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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연 신부의 삶이 행복해지는 인생 강의
주변을 둘러보면 '사는 게 힘들다'는 사람, 참 많다. 세상과 인생을 이해하고 성실히 산 만큼 행복의 가치와 크기는 달라진다는 황창연 신부. 삶의 지혜와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의 한마디가 더욱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이유다. 한 번뿐인 인생, 멋지고 맛있게 살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는 황창연 신부의 행복론.
◆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평택 비전동 성당에서 사목할 때 일이다. 남산만큼 배가 부른 신혼부부 집에 들렀는데 '장군' '판사' '검사'라고 쓴 직사각형 도화지가 거실 탁자 위에 흩어져 있었다. "대통령, 판사, 의사되라고 아침마다 읽어줘요"라고 엄마가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의 미래 직업을 엄마가 이미 결정해 놓은 것이다.
임신하면 태 안에 신비한 생명체가 자란다는 생각보다는 '서울대학 씨'가 자란다고 믿는 것 같다. 배가 부를수록 엄마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능 좋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 똑똑하라고 임신 기간 내내 대학 입시용 수학 문제를 푸는 엄마도 있다. 이런 엄마한테 태어난 아기들은 기필코 일류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과외와 학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예비 엄마 아빠들이 "아가야, 세상에 태어나면 우주의 기운을 느끼고 만물을 사랑하면서 자연의 품 안에서 맘껏 뛰어놀고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배속에서부터 행복할 텐데 아기를 기다리는 현실은 입시지옥이다.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식물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생혼(生魂)'이 있고, 동물은 아픔을 느끼는 '각혼(覺魂)'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선한 일에 기쁨을 느끼고 진리를 깨닫기 위해 고뇌하며, 예술 작품을 보면 감동하고 거룩함을 동경하는 '영혼(靈魂)'이 있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없는 영혼을 가진 자녀에게 고결한 얼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부모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중략)
▶ 서머힐 학교를 세운 닐, 피아제, 몬테소리 같은 유아 교육가들은 다섯 살까지 글자나 숫자 같은 고정적 개념을 주입하면 아이들 뇌 기능이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다섯 살 이전에는 공부가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기 알맞은 시기다. 공부 가르치겠다는 지나친 욕심에 자녀에게서 우주와 자연을 빼앗아 자녀의 심성과 뇌가 멍들어가는 걸 부모는 모른다.
▶"신부님!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 봐요!" 자랑하던 부모들은 10년 후 다시 만나면 덩치가 산만 해진 아들을 째려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 내 아이는 머리는 똑똑한데 노력을 안 해요!" 아직도 자녀가 천재라고 믿는 모양이다. 인간은 학교 공부하기 위해서만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는데 부모들은 공부 귀신에 홀린 것처럼 학년이 올라가는 자녀들을 입시지옥으로 서서히 몰아간다. 다섯 살짜리 조그만 어깨에 서울대학 합격이라는 짐을 지우는 건 너무 무겁고 잔인한 형벌이 아닐까? 다섯 살은 엄마, 아빠 품에서 깔깔거리고 뛰어다니며 조막만 한 손으로 온 세상을 만지작거려야 할 나이다.
▶ 사실 공부를 잘한다 해도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1백70가지 직종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늘 반에서 상위권에 있던 의사들은 1백69번째로 꼴등이었다.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다. 공부 잘하면 행복하고 못하면 불행하다는 잘못된 공식 때문에 심성은 착해도 성적 나쁜 아이들이 불행한 세상을 살고 있다.
▶ 공부에 취미가 없는 머리 나쁜 자녀를 죽어라 공부만 시키면 자녀는 죽을 맛이다. 자녀가 끊임없는 엄마 잔소리와 무시, 경멸하는 눈빛을 받다 보면 성격이 삐뚤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부 못하는 자녀를 행복하고 경쟁력 있게 키우고 싶다면 학원 보낼 돈으로 이곳저곳 많이 데리고 다녀라. 지리산 종주 등반, 소백산 철쭉 축제, 꽃동네 자원봉사, 수도원 피정, 자동차 박람회, 건축 박람회, 전자 기계 박람회, 숲 체험, 울산 앞바다 고래 체험, 박물관, 소녀시대 공연, 음악회, 전시회를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끊임없이 데리고 다니다 보면 성격 좋고 능력 있는 청년으로 성장할 것이다. 하다못해 학창 시절을 되돌아볼 때 1등 들러리한 기억보다는 수많은 추억이라도 간직할 수 있다. 자녀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를 생긴 대로 키워라.
