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직업병
方 旻
살아가려면 직업이 있어야 하고,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각자 직업에 종사하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데, 그들은 문을 나서면서 하나씩 반갑지 않은 선물을 떠안기 마련이다. 그 직업에 다년간 종사하면서 자연스레 관성화慣性化 된 것, 대체 본인은 잘 모르지만 타인은 금세 알아차리는 병, 이른 바 직업병을 훈장처럼 달고 나온다.
아내도 직업병 환자다. 20여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얼마 전 퇴직했다. 자연스레 교사 직업병을 안고 돌아왔다. 결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의 성격인지 모를 여러 이상한 증상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다소 미약하던 여러 증상은 해를 거듭해 누적되었고, 퇴직한 뒤 이제는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확실해 보인다.
두드러진 증상 몇을 잠시 소개하자면 하나는 문제 지적과 훈계다. 아이들 잘못을 지적해서 꾸짖고 훈계하던 교사의 직업상 업무를 남편한테도 그대로 대입한다. 대부분이 사소한 것이라서 쓸데없는 잔소리로만 들리는데도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수차 밝혀도 좀체 달라지지 않는다.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분명한 교사 직업병의 증상이 아닐 수 없다.
둘은 자기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다. 학생에게 반듯하고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 선생은 절대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 최소한 아이들이 보고 있을 때는 언제라도 그렇지 않아야 하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 신적인 경지의 절대선絶對善으로 치장하여 교사 일을 하였으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잘못은 잘 지적하면서 그와 똑같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거나 속으로는 인정할지 몰라도 결코 말로 드러내 시인하거나 사과할 줄 모른다. 역시 중증의 교사 직업병 증후군이 맞는다.
셋은 타인의 말을 잘 들으려하지 않는다. 학생 앞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군림하면서 무엇이든 전지전능한 역할로 수십 년을 지낸 터라, 자기 이상의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사를 가르쳐 배출한 교수 말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은 최고인데 다른 전문가가 있을 수 없다는 태도가 굳건하다. 그러니 발전할 기회를 놓치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 없이 정체 상태인데, 그게 참 문제인 줄 모른다. 그걸 문제 삼으면 오히려 짜증내고 공격적으로 덤벼들기 일쑤다.
여러 직업 중에는 국민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직업이 있다. 다 알다시피 우리는 그 직업을 대통령이라 부른다. 수십 년을 할 수 있는 다른 대다수 직업과 달리 제도상 단 5년만 할 수 있다. 그 시간으로만 보자면 결코 직업병에 걸릴 것 같지는 않다. 과거 몇 대통령은 십년 이상 그 직업을 가졌기에 병에 걸려서 자진 사퇴도 했고, 부하의 총에 맞기도 했다. 그 병을 완화시키려고 7년만 하도록 했다가도 절간에 쫓겨 가기도 해서 5년으로 줄였는데 여전히 그 병은 없애지 못했다.
이 직업병의 특징은 다른 직종은 오랜 시간이 걸려야하는데, 이 병은 그 일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발병한다는 점이다. 전임자가 이 직업병 중증 환자로 청와대를 떠나는 걸 뻔히 국민과 함께 확실하게 보았는데도,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놀랍게도 번갯불의 속도로 병에 감염된다는 사실이다. 그 신속성과 치유 불가능의 중증은 여러 부작용이 넘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인데도 그걸 고치려하거나 조심하지 않는다. 자신만은 대통령 직업병 환자가 안 될 것이라는 독선과 아집과 모르쇠와 거짓과 불통의 병원균이 온몸을 휘감는 줄 깨닫지 못하는 채 이게 널린 속으로 들어가는 환자복을 자청해 입는다.
대통령 직업병의 여러 증상은 따로 말 안 해도 널리 알려져 있으니 군말할 게 없겠다. 다만 그 병을 앓다보니 대통령 직업에서 은퇴하고도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며 여생을 보내는 걸 보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 그들이 구설에 오르내렸거나, 폐쇄 공간에 갇혔거나, 꽃처럼 훌쩍 바위에서 뛰어내렸거나, 자식들이 불편한 삶을 살아가거나, 곁에서 그 직업을 도왔던 사람들의 불행한 말로가 전해질 때면, 이 직업병의 폐해가 심각한 걸 실감할 따름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 유행어가 왜 힐링healing인지 생각해보면 도처에 널린 직업병 환자를 위한 말이 아닐까. 직업병이 만연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아주 짧은 기간제 직업인 대통령에까지 그 병이 요 근래 더 심하게 퍼진 것을 보면 위세를 실감할 수 있겠다. 이렇다 해서 어떤 직업의 경우도 그 병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어떤 치유책을 나는 찾아줄 수 없다. 다만 직업병이 만연한 이 시대를 건너가는 치유의 비책을 각자 가슴에 품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아내의 직업병에 힘들게 견디며 치유책을 어떻게든 찾아내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내 처지가 가련하기만 하다. 직업병 환자 가족인 나처럼 병자가 통치하는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환자의 국민이 정녕 애처롭기만 하다. 직업병 환자 아내일지라도 나야 그녈 버릴 수 없지만, 5년 뒤엔 병증의 정도가 조금이라도 덜한 대통령을 만날 희망이라도 품고 견디며 우리 국민은 살아갈 수 있으니, 그래도 나보다 좀 낫지 않은가 싶다.(네이버블로그, <방교수의 수필 작법>에서)
첫댓글 사회에서 다 알려진 증세입니다.
교사들은 늘 상대를 가르치려 한다? ㅎㅎㅎ
직업도 아니며 저의 경우 직업병이 있다면 글을 읽다 비문, 오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이 있더군요^^
길가에 핀 꽃을 이러니저러니 잔소리하는 것이 혹 수필가의 직업병이라고 한다면 그런 직업병은 열번 백번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수필가도 떳떳한 직업이니까.
선생님들이 퇴직 후 직업 후유증이 가장 많고 사업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기 때문이라지요.
방민 선생님, 그냥 학생이 되어주시는 게 속 편할 듯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