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을 맞은 시아버지가 세 며느리를 불러 쌀 한 줌씩을 주며 말했다. "칠순잔치는 이것으로 준비해라."
첫째 며느리는 나오던 길로 마당의 닭에게 주었고, 둘째는 자기 집 쌀독에 넣었다. 셋째는 그것을 손에 들고 곰곰이 그 뜻을 생각했다. 칠순이 되자 시아버지는 세 며느리를 불러 그 쌀 한 줌에 관해 물었다. 첫째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서 닭에게 주었다고 했고, 둘째는 자기 집에는 이미 더 많은 쌀이 있었으므로 크게 생각하지 않고 쌀독에 넣었다고 했다. 셋째는 장부 하나를 내밀었다. "소 5마리, 돼지 10마리, 염소 20마리, 닭 100마리..."
그 사정은 이랬다.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며 한 줌 쌀을 뒷집의 병아리 한 마리와 바꿨는데 1년이 지나자 닭이 되어 많은 알을 낳았고, 그것들이 병아리가 되어 자라나 3년이 되니 100마리의 닭이 되었고, 닭을 팔아 염소와 돼지를 사고 송아지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면서 생겨난 일이라는 것이다.
세 며느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같은 것을 받았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그 태도가 달랐다. 첫째는 농담으로 여겼고 둘째는 일반화시켜 쌀독에 넣었지만 셋째는 그 한 줌 쌀에 담긴 시아버지의 뜻을 알고자 곰곰이 생각한 것의 차이였다. 그래서 셋째가 칭찬받았고,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얘기일까? 아니다. 세 사람의 10년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이야기다.
두 며느리는 쌀을 받기 전과 후가 다를 것이 없었을 테지만, 셋째는 그 쌀 한 줌에 담긴 아버지의 뜻을 알고자 했고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 결과 조금씩 나타난 길을 따라갔다. 쌀 한 줌으로 그만큼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가 사물을 보는 눈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작은 성취가 더 큰 성취로 이어지는 것을 직접 경험한 그녀 안에서 자신감과 지혜는 얼마나 견고하게 자라났을까?
변화의 시작은 쌀 한 줌을 선물을 주신 아버지로부터였다. 너무도 흔한 것을 선물로 받았고,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지시를 받았지만 무언가 담긴 듯이 있으리라 생각한 때로부터 그녀의 삶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보이지 가운데 시작된 것이다. 늘어가는 닭과 염소와 돼지와 소를 보며 매일매일 나타나는 변화로 인해 기쁘고 감사했을 것이다. “쌀 한 줌으로도 칠순 잔치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거나 일반화시킨 나머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며느리들의 삶은 그 전이나 후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셋째의 얼굴은 밝아지고, 목소리는 뚜렷해지며, 움직임은 활기차졌을 것이다. 아름다운 변화로 가득해졌을 것이다. 그 변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그녀는 시아버지께 얼마나 깊이 감사하게 됐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다 이렇지 않을까? 주신 뜻을 알고자 할 때, 조금씩 인도를 따라가며 행할 때 그로 인해 나타나는 작으나 분명한 변화들이 이렇지 않을까?
조현병에 걸린 트리니다드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소리치거나 때리고, 물건을 던지곤 했다. 통제가 안 되는 상태였다. 입원시켜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가난한 그 가족은 병원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녀들은 외국에 있거나 분가해서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으므로 손자들이 할머니를 돌보아야 했다.
대학교 1학년인 다이렐이 중심이 되어 손자들은 할머니의 약을 챙겨드리고, 일주일에 두 차례 예배를 드리며, 아침저녁으로 산책시켜드리고, 함께 놀이도 했다. 모임을 가진 후에 올린 사진을 보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점이 없던 눈이 한결 뚜렷해지고, 양미간을 찌푸려 노려보아 무섭기까지 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요즘은 손녀에게 돈을 주기도 하고, 음식을 요리하기도 하며, 함께하는 웃으며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고 했다. 이 아름다운 변화를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건강학을 공부하고 있는 다이렐은 이때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해 생각을 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고 있다. 다닐로도 자신의 꿈인 육군 사관 학교 시험을 준비하고, 언니들이나 조카들도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형제간이나 가족 안에 큰 소리와 싸움이 그치지 않던 가정 안에 더 깊은 사랑과 배려가 자리 잡았다. 할머니의 병이 돈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에 감사와 기쁨이 가득해졌다. 어린 친구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무거운 일이었을 것이나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할머니를 돌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병을 통해 이 가족을 돌보고 계시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아름답다. 농담도 아니고 이미 알고 있다고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 이해가 안 될지라도 깨닫고자 붙들면 조금씩 알도록 도우시고, 더 많이 알고 경험하도록 인도해주신다. 쌀 한 줌과 같은 아버지의 선물이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친구들에게는 독후감이나 묵상, 감사한 일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실히 이 일을 하는 친구들의 삶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 매일 인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때문이다. 영어, 자기 계발, 역할 들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겨나는 것을 보는 까닭이다.
그렇게 우리 친구들은 지금 주신 작은 것의 가치를 보는 삶을 살 것이다. 매일매일 그분의 뜻이 자기 삶에 이뤄지는 것을 이렇게 경험할 것이다. 어쩌면 매일, 또는 언젠가 있을 그분의 잔치를 감사함으로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