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성전 문이 열리다
하늘 나라 찬양대의 엄청난 심포니가 끝나면서 요한 앞에 또 다른 환상이 펼쳐집니다.
“그 뒤에 내가 또 보니 하늘에 있는 증언의 천막 성전이 열리고….”(15,5)
요한묵시록 11장 마지막 절에서는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이 시작되면서, 똑같이 하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서, 요한은 하늘의 성전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하늘 문이 열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늘 나라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곳일까요? 얼마나 은혜롭고 성령으로 충만한 곳일까요? 상상이 안 갑니다. 하지만 일단 그 모습은 한때 예루살렘에 있던 땅의 성전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알아보고 성전이라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요한이 묵시록을 기록할 때쯤에는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파괴된 지 25년도 더 지난 뒤였지만, 요한의 기억에는 그 모습이 아직 생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성전은 하늘 성전의 모형일 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현존하셨던 지성소는 늘 가려져 있었고, 대사제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성전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대사제가 되시므로, 지성소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성도에게는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한은 ‘하늘에 있는 증언의 천막 성전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당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좇아 만들었던 천막을 종종 ‘증언 천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천막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새겨진 궤가 들어 있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르신다는 증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증언 천막’의 증거는 하느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인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그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주님의 현존 그 자체입니다. 말씀을 주실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가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능히 돌파할 수 있습니다.
*** 일곱 대접 재앙의 준비 완료
승리한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기쁨과 감격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나갈 수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성전이 됩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15,6)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 있는 하늘의 성전이 열리고, 그곳에서부터 일곱 재앙을 가진 천사가 나옵니다. 하늘의 성전에서 재앙을 집행할 천사가 나왔다는 것은 이것이 백 퍼센트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사건임을 말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하느님의 천사들은 금 띠를 두른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거룩함과 순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구약시대 사제가 입었던 옷입니다. 세상에 재앙을 전달하러 가는 천사들은 천상 예배를 드리는 사제였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명령과 권위를 받아서 세상에 마지막 심판을 내리러 갑니다.
“그때에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15,7)
요한묵시록 초반부에 언급된 하느님을 모시는 네 생물 중의 하나가 하느님의 분노를 가득 담은 일곱 개의 금 대접을 천사들에게 줍니다. 이 대접은 내용물을 신속하게 비워야 하는 아주 얕은 접시입니다. 요한묵시록 5장의 박해받고 순교를 당한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 찬 대접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악한 세상 권세를 심판해 달라는 수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이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으답으로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전이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15,8)
성전의 연기는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심판과 재앙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 누구도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최종 심판을 중간에서 저지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심판의 때는 하느님의 분노의 시간입니다. 주님과의 친교의 시간, 중재의 시간, 은총의 시간은 다 지나갔습니다. 복음 전파의 시간, 구원의 시간도 다 지나갔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분노만이 이 세상에 쏟아질 뿐입니다.
사람들이 언제까지 회개할 수 있고, 언제나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래 참아주시는 분이지만 언제까지나 참아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회개와 눈물이 통하지 않는 때가 옵니다. 그때는 이 죄 많은 세상, 회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이 집행될 뿐입니다. 이 마지막 재앙의 시각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는 아직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교회는 총력을 기울여서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소일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분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전하며 살까?’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묵시록 메시지의 절박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하루하루를 정말 소중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네. 오늘을 소중하게 잘 살겠습니다.
끝을 모르고 하느님 반대방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너무 부족하지만 제게 주신 달란트로 가족과 주변 이웃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
아멘.
아멘.
아~~멘.
"예배의 핵심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주님의 현존 그 자체입니다.
말씀을 주실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가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능히 돌파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