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 찬란한 지혜에 대한 칭찬과 불경건으로 인한 비참한 결말을 생각하며
은성아, 요즘은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는 말씀을 기억하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 살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흠이 없는 영웅들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좋은 점도 있지만 부족하고 죄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잘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도 많이 나온다. 오늘은 솔로몬 왕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먼저 솔로몬 왕의 시대를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첫 임금인 사울이 시작할 때와 달리 점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명령하신 바를 순종하지 않을 때에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다(삼상 13:13-14; 15:22-23; 26; 16:1; 11-13). 이 다윗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 의해 택함을 받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기틀을 확립한다.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기존 지파간의 경계를 무시하고 유다를 제외한 전국을 열두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각 구역마다 일 년에 한 달씩 성전과 중앙 정부를 돕는 책임을 주었다(왕상 4:7-28). 포로로 잡혀 온 외국인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인 그는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징발하였다(왕상 5:13-18). 7년에 걸쳐 성전을 완공하고(왕상 6:38), 13년에 걸쳐 왕궁을 건축하였다(왕상 7:1).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므깃도, 하솔과 게셀 등을 요새화했다(왕상 9:15). 열왕기상 1-11장을 읽어보면 솔로몬 왕국의 화려하고 위대함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가지고 '문학의 꽃'을 피운 그는 잠언과 전도서를 남겼고, 그의 지혜를 듣고자 먼 나라에서 찾아왔던 스바 여왕은 감탄을 토해내었다. 그는 일찍이 출애굽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준 사명(출 19:3-6)을 현실화하는 책임자로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가까이는 사울이 잘못된 길로 가 버린 왕의 길을 바로잡은 부왕 다윗의 길을 확고하게 다져야 하는 사명자로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 그의 지혜는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의 응답으로 받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그의 일생을 보면 과연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고 가르쳤는데, 그의 생애를 보면 점점 부와 권력에 익숙해지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에서 떠나 교만해졌으며, 백성들의 평안은 무시하고 자신만 챙겼으며, 그 결과 백성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는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고”(왕상 11:1), 그 결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다”(왕상 11:4). 그는 아스다롯과 밀곰을 따르고, 그모스와 몰록을 위한 산당을 세웠다(왕상 11:7). 더욱 슬픈 것은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 11:9-11)에서 보듯이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혜의 왕이었지만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영광은 들의 백합화만도 못한 허무로 끝을 맺고, 그의 아들에 이르러 나라는 둘로 분열이 된다.
3. 왜 나라가 분열되고 말았을까? 솔로몬의 영광 속에는 이미 파멸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사람들이 칭송하는 그의 업적 뒤에는 백성들의 피와 땀을 강요하는 지나친 노동력의 동원과 억압정치가 백성들의 불만과 분열을 불러왔다. 성전과 왕궁을 건설하는 데 20년이나 걸렸으니 그동안에 백성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리고 무거운 세금징수가 있었고, 많은 이방인 비빈들과 그들을 통해서 들어온 잡다한 우상 숭배 등으로 백성들의 마음에는 반감과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1-4)”. 이후 선한 왕들에 대해 기록할 때에 ‘다윗의 길’(왕하 22:2)이라고 하고, 악한 왕들에 대해서는 ‘여로보암의 길’(왕상 16:26)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솔로몬이 처음과 달리 나중에는 ‘다윗의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로보암의 길’로 가는 왕들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은성아, 솔로몬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중세에 종교개혁이 시작할 때나 우리나라에서 개혁교회를 시작한다고 나서는 때에 이전의 잘못된 교회의 현실을 바르게 하려는 자세 즉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세’를 가지고 충성된 사역을 함으로 상당한 기틀을 마련한다. 그런데 그들을 이은 지도자들은 한편으로는 전임자의 이름에 힘입고, 한편으로는 자신들도 잘 준비가 되어서 더욱 빛나는 일들을 이루기가 쉽다. 그들 중에는 이룬 업적에 따라서 명예와 부와 권력을 누리는 사람도 생긴다. 물론 그 일을 이루기까지는 교인들의 수고와 헌신이 강요(?)되기도 하고, 인간적인 수단이 동원되지만, 겉으로는 철저히 경건을 내세우는 일이 많다. 바른 시작을 한 것은 어느 틈에 다 잊혀지고, 자기들이 고치고자 외쳤던 이전의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유혹하였던 사탄의 시험은 여호와께서 세우지 않은 자기의 성을 쌓도록 유혹하니 바벨탑을 쌓게 하고, 대제국을 건설하게 하고, 성전 꼭대기에 오르게 한다.
쉽게 이야기해보자. 상당히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솔로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이 받은 사명은 ‘다윗의 길’로 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워가야 할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상한 욕심이 생기고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떠나고 자기의 지혜와 능력을 과시하고자 한다. 사울이 잘못한 것을 꾸짖으시면서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솔로몬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 정도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교인들이 희생하고 눈물 흘린 드림이 있었건만 그런 아픔을 무시하고 ‘신앙’이라는 아름다운 명분으로 점점 더 많은 요구를 하면서 자기의 소유와 권한을 늘리고 키워간다. 그런데 내면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부에서는 이런 지도자들을 성공한 목회자라고 떠받들고 배우러 오며 예물을 바친다. 솔로몬과 혼인한 여러 여인들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동맹을 맺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강제(?)로 바쳐진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시의 강자가 된 솔로몬과 적이 되기보다는 한편이 되어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어떻게 해서라도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분을 찾아가 연합을 하고자 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유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두시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잘잘못을 보게 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신다. 다윗은 회개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철저한 회개를 했는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회개를 촉구하는 명령을 무시하고 말았다. 우리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평생 다윗의 길을 걷고, 끝까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교회사에서 일어난 이단의 지도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대부분 처음에는 신실한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교우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훌륭한 성전을 지어놓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에서 떠나면 외국 군대가 와서 철저히 파괴시킨 것을 기억하면서 늘 성전을 짓네, 왕궁을 짓네, 요새를 만드네 하면서 백성들을 어렵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힘쓰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힘써야 마땅하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먼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분명하다. 무리한 건축을 하다가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감당하기 벅찬 일들을 계획하고 추진하다가 말씀과 기도의 사역은 뒤로 내동댕이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솔로몬의 씁쓸한 최후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