◆ 행복한 부부를 위해
부부는 사랑의 끈으로 묶여 있어야 행복하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오늘날 부부를 이해하는 가치 기준이 새로워져야 한다. 부부가 서로에게 축복이 되려면 경청, 칭찬, 안아주기, 함께 여행하기, 다정한 대화하기, 함께 살림하기, 단점 눈감아주기, 서로에게 자유 시간 허락하기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 사이라도 끊임없는 잔소리는 용서가 안 되듯이 사랑에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결혼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는 환상을 가진 젊은 남녀의 경우 헤어질 확률이 높다. 남편 될 사람은 아내가 친엄마처럼 무조건 잘해 줄 거라 믿고 아내를 늙은 엄마 대용품쯤으로 생각하면서 젊고 예쁜 여자와 결혼한다. 아내는 남편이 친정아빠처럼 따듯하게 돌봐줄 거라고 굳게 믿으며 결혼한다. 하지만 엄마처럼 무조건 감싸고 용서해주는 아내는 없다. 엄마는 아들이 무슨 잘못을 해도 제 몸에서 나온 자녀이기에 용서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폭력을 휘두르면 친엄마처럼 오래 참아주기는커녕 바로 헤어지자고 한다. 아내 또한 남편이 친정아빠처럼 잘해주리라 기대하지만 그런 남편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결혼 생활은 연애할 때처럼 마냥 좋은 일만 생기고 달콤함만 지속되지는 않는다. 부부로 살다 보면 경제문제, 주도권 싸움, 육아 방법, 살림살이 분담 문제, 시댁 식구와의 갈등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지뢰들이 곳곳에 묻혀 있다. 결혼은 달콤하기만 한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운동을 하며 취미 생활을 같이 했다면 쉰 살이 되어 남편이 집 안에 있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둘이서 함께할 일이 있다면 남편의 실직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1백 년을 사는 시대에 부부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하고 무미건조한 젊은 시절을 보낸 부부가 너무 많다.
▶ 신혼 때부터 안사람, 바깥사람 구분하지 말고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요리도 같이 하고, 단둘이 공원 산책도 다니고, 함께 포장마차 가서 데이트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니는 부부는 애인같이 늙어갈 수 있다. 부부 훈련이 필요하다. 사이가 좋지 않은 황혼 부부들을 모아놓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훈련시켰더니 이혼하겠다던 부부 가운데 85%가 신혼 때 기분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됐단다.
▶ 북유럽 여행 중 비행기를 바꿔 타느라 하루 종일 공항 대합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음식을 시켜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 내 앞에 예순 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머리가 하얀 노부부가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한 시간 넘도록 남편이 아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허니 아이 러브 유" 하며 낯 간지럽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한국 사람인 나로서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키스는 젊은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다 늙은 부부가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장면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안사람, 바깥사람 개념이 분명한 우리나라 노부부 가운데 과연 몇 쌍이 그렇게 사랑 고백을 할 수 있을까?
▶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부모처럼 다 자란 자녀에게 대학 등록금 대주고, 용돈 주고, 때 따라 철 따라 스키장·해수욕장 다니라고 유흥비 대주는 나라는 없다. 외국인 눈에 비친 이상한 한국 문화의 첫 번째를 차지하는 건 부모가 다 큰 자녀의 대학 등록금 대주는 거란다.
▶ 열심히 땀 흘려 번 돈은 자녀가 아니라 부부를 위해 써야 한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자신도 꾸며야 하지만 남편도 멋있게 꾸며주어야 한다. 뉴욕에서 식사에 초대받아 갔는데 부인이 차에 타자마자 이마를 치면서 "아차!" 하더니 급히 집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멋진 신사 모자를 갖고 나왔다. 나 주려고 준비한 모자인가 내심 기대했는데 남편한테 줄 모자였다. 식당에서 만난 남편에게 중절모를 주면서 날씨가 추운데 당신이 아침에 모자 없이 나가서 내가 가져왔노라고 다정히 말한다. 남편이 중절모를 쓰는데 그렇게 부럽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남편을 꾸며주는 부인을 보면서 모성애도 느끼고 매력도 느꼈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는 맛과 사는 멋이 없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중년 부부가 세상살이를 50년 이상 쉬지 않고 달려왔다면 한 번은 쉬어야 한다. 하다못해 우리 콧구멍도 쉰다. 콧구멍 두 개는 서너 시간마다 활동을 교대한다. 한쪽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 동안 다른 콧구멍은 쉰다. 50년 동안 육신을 혹사시켰다면 고생한 육신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사람은 쉼을 통해 사는 멋을 만끽할 수 있다. 하느님도 6일 일하시고 일곱째 날 쉬지 않으셨는가!
