 패션, 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