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자신을 "너는 봄날의 햇살이야"라고 불러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는 날 동안 내내 행복하게 할 이름 같다. 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대사다.
별명을 지어달라는 친구 최수연에게 우영우가 붙여준 별명이다. 로스쿨 다닐 때 수연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영우를 위해 강의실 위치, 휴강일, 바뀐 시간표 등을 알려주고 동기들의 괴롭힘을 막아주었다. 물병을 잘 못 따는 영우를 위해 물병을 대신 따주고, 김밥 좋아하는 영우에게 구내식당 메뉴가 김밥이면 미리 연락해 주었다. 그런 수연에게서 영우는 "봄날의 햇살"같은 따뜻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영우의 설명을 들은 수연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인다.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친구, 남모르게 가꾸어 오고 있는 내면을 보아주고 지지해 주는 친구를 가진 수연은 행복한 사람이다. 영우가 붙여준 별명을 받은 수연이 겨울 찬 바람처럼 쌀쌀하게 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평생 그 별명 그대로 살겠구나, 싶다. 그녀가 잘 몰랐던 모습이었을지라도, 그렇게 살 마음을 굳혔을 것 같다. 영우의 말은 친구에게 아름다운 삶의 방향을 보여주고, 그 길을 걸아갈 갈 힘이 된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되는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기도에 앞서 너희들이 누군지부터 알았으면 좋겠다. 잘 들어. 너희는 그분의 자녀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이 아버지가 되고, 인간이 신의 자녀가 되는 순간이다. 제자들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먼 데 계신 신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아버지로 부르며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가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하신 일이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삼위이신 아버지와 아들,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신 결과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놀라운 지식이다. 우리를 위하시는 강한 아버지를 가졌다면 세상 누구를 부러워하겠는가? 이 지식이 있다면 세상 무엇이 두려우며, 어느 누굴 두려워하겠는가? 문제는 실제로 경험되지 않은 지식일 경우다.
29년 전, 처음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입국심사장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낯설었지만 심사받는다는 것은 당락을 결정짓는 일처럼 느껴져 마닐라의 후덥지근한 날씨처럼 유쾌하지 않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내민 여권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 분명 대한민국 여권을 손에 들었지만 처음 사용해 보는 나로서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만약에 입국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국만리에서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이민국 직원이 매의 눈으로 여권을 살필 때 긴장은 최고조가 되었다. 하지만 여권 사진과 나를 번갈아 보며 무엇 하러 오는가만 물었다. '여권'(旅券)은 말 그대로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증명이지만 그 힘은 처음 경험한 시간이었다. 여권의 힘을 믿었지만 실제로 안 것은 그 경험을 통해서였다. 지난 세월 동안 같은 경험을 무수히 반복한 까닭에 지금은 당연한 일로 여긴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 것과 아들인 나를 어떻게 위하시는 지를 그 세월보다 더 길게 경험했다. 그 결과로 더 많이 믿고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엡 4:13) 믿는 일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 은혜를 입었다.
"천하에 쓸모없는 놈, 밥값은 어찌하며 살까? 이다음에 뭐가 될라고.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이런 모진 말과 갖은 욕설을 들은 자녀들이 바르게 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도, 힘도, 의지도 다 지워버리는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다. 자녀들이 자신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평가를 그대로 믿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자녀들을 살리고자 한다면 아버지들은 지금이라도 자녀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봄날의 햇살'이라는 이름처럼, 자녀들을 가슴 설레게 하는 새 이름으로 불러주신다. "너는 축복의 통로다. 너는 물댄 동산이다. 너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는 세상의 빛이다. 너는 왕 같은 제사장, 택한 백성, 나의 소유다. 내 영광을 나타낼 자다. 나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사랑이다. 너무도 소중한 나의 아들이다, 딸이다...." 그 이름답게 살도록 사랑해 주시고, 힘과 지혜를 더하시고, 친히 도움이 되어 주신다.
성탄절이다. 성부는 우리가 죄에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중히 여기시는 존재임을 알려주시고자 아들을 보내오셨으니 감사하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길이 되어 주셨으니 감사하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모든 열방 가운데서, 이 세상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니 감사하다. 우리를 새롭게 불러주시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고 계시니 감사만 하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