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었고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었고 추운나라를 동경했다.
어느 겨울에 혹시 설경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영월행 기차를 탔다.
눈 구경은 못 했고 차창 너머 멀리 어두운 숲 가운데 드문드문 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어느 시인의 묘사처럼 버짐핀 것 같기도 하다.
막연히 자작나무 군락지로 여기며 자작나무에 대한 꿈을 키웠다.
몇 년 전 모임에서 유명한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왔다.
가슴 콩닥거리며 기대에 차서 갔는데 무슨 일인지 생각만큼 큰 감동이 없었다.
간사한 마음이 몇 그루 감질나게 서 있는 자작나무를 만나면 그 부족한 수에 목마름이 심하더니
빽빽하게 서서 하늘을 가리운 원대리의 숲에서 여백의 미, 넉넉한 아름다움을 찾고 있었던가,
추운 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어디서든 몇 그루씩 성글게 서 있는 자작나무를 만난다.
어느 화가의 자택 마당 본채와 작업실을 잇는 자리에 서 있고
우리 동네 독립서점 마당에서도 만난다.
만날 수 없던 누군가를 만난 듯 애틋하고 반갑다.
온 산을 가득 채운 자작나무숲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묘한 끌림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사당동 시립남부미술관을 나와 전철역을 향하는 거리에 자리한 조그만 쉼터.
가로수처럼 서 있는 자작나무를 만나니 얼른 다리를 쉬고 싶어진다.
여전히 몇 그루의 자작나무는 설렘이다. 적당히 떨어져 성글게 서 있는 하얀 수피의 나무들이
비로소 내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맛보지 못했던 것은 호젓함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