◆ 현명한 남편 십계명
1 아내에게 져주어라.
2 아내 편을 들어라.
3 살림살이를 도와주어라.
4 예쁘다고 칭찬해주어라.
5 음식을 맛있게 먹어라.
6 남들 앞에서 아내 흉을 보지 마라.
7 일주일에 한 번 아내 대신 요리해라.
8 결혼기념일, 생일을 꼭 챙겨라.
9 함께 여행 다녀라.
10 아내와 손잡고 성당에 가라.
◆ 지혜로운 아내 십계명
1 부드러운 말로 잔소리해라.
2 자신을 예쁘게 꾸며라.
3 집을 깔끔하게 가꾸어라.
4 맛있는 요리 가짓수를 늘려라.
5 다른 남편과 비교하지 마라.
6 혼자만 말하지 마라.
7 남편에게 감사와 감탄을 자주 해주어라.
8 남편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어라.
9 함께 여행을 다녀라.
10 남편 취미에 동참하라.
▶ 팔짱 끼고 다니는 서양 노부부는 많은데 한국에서는 노부부가 손잡고 데이트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젊어서부터 자녀 키우느라 부부 사랑이 가려졌다. 미국 부부들은 파티에 가면 자녀들을 돌봐주는 도우미를 데려다 놓고 부부끼리만 오붓하게 외출하는데 우리는 어딜 가도 아기를 끌어안고 다닌다. 당연히 부부가 팔짱 낄 기회는 줄어들고 부부 사이는 점점 벌어진다. 늙어서는 아예 각방을 쓰기도 한다.
◆ 행복하게 사는 법
운동하라│평생 열심히 일해 돈 벌어 재산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더라도 몸이 아파 쓸 수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1분 걸으면 수명이 2분 연장된다고 한다. 칠십 평생 날마다 30분 동안 걷는다면 적어도 4년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감사해라│욕심 많은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면 감사하지 못한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을 채우려고 애쓰는데 언제 감사할 시간이 있겠는가.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움켜쥘 수 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산의 정상에 이미 올라가 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사귀어라│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나를 지지해주고 내 편이 되어줄 친구가 적어도 한두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행복이라는 산에 오를 때 손을 맞잡고 함께 오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훨씬 수월한 등반이 되리라.
텔레비전을 거실에서 치워라│텔레비전을 치우면 시간이 남아돈다. 운동할 시간, 독서할 시간이 생긴다. 또 가족과 대화할 시간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이 생긴다.
공부해라│'나는 이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 살까지 무시당하지 않고,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려면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활기 넘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웃어라│웃음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개는 입이 튀어나와 웃을 수 없다. 예쁜 치아와 입술과 입 주위 근육을 가지고 웃지 않는 인간은 개 표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자신에게 잘해주어라│내가 행복하면 주위 사람이 나를 조금 소홀하게 대접해도, 내가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늘 참고 인내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착해 보이고 성실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에는 스트레스가 쌓여 있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어라│어려운 이웃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사는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외로움도 즐겨라│만일 '외롭고 뭔가 허전하고 가슴 한군데가 비어 있다'고 느껴진다면 바로 그 순간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 떠나야 하는 시기임을 깨달아야 한다. 굳이 외로울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혼자만 고요히 머무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행복한 에너지를 갖고 싶은가? 혼자 머물러라.
하느님 안에 머물러라│세상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손을 내밀어주는 위로의 샘이 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 황창연 신부는…
강원도 평창의 성 필립보 생태마을을 이끌며 나라 안팎에 서 강의를 하는 그는 1992년 수원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종교철학과 환경공학을 공부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 농사꾼 신부 유럽에 가다 > < 어디로 가야 하나 > < 사는 맛 사는 멋 > 등을 펴냈다. 현재 평화방송TV '황창연 신부의 행복특강'으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황창연 신부 강의를 듣고 느낀 나의 생각..
