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쉼 없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으나 우리가 그 소리를 다 듣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그제야 들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있고, 써보면 그 수효가 적지 않은 것에 놀라게 된다. 귀로 듣는 소리도 있지만, 마음으로 듣는 소리도 있다. 영으로 듣는 소리도 있다.
주님께서도 소리를 내신다.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시 68:33) 부르시는 소리도 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냐?"(잠 8:1) '부른다'는 히브리어 '카라'는 영어로는 'call out'로 번역되었다. 누군가를 호명하듯 부르신다는 말씀이다.
수많은 사람과 소음 가운데 있어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놓치기 어렵다. 다른 소리는 윙윙거려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신기하게도 또렷하다. 주님은 불특정다수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처럼 소리를 내신다. 못 들었다고 할 수 없게 각자의 귀에 넣어주듯 말씀해 주신다.
"맞다. 그것이 지혜다. 순종이다. 잘하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지금 어디에 있느냐? 지금 무엇하고 있느냐?" 묻기도 하시며,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내 뜻이 아니고 내 길이 아니다. 내 능력을 따름이 아니다. 육체의 일이다."라고 불편한 마음을 통해 말씀해 주시기도 한다.
이번 학기 등록에 실패한 알렌이 지난 토요일에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저는 UP(University of the People)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으며,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공부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았고, 이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 카페에서 온종일 게임에 빠져지냈던 예전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까지, 새롭게 된 내가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할 때까지 부정적인 생각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 내가 그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게 하셨고, 내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금 나는 이것이 내 여행의 시작이라고 믿고 이 일을 경험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주파수를 주님께 맞추고 있을 때, 그 음성은 더욱 또렷하다. 다양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스스로 귀를 막는 일은 있어도 진정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경우란 없다. "어리석음을 버리라. 지혜를 선택하라!" 말씀하시는 음성에 마음으로 순종할 때, 주님은 더욱 듣는 귀를 열어주신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사건이나 사고를 통해서, 성경과 읽고 있는 책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외로움이나 괴로움을 통해 말씀하셔서 얻을 것은 얻게 하시고, 배울 것은 배우게 하신다. 우리에게 듣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 또한 하나님께 듣기를 원하신다.
지금 귀에 들리는 소리는 무엇인가? 마치 자명종처럼 잠든 우리의 의식을 깨워 주님께 귀 기울이게 하시는 소리가 아닌가? 믿는 이에게 우연한 일이 없다면 우연한 소리도 없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기도할 것이다. 호명하듯 말씀해 오시는 주님께 듣고자 할 것이다. "주님, 이 일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해 오고 계십니까?"
첫댓글 날마다 내 생각과 마음이 주님께로 고정되어 있어 주님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을수 있는 영적 민감함으로 깨어 있는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여기 계시기에 참으로 감사이고 다행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