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퇴임식
이복희
“촌스러웠지?”
감동적인 퇴임식이라고 하자 친구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촌스러웠던가? 그래서 그렇게 정답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말은 진심이었다.
친구 남편은 봉일천중학교 교장이었다. 정년이 되어 퇴임식을 한다고 했다. 초대를 받아 다른 친구와 같이 식장을 찾았다. 학교로 들어가는 진입로 군데군데 하늘색 티를 입은 앳된 중학생들이 횡단보도 양쪽에 서 있다가 차량이 지나가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학교 정문에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교장선생님의 퇴임을 축하한다는 글귀 양쪽 끝에 송공(頌功)이라는 한문이 한 자 씩 나뉘어 적혀 있었다. 교문 양편에도 하늘 색 티에 멋진 카우보이모자를 쓴 중학생들이 서 있다가 차가 들어가자 모자챙에 손가락을 살짝 올려 부치며 경례를 했다. 귀엽고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검푸른 수풀이 학교 건물을 감싸 안은 봉일천 중학교에는 그날의 행사를 위한 세세한 준비와 손님맞이의 정성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이어지는 지역의 여러 기관장 축사는 예상외로 간결하고 진정성이 있어 놀라웠다. 천편일률적인 축사가 아니었다. 교육자로서의 덕행을 짤막하나마 구체적으로소개하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가슴 뭉클할 만큼 진솔했다. 학생대표의 송사와 친구 남편의 답사도 마찬가지였다.
축하공연은 섭섭함을 넘어 그간의 수고에 감사하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 이 진하게 다가오는 축제의 한 마당이었다. 음악교사인 소프라노가 주인공이 즐기셨다는 가곡 '님이 오시는지'를 불렀고 다른 여교사는 판소리를 좋아하셨던 교장선생을 위해 북을 치며 구성진 판소리를 선사했다. 학생들로 이루어진 관현악4중주의 연주, 그리고 역시 교장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보컬그룹의 연주도 감동적이었다.
작은 체구에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모습의 친구 남편은 좋은 교장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한복을 곱게 입은 친구의 이름 석 자도 주인공의 업적을 따라 내조의 공으로 치하를 받았다. 아이들을 공부로만 몰아 부치지 않고 창의적인 동아리 활동이며 전인교육에 힘썼다는 소개가 없었더라도 그분의 교육방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뷔페식 식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오락가락하던 비는 멈추었지만 마침 같이 왔던 친구의 차가 방전이 되어 시동이 꺼져있었다. 구원병이 올 때까지 우리는 다시 식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본 교사에서 일단의 교직원들이 죽 몰려나오더니 운동장에 두 줄로 도열하는 모습이 먼발치로 보였다. 맨 나중에 오늘의 주인공이 나오며 일일이 악수를 하고는 차에 올라타 떠났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이 쉽사리 흩어지지 못하고 삼삼오오 몰려서서 그가 떠난 교문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비 그친 운동장에서는 눅눅한 흙냄새가 후끈 올라왔다. 늦은 여름,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일말의 쓸쓸함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앞서 떠난 친구내외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우리도 그곳을 떠났다.
우리의 삶은 어느 자리에서든 언젠가 내려와야 한다. 그러고 보면 퇴임이란 축하받을 일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쓸쓸한 일이지 싶다. 아무리 박수 칠 때 떠난다 해도.
첫댓글 쓸쓸한 여운이 감도는 아름다움입니다.
쓸쓸함 = 아름다움^^
헤어지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마음 헛헛하지요.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몫을 챙긴 거라 생각되네요.
제가 어제 그랬습니다. 그동안 몸담았던 일터 19년~
오늘도 일어나 출근하려다 말고 빙긋 웃었어요, 내 참.
새로운 일에 다시 설렘으로 차분히 준비하고 있어요.
직장 옮기셨나봐요.
일을 아주 떠나시지 않으니 좋은 일이지요.
저는 전에, 새로 갈 곳을 정해 놓고 잠시 쉬는 상태를 무척 좋아했지요. ㅎㅎ
혹시 그런 시간이 아니신지요?
@이복희 역시, 이선생님 생각에 따라
맡기고 준비하는 오늘. 한가하면서
바쁘네요. 모처럼 자유함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