개인적으로 강의를 보다보면 공감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너무 편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리고 "신부"라는 직책으로는 부적합한 주제로 강의를 하시는것같습니다.
결혼문제, 남녀문제, 자식문제 등 모두 속세의 중생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결혼 한번 해본적 없고, 자식한번 길러본적 없는 "신부"라는 직책의 사람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통달한듯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여러가지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야 저도 천주교 신자이고 강의내용이 재미있어서 흥미있게 듣고 있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과연 신부라는 직책을 가진 성직자가 대중앞에 신바람 강사처럼 가정사 이야기를 신란하게 할수있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차라리 이런 얘기는 동네에서 반상회 끝나고 다과먹는 시간에 "철수와 영희" 어머님에게나 들을만한 이야기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 황창연 신부님이 티비에 나와서 하는 강의 내용들은 대부분 언론이나 신도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자기식대로 해석해서 강의하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 공감하기가 힘듭니다.
또 강의를 듣다보면 신부님의 강의 상당부분에서 요즘 청년들에 대해 상당한 비판 의식을갖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선 천주교 신자로서 이런 얘기를 하게된다면 타부로 치부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신부님이라는 직책을 직업으로서 엄밀히 본다면 종교계로서는 "공무원"이나 다름 없는 신분 아닙니까? 크게 물의를 빚지 않는 한 공무원들처럼 정년 보장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갈때까지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 걱정할 것 없이 생애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사람들 끌어모으고 교회를 만드는 개척교회 목사님들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죠. 물론 신부님들의 직책이 편안하기만 한 직업이라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신부님들은 주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분들이므로 존경 받아야 마땅하고 또 신앙생활하면서 그만큼 힘든 사항도 많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또 신부님이 되기까지도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말입니다. 황창연 신부님께서과연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의 애로사항과 더 깊숙히 내재되어있는 사회문제에대해 얼마나 경험했고 느끼고 살았기에 마치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의 아버지가된 것 마냥 티비에서 그렇게 청년들을 향해 신란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지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명동에는 애들만 널려있다. 어르신들 갈 곳이 없다. 프랑스 파리가면 노인들이 모여 와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이게 무슨 꼴이냐?"
"몸빵하는 놈들은 몸빵으로 돈 벌어야지 머리써서 돈벌려고 하니 안되는거다"
"부모는 돌려줄만한 자식에게 뭔가를 줘야지, 기브앤테이크 안되는자식들에게는 해줄게 없는것이다"
"대한민국 처럼 살기 좋은 나라 없다. 커피 공짜로 주고 반찬에 게장까지 나오는 나라가 어디있나?"
위에 대사들은 강의 중 신부님이 하신 말씀 중 몇 부분 발췌해서 써본겁니다. 강의 대본을 직접 옮긴게 아니라 구절이 정확히 옮겨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여하튼 위와 같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이외 다른 대사도 몇개 있는데, 지금은 이 세가지만 중점으로 의견을 내고 싶네요.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명동에는 애들만 널려있다. 어르신들 갈 곳이 없다. 프랑스 파리가면 노인들이 모여 와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이게 무슨 꼴이냐?"
명동에는 애들만 널려있고 어르신들은 없다.. 어르신들은 파고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우선 궁금한게 명동에 애들만 널려있는게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입니까? 프랑스 파리에 가면 노인분들이 와인을 즐기고 계신다고요?
