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멋!·져!(새해를 시작하며 드리는 말씀)
날마다 맞이하는 날들이 새날임을 알면서도 1월 1일은 특별한 새날 같고
해마다 맞이하는 해들이 새해임을 알면서도 연초엔 특별한 새해같이 여겨집니다.
새해, 임인년 (壬寅年)을 맞았습니다.
구상 시인의 <새해>라는 작품의 시작과 끝을 옮겨 봅니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중략)
이제 새로운 내가/서슴없이 맞는 새해/나의 생애 최고의 성실로서/꽃피울 새해여!’
2년이 넘도록 코로나 감염병의 위세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지만 자연의 시간은 어김이 없어 새로운 날, 새로운 해를 맞습니다. 구상 시인의 말처럼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새로워질 때라야만 새해를 ‘서슴없이’ 맞을 수 있고, 새해를 꽃 피울려면 ‘생애 최고의 성실’을 바쳐야만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희망과 소망을 품고 시작하지만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생애 최고의 성실’을 바치지 않으면 새해도 아니요. 새해를 꽃 피울 수도 없다는 사실은 이 시가 아니라도 자명한 일입니다.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는 우리 푸른꿈창작학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인 교직원, 학생, 학부모 각자가 ‘스스로 먼저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와 서로가 ‘생애 최고의 성실’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올해를 꽃 피는 해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식과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과 실천의 문제입니다. 올해를 꽃 피는 해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실천과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새해 구호는 당·신·멋·져입니다. 오래전부터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사용되던 말이기도 하고, 저 자신도 여러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건배사로 사용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먼저 ‘당당하게 삽시다’입니다.
미인대회에 참가한 미인들이 맨 먼저 하는 연습은 걷기(walking)라고 합니다. 걸음을 바르게 걷는 연습이야말로 미인이 갖춰야 할 첫걸음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바르게 걷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남 보기에도 자신 있게 당당하게 걷는 일이야말로 가장 쉬운 일 같으나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언설(言說)로 남을 현혹시킬 수 있지만 걸음걸이는 절대 속일 수 없다고 합니다. 어깨를 활짝 펴고 활기찬 모습으로 힘차게 걷는 모습은 당당함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기운 없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힘없이 걷는 모습은 어쩐지 초라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정직하고 성실하며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게 사노라면 누가 봐도 걸음걸이가 당당해질 것이며 위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는 당당하게 삽시다.
다음으로 ‘신나게 삽시다’입니다. 국어사전에 [신]은 ‘좋은 일이 있거나 또는 어떤 일에 흥미가 생기어 매우 좋아진 기분’, [신나다]는 ‘흥이 일어나 기분이 몹시 좋아지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빛나는 불행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학생들과 현대인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푸른꿈창작학교는 ‘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서로서로를 겯고 품고 안고 보듬으면서 의지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힘이 나고 흥이 샘솟는 행복감 즉 신명이 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이란 ‘흥겨운 신과 멋’이라는 뜻입니다. 올 한 해 동안 함께 도모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신이 나게 되도록 함께 노력하고 몸과 마음을 모으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다 보면 바로 멋진 모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올 한 해는 신나게 삽시다.
그리고 ‘멋지게 삽시다’ 입니다. [멋지다]는 ‘잘 만들어지거나 가꾸어져서 아주 멋있다’는 뜻으로 어원적(語源的)으로 볼 때 '맛'에서 연유하였으리라고 보는 것이 여러 연구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맛’이 미각적 언어라면, ‘멋’은 ‘맛’ 뿐만 아니라 삶과 생활의 내면과 품성에 관련된 감성적 언어로 이해할 수 있지요. 올 한 해 동안 내내 지속가능한 지구촌, AI시대, 코로나 상황, 교육 현장, 대안 교육, 푸른꿈창작학교에 걸맞는 ‘멋’을 만들고 가꾸어가야겠습니다. 우리학교가 푸른꿈창작학교이지 않습니까. ‘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고 가꾸는 일이 푸른꿈이 꿈꾸는 ‘멋’진 학교의 모습 아닌가요? 올 한 해는 멋지게 삽시다.
마지막으로 ‘져주며 삽시다’입니다. [지다]는 단어의 여러 뜻 중 ‘상대를 이기지 못하고 꺾이다(패하다)’ 또 ‘양보하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현대사회 특히 현재의 학교교육 현장은 경쟁과 효율의 자본 논리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성적과 대학입시가 처절한 생존경쟁이 되어 삶 자체를 황폐화시키고 생존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기다]는 단어의 뜻처럼 ‘싸움, 시합, 경기에서 우열이나 승부를 겨루어 앞서거나 꺾다’의 현장입니다. 오로지 ‘나는 이겨야 한다‘고 여기며 살다 보니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을 살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채근담에서 "좁은 지름길에서는 한 걸음 멈추어 남을 가게 하고, 맛 좋은 음식이 있을 때에는 삼분을 감해서 남에게 양보하며 맛보게 하라.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라 하였다. 또 소학(小學)에서는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는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져주는‘ 일이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서로의 가슴과 기억 속에 기쁨과 유익을 깊이 새기게 합니다.
빙점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돼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바쁘게 일하는 아내를 안쓰럽게 여겨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염려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깨달음이 있어 그때부터는 가게에 어떤 물건들은 비치하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없는 물건을 찾으면 다른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틈틈이 펜을 들어 글을 쓴 것이 빙점이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져주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는 것도 주는 것입니다. 온 한 해 동안 푸른꿈공동체는 져주는 가운데 사랑과 평화의 샘에서 생명이 푸르게 자라나는 학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한 해는 져주면서 삽시다.
2022년 임인년 (壬寅年) 새해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학교는 위탁 기간이 만료되는 해이기에 평가를 통해 내년 이후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선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학교인 ’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고 우리들 각자와 푸른꿈의 미래도 생명력으로 윤슬처럼 반짝일 것입니다.
푸른꿈창작학교 학생, 교직원, 학부모 여러분!
당!·신!·멋!·져!
2022.1.5.
하하 이계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