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대사로, 누나와 7명의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19년을 복역한 장발장이 한 말이다.
그 긴 세월 수감생활하며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그에게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만 남았다. 출소한 후 갈 곳이 없어 묵게 된 성당에서 몰래 은식기와 은촛대를 훔쳐 도망쳤다. 경찰에 체포되자 미리엘 신부는 그가 훔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준 것이라고 말한다. 빵을 훔친 것에 비해 너무도 무거운 형벌을 내린 불공정한 세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명백한 죄에 대해 참으로 불공정하게 베풀어진 은혜 앞에 선다. 바로 그때 장발장은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다. 그 세상에는 은혜가 흐르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으로 대하는 신부를 통해 주님을 본다.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고 믿고 그를 좇는 경감 자베르는 순수한 양심의 소유자다. 치밀하고 냉정하며 남의 마음을 꿰뚫어 한꺼번에 집어삼킬 것 같은 눈동자를 지닌 인물로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의구현을 위해 사는 인물이다.
장발장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총 대신 칼을 꺼내 그의 결박을 풀어 준 뒤 센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신이 틀렸다는 시인이다. 빅토르 위고가 사냥개 같고 면도날 같은 경감을 통해 끝까지 추적하며 면밀히 살피게 한 장발장의 삶은 그처럼 진실되었고 숭고하기까지 했다.
사람이면 그럴 수 없는 그의 삶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다." 그는 주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 얼굴을 뵙기 위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다. 마침내 자베르에게서까지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다.
믿는 사람은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복된 소망이다. 그 얼굴을 먼 훗날 천국문에서 뵈리라 생각하며 사는 경우가 많지만 장발장에게는 그 얼굴을 보는 일이 스마트폰을 켜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랑이 사라져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 세상에 빅토르 위고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지 않았을까? "당신은 지금 당장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라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작별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신 이유를 조금은 더 알듯 하다. "내가 말한 것처럼 나는 곧 십자가를 지고 죽을 것이다.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떠나는 내가 그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나를 보는 길이 있지.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곧 내 얼굴을 보는 길이다."
그 말을 곁에서 들었을 요한이 적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1) 아무리 주님을 찾아도 그 얼굴을 뵐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사랑만 있고 서로 사랑은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으면, 가까이에 두신 누군가를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사랑을 받고 환하게 웃는 그 얼굴에 주님의 미소가 어려있다.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시고 위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영화 '아바타 2'에 나오는 나비족처럼 서로를 향해 말할 수 있다. I se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