그곳은 서구이며 전혀 다른 문화의 나라입니다.나이많은 사람한테도 이름부르고 친하면 친구처럼 윗사람과 수평적인 관계까지 유지가 가능한 곳입니다. 그러기에 노인이나 젊은이나 한데 섞여서 젊은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 간혹 노인들이와인을 마시건 스테이크를 먹건 눈치를 안 받는 것이지요. 또한 노인들 스스로도 개방된 편이라 젊은애들이 옷을 이상하게 입고 다니건 소리를 크게말하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 한번 가보십시요. 막상 명동과 비슷한 신주꾸나 시부야같이 젊은애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노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연공서열을 따지는 유교문화권의 나라인지라 노인들이 젊은애들이랑 같이 섞이기 불편해하고, 젊은이들도 노인들이랑 섞이기 불편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도 가보시면 많은 노인분들께서 공원이나 한적한 교외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캐나다에서 오랜 생활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서구권이 개방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노인들은 번잡한 길거리에서 와인을 마시는 거보다는 조용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개와 산책하는 것을 즐기십니다. 호수가앞에 앉아서 호수를 보면서 부부끼리 대화하는 노인들도 많이 있고요. 도대체 한국과 서구와 뭐가 그렇게큰 차이가 있는건가요? 파고다 공원가서 산책을 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파고다 공원가시면 되는 것이고, 친구와 술한잔 하시고 싶으신 노인분들이 계시면 친구 불러서 삼겹살집이나 대포집에서 한잔 걸치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음식점이 얼마나 많습니까? 꼭 서구인들처럼 와인을 마셔야하나요? 오히려 고기집에서 친구 불러서 소주 한잔 걸치며 삼겹살나누어 먹는게 시끄러운 명동 거리까지 일부러 찾아가 와인 시켜서 스테이크 먹는 것 보다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우리 젊은이들이 명동에 모이는게 뭐가 잘못된건가요? 명동은 엄연한 번화가이고, 친구만나서 갈 곳도 많고 맛있는 곳도 많이 있는 곳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생각없이 사는 젊은이들도 많겠지만, 명동거리를 걷는 많은 젊은이들 중에는 힘든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하며 친구와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친구들입니다.
결론은, 명동에서 회포하시거나 칼국수 드시고 싶은 노인분들은 명동에 오셔도 전혀문제될 것 없는 것이고, 많은 젊은이들이 명동에 모인다고 비난받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명동은 "대한민국 국민의 거리" 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한적한 여가를 즐기고 싶으면 파고다 공원에 가면 되는 것이고, 물의 운치를 느끼고 싶으면 한강 고수부지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종로나 남대문 거리의 많은 젊은이들과 노인분들께서 대포집이나 포장마차에서 회포를 푸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명동이라는 서울의 한 부분밖에 안되는 곳을 가지고 서울 전체에 노인이 갈 곳은 없다 라는식의 논리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몸빵하는 놈들은 몸빵으로 돈 벌어야지 머리써서 돈벌려고 하니 안되는거다"
그렇습니다. 이게 지금 청년들의 문제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게 청년들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사회 풍토부터 보십시요. 용접공, 배관공, 설비기술자, 전기기술자, 자동차 수리공 같은 전문기술인을 "노가다 일꾼" 취급합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보고 "군바리"라고 부릅니다. 미친놈들 칼빵맞을 수도 있고 한밤중에 교통정리하다가 술또한 또라이 운전자한테 뺑소니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을하는 경찰관들을 향해 "짭새"라고부릅니다. 건설현장에서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우리 국민들이 사는 집을 지어주는 고마운 일을 하는 공사현장 노동자들을 "노가다 잡부" 라고 비하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을 향해서도"공돌이" 라는 비하발언까지 하는 무뇌들도 있습니다. 즉 일이 힘들어서 안하는 건 둘째치고, 몸쓰는 일꾼 = 루저 취급당하는 사회풍토에 휘말려 이러한 일을 하면 정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우리 인재들이 이러한 직업을기피하는 것입니다. 즉 이런일을 하면 몸도 힘들뿐더러 사회에서 인정도 못받고 루저 취급당하니 누가 하려고하겠습니까?
