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흐르는 곳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겔 47:1) 그래서 강이라고 부르는 흐름이 생긴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5)
이 강에는 살리는 물이 흐른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9) 이 세상에 교회를 두신 이유다. 우리가 교회로서 살아가는 이유다. 대면이나 비대면 예배 보다 이 흐름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 아마도 삭개오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그 삭개오의 삶에 급진적인 변화가 왔다. 그 재물을 흐르게 한 것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이 임했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창고가 열릴 때 재물을 쌓느라 재물에 매였던 그의 삶도 풀린다. 물고가 열리듯, 창고가 열리며 흐름이 시작된다. 더불어 이웃이 기뻐하며 웃는다. 이런 일도 있다며 손뼉을 치고, 그를 바라보는 이웃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게 잔치가 열렸다. 구원이 임했다. 천국이 임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외국에서 홀로 일하는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병원비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만원도 내는 것을 주저했다. 물질에 매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도 못 본다. 동생들도 못 본다.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울면서 3만 원가량을 보냈다. 그 흐름 따라 물질에 가로막힌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임하는 순간이었다. 훗날 그녀는 그 일을 감사했다.
소유가 흐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신 안에 갇혀있던 사랑, 관심, 지혜 등이 이웃을 위해 흐르기 시작한다. 이웃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짜의 삶이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덕성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물질이 막혀있는 곳에는 누추한 이기심만 자라지만 소유가 흐르는 곳에 사랑이 흐른다. 구원이 임한다.
새해를 맞아 교회 리더 중 한 사람이 모든 친구들에게 근사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그의 마음이 친구들에게 흐르는 것이다. 흐름의 본으로 경주 최부자가 있다. 흉년이 되면 활인당에서 음식을 나줘 굶주린 백성을 구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곳간을 열어 곡식을 나눴다. 국채보상운동, 의병활동지원, 상해임시정부 자금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한독립을 위해 모든 재산을 바쳤다. 소유를 흐르게 한 삶이다.
보물과 돈은 다르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쌓아 두라"(마 6:20) 보물은 하늘에 있을 수도 있지만 돈은 땅에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시 49:10) 왕의 묘를 발굴해보면 보석, 금화, 은화, 장신구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돈은 가져가지 못한다.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흐르게 한 것만 셈하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하늘에 쌓는 보물이 되게 하신다.
성도에게는 특별한 소유가 더 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시 119:56)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물질도 말씀도 흘려보내는 교회로 사는 것이다. 아무리 흘려보내도 마르지 않도록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새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복을 곁에 두신 이웃과 더불어 한없이 누리길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