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루를 무탈하게 지낼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 무탈한 일상이 감사하지 않는것은 왜 일까. 세상은 참 어수선하다. 정의는 물론이고, 작은 윤리의식마저 무너진 느낌일때도 있는게 사실이다. 공중 도덕도 억망이다. 폭력이 난무하다. 무차별 공격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만끔 청결하고 공중의식이 살아있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외국생활은 물론 나가본적도 거이 없는 내가 아는게 없지만 어느정도는 그말에 공감하는것도 사실이다. 아니, 뿌듯하고 자긍심도 일어난다. 우리국민 다수는 사실 모범적인 백성인것 틀림이 없다. 그럼,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혹독한 절망감을 끼얹는 사람들은 누굴까. 다수의 정치권력자들인가. 정치 패거리들 얘기만 나오면 골부터 아파온다.그렇다. 내가 욕심을 부린들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사회는 파장을 이르킨다. 뇌화부동이 일어난다. 우리는 다 하나일뿐이지만 누군 그 하나가 아니다. 어쩌면 하나가아닌 하나가 되기위해 권력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삶은 참 어렵다. 그냥 살면 그만인데, 결국엔 그냥 살아가면서도, 그냥살지는 않겠다는 몸부림이 누구에게나 있어서 더 어렵고 힘이든다. 손주중에서 외손주가 제일 행복한듯 싶다. 본인도 행복하다고 말한단다. 친손주들은 어떨까. 아니, 내 생각일뿐이다. 어찌 엄마를 부정하는 자식이 있겠는가. 낳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것 아닌가. 엄마는 참 위대한 것이고 비교불가의 존재다. 하나님이 대신 보내신 보호자가 엄마라니까.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디갈까.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벌써 모순이다. 그럼 모순이지.
오늘은 금요 셀예배가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 핑개로 참석하지 않았다. 비가오면 질척거리는 것도, 몸이 젖는것도 싫다. 다른 분들은 그럼에도 다들 참석한다. 누군들 비에 젓는것을 좋아할가. 그럼에도 믿음의 끈은 느슨해지지 않는다. 참 대단들하다. 나는, 딸 표현대로 취미생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하나님 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주셔야 한다는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 사랑하라고 하심에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시길 더 원하고 있다. 드림 보다는 받는걸 더 좋아하고 있어서다. 어머니도 한결같이 주심으로 끝냈다. 나는 한번도 드려보지 못했다. 드릴게 없었다는게 그 이유다. 늘, 나는 드릴게 없다는 이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 그랬다. 나눌게 없을만끔 가진게 없는 사람은 없다고.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는게 나눔이라고. 그런데 나는, 나눌게 있어야 나누는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버려도 줘갈 사람 없는 누추한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나누냐고. 모르겠다. 마음을 나눈다고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 되는게 있을까. 배 곺아하는 사람에게는 밥이,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약이 필요한데, 말로만 잘 먹고 몸조리 잘하라고 하는게 무슨 도움이 될까? 허기지고 불안한 사람에게는, 손에 가만히 쥐어주는 얼만의 물질이 더 유용하고 힘이 되어주지 않던가. 큰고모님이 그랬다. 약속도 없이 무작정 광주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만원 한장을 손에 쥐어주고 가셨는데, 나는 그걸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지않고 있다. 그래서 물질이 있는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는것인가. 쓸쓸한 가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