사회풍토가 이런데 어느 부모님이 자식들이 몸쓰는 일을 하길 바라겠으며, 청년들 스스로도 이런일을 하고자 하겠습니까? 그러니 변변치 못한 지방대라도 나와서 사무직하려는 것이고, 공부좀 한다는 친구들은 의대니,법대니 가려고 기를 쓰는 것이죠. 최소 말단 사무직해서 월급을 쥐꼬리 만큼 받아도 이게 화이트 칼라 직업인지라 그 사무원보다 몇배의 돈을 더 벌 수 있는 블루칼라 배관공보다는 사회인식이 더 좋거든요. 남 눈치를 굉장히 보는 대한민국 특유의 문화에서 실은 기술직하면 더욱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어중간하게 대학가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들은 부모들 나름대로 내 아들이 노가다꾼 취급당하면 사회에서 루저 취급 안당하는 일을 하는 자기 동창친구들의 자식들과 비교되므로 죽자사자 대학보내려는거죠. 즉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부모님이 자식을 위하는부분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식들이 부모들의 "승부욕"의 희생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입니다. 내 자식이 다른 자식들보다 잘나야 자기가 마치 자기 동창들보다 높은 서열에 있다고 생각하는, 또 자기 스스로도 자기 친구의 자식이용접일 한다고 하면 "걔 공부 더럽게 못했나보다. 노가다용접일이나 하는거 보니 ㅋㅋ" 라며 무시하는 자신을 보면서,"내 아들은 그런 취급 당하게 할 순 없지. 안그러면 부모도 루저 취급 당하니까. 최소한 말자 자식보다는 잘나야 하지 않겠어?" 라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강박관념으로 자식이 원하지 않는 학원을 몇개씩 다니게하고, 적성에도 안맞는 수학, 과학 공부 시키며 좋은 대학 가도록 하기 위해 죽자사자 공부시키고, 그러다가 아이들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가 참으로 무서운게, 이렇게 애들한테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주고, 하기 싫은 공부 죽어라 시켰는데, 만약 아이들이 좋은 대학 못가면 사회 시선이, "저 자식은아주 부모한테 짐이구만. 부모가 그렇게 학원 보내고 공을 들였는데, 제대로 된 대학도 못갔어. 지잡대? ㅋㅋㅋ" 라며 눈에 보이지 않게 학벌로서 눈총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SKY 명문대학에 입학했다가 대기업 못 들어가면, "오죽못났으면 SKY 갔는데도 대기업에 못들어가는거지? ㅋㅋㅋ" 라며 또다른 사회의 눈총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 문제점의 축소판이 바로 친척들이 모이는 설날이나 추석에 나타나죠. 물론 안그러는 집안들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집안이 가족들끼리 사회의 잣대에 따라 서로를 비교하게 됩니다. 자기 형의 자식, 자기동생의 자식, 더 나아가 자기 친척의 자식 등, 비교하며 자신들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방금 얘기한것처럼 가차없이 공격하죠.
"니 사촌누나는 이번에 의사됐어. 넌 무슨일 한다고? 카센타에서 자동차 수리한다고? 저런, 그거 노가다 일 아니야? 그런 일해서 어떻게 결혼은 잘 하겠니? 그러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할 때 열심히 해서 대학 갔어야지."
"니네 사촌형은 삼성전자 해외영업부로 갔다더라. 너는 이번에 어디 취직했다고? 음? 다람전자 해외영업부? 아.... 근데 그런 회사도 있었던가? 직원은 몇명이나 있는데? 뭐야, 별로 없는거보니까 코딱지만한 회사네. 연봉은? 애게, 그거밖에 안줘? 복지는? 복지도 그거밖에 안돼? 힘들게 대학 나왔는데 결국 이거야? 뭐, 그래도 취직했으니까 그래, 열심히하고 ㅋㅋ"
물론 이런말을 한 본인은 악의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대한민국 사회는 천한일과 천한직장에 구분을 명확히 두고 있고,위와 같은 말은 결국 사회 풍토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의사는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는직업이고, 카센터 수리공은 사람들이 필요한 자동차를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삼성전자나 다람전자 (가상의 중소기업) 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훌륭한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이렇습니다. 이러니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몸빵하는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꿈을 가지고 중소기업이나 소기업에 몸을 담고 싶겠습니까?
대기업 다니는 철수네 아들은 위너고, 중소기업이나 소기업다니는 영수네 아들은 루저 취급당하는데, 대학까지 나온 영수네 아들이 사회에서 루저 취급당하면서 살고 싶겠습니까? 그러다보니 극단적으로 백수가 되어 몇년동안 대기업만 바라보는 취업 재수생이 되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결국 황창연 신부의 논리는 "썩은바다"만 비난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왜 그 바다가썩어야만 했는지, 그 원인이 되는 것을 집어내고 그 원인을 고쳐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썩지 않을 수있을까 하는 해결책보다는, "썩은 바다" 를비난하고 오염의 원인은 고쳐지지 않는데 알아서 스스로 정화하라고 합니다. 얼마나 웃기는 논리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이 오래동안 지속되다보니 다음과 같이 황창연 신부가 말하는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부모는 돌려줄만한 자식에게 뭔가를 줘야지, 기브앤테이크 안되는자식들에게는 해줄게 없는것이다"
결국 부모가 자식한테 온갖 정성을 다 쏟았는데,부모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자식은 짐이 되어버린다...
정말 신앙인으로서 저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많이 놀라웠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이해타산" 적인 계약관계인가요? 예수님이 세상에 죄많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때, 그 죄많은 사람들을 향해
"내가 너희들을 위해 희생했으니, 너희들도 나를 위해 뭔가 기브를 해야한다"
이렇게 하고 돌아가셨나요? 예수님은 자신들에게 돌 던지고 욕하고 침뱉고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들까지도 사랑으로 포용하고 그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사흘날에 부활하시여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과 기도와 용서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섬기는 분으로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때론 개중에는 부모 은혜 모르고 개망나니처럼 놀기만하고 부모 돈 타먹으며 부모의 사랑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은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의 자세는 이러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할만한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비난의 화살만 날리면 신부라는 신앙인과 일반인과 다른 점이 뭐가 있는건가요?
또한 부모에게 기브 못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저런 개망나니 자식들 말고도 위와 같은 사회풍토에 휘말려 사회적 루저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위너가될 때까지 원하지 않게 백수가 되어버리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해버려 결국 독립을 못하고 부모의 부담이 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젊은이들은 테이크만 했고 기브를 못했으니,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으니 보석 받아야 하는데, 성당의 신부님 마저도 이 청년들을 향해 죄스럽게 만드니, 청년들은어디가서 고해성사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청년들은 방황하게 됩니다.
뭐라도 해야하는데. 막상 뭘 하려하니 사회에서 인정하는 일을 안하면 순식간에 루저가 되고. 지잡대 들어가면 루저.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못가면 루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눈에 보이지않는 계급사회를 만들어 놓았으니 결국 청년들은 이 계급사회에서 밑바닥 취급받는게 두려워 자신에게 적성이 맞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사회가 인정하는,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정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몸부림 치다가 결국 기브를 할 수 없는지경까지 가는 것입니다.
27 살에 신부가 되신 황창연 신부께서는 과연 이러한 “썩은 바다”를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경험해보고 느끼고 대한민국 청년들을 향해 일침을 놓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인정받는 “신부님”이라는 직책으로서 과연 우리 청년들이 어쨌니 저쨌니 하는 위치에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신부님 하는 말이라면 다 옳다는 성당분들 앞에서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직접적으로 가정사와 사회에 관련된 강론을 하기에 신부라는 직책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직접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성당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사회를 바라보고자기 스스로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자신만의 논리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티비에 나와 강론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우리 청년들이 빛을 보고 세상을 향해 큰 날개를 피려면, 경제성장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풍토가 바뀌어야 합니다.
몸 쓰는 일을 해도 정말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인식으로 존중 받는 사회. 용접공과 배관공, 건설노동자가 없었으면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따뜻한집도 없었고, 현대화된 화장실도 없으며, 쇠로 만들어진 어떠한 물건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성당과 교회건물도 없겠지요.
중소기업과 소기업을 다녀도 대기업 다니는 이들과 차별 받지 않고 존중 받는 사회. 대기업도 한 때 중소기업과 소기업 이었습니다. 비록 남들이 중소기업연봉과 복지를 대기업과 비교하더라도 비전있는 중소기업과 소기업에 몸을 담고 미래를 바라 볼 수 있게금 사회가 그러한 풍토를 만들어 줘야하고, 힘있는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전체적인 대한민국 경제의 위상을 한껏 올리고 고용창출을 하여, 청년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군인과 경찰이 있기에 우리들은 이렇게 밤까지 컴퓨터를 하며 안전히 살 수 있습니다. 고된 일을 마다 않는 군인과 경찰이라는 직업을 “군바리” 니 “짭새” 니 하며 3D 업종으로 전락시키는 말도 안되는 사회분위기를 척결해야 하며, 이쪽분야에서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사회로 바뀌어야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요.
그 어느 세대보다 교육 잘 받은 지금 우리 청년 세대들… 사회 풍토에 휘말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불쌍한 세대들… 치열한입시경쟁을 뚫지 못한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높고, “고졸”이라는 대한민국 특유의 사회계급으로 알게모르게 열등감을 느끼며, 힘들게 입시경쟁을 뚫고 좋은 대학 갔어도, 막상 나와서 “사회에서 인정받는”일을 하려니 없고. 그러자니 아무 일이나 하려니 사람들이 날 비웃는 것 같고, 남들 눈치보이고 자존심 상하고... 옛날에는“대학 못 가서 할 것 없는 사람들이나 가는 공무원”이라는직업이 지금은 박사학위도 선망하는 직업이 되버리고, 또 같은 공무원이더라도 “교정직 공무원”이나 “환경미화원”들은 차별해버리는 사회풍토.
무슨 일을 하건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지지않는 한 고질적인 청년실업률은 우리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어도 결국 그 은혜를 갚으려니 너무 힘든 것입니다. 많은 부모님 조차 자식들이 대기업, 공무원 같은 일 아니면 자기들이 투자한 것에 본전도 못 뽑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며 창피하게 생각하니, 자식들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자포자기 백수가 되버리는 것이지요. 또 신부님 강연처럼 내 자식 알아서 크고 하고 싶은 일 하도록 시키자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루저로 전락해 버릴까봐 두려워 결국 부모님 치마폭에 두는 것이지요. 자식이 루저 취급당하면 사회풍토가 부모도 같이 루저로 전락되거든요. 지기 싫어하는 한국인들 성품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남들 눈치 안보고 내 방식대로 사는거요? 그게 대한민국 사회풍토에서 가능한 일입니까?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한국인들에게 가능한 일입니까? 과시하기 좋아하고 자기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약자를 무시하고 비웃고 짓밟는 사회 풍토에서 가능한 일입니까? 그럼 위너로 살면 된다? 제가 생각하는 세상은 모든게 평등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난자에 들어가기 위해 수억 마리의 정자들이 경쟁을 하고 그 중 하나가 수정에 성공하는 것 처럼, 자연계에 먹이사슬이 있는 것 처럼, 모두가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똑같은 위치에서 살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황창연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부모가 자식 걱정 할 필요 없고, 자식도 어떤 일이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려면 사회풍토가 최소한 그들이 하는 일들이 사회가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건간에 존중해주고 인정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잣대를 두고 "루저가 하는일" "위너가 하는일" 이라고 갈라놓고, 잣대 기준 아래에 있는 일을 하게 되면 루저 취급당하는데, 이런 사회풍토에서 어떻게 박탈감 없이 어느 일이건 행복하게 하겠습니까?
남들 존경 받는 사제직을 하고 있는 황창연 신부님의 강의는 노후생활이 보장된 공무원이 걱정 할 필요없고 경험하지 않을 사회적 애로사항과 노후설계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직장인에게 해주는 상황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러한 걱정 할 필요 없이 살아도 되는데, 경험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경험하지 않을 일들인데, 그런 걸 마치 다 경험하고 전문가인 양 강의하니 아이러니 합니다.
"대한민국 처럼 살기 좋은 나라 없다. 커피 공짜로 주고 반찬에 게장까지 나오는 나라가 어디있나?"
하긴 대한민국이 사회적 풍토에서 자유롭고, 의식주가 노후까지 보장되면서 대한민국 특유의 좋은 서비스를 누리고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죠. 황창연 신부님 말마따라 커피 공짜로 주고, 음식점에서 반찬에 게장 나오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뼈빠지게 일해도 마진이 많이 남지 않아 죽을 맛이겠지만 그러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되는 손님들은 행복하겠죠. 참고로 저희 집이 삼겹살 가게를 운영한 적 있었는데, 그때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해도 본전 못 뽑는날 많았고, 본전 뽑아 돈 좀 벌리는 날은 아주 새벽까지 초죽음 되도록 일했습니다. 저는 상추 씻는게 그렇게 힘든일인지 몰랐습니다. 정말 바쁜날은 손님들 수요가 많으니 천장 이상을 씻은 적도 있었거든요. 아버지가 직장 생활 그만 두시고 시작하셨던 요식업 사업이었는데, 결국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시고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부모님 일 도와주면서 생각했던게, 나는 저기에 저렇게 편안히 앉아서 내가 날라주는 고기와 반찬을 받아 먹는 손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눈물나게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서비스 잘 안해주면 손님들 안오니 어떻하겠습니까.. 피곤하고 덜 남아도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더 많은 서비스를 줘야지요.
이렇기 때문에 그 많은 청년들이 살기 좋고 편한 대한민국에서 몸 편하고 미래까지 보장받을 수 있으며 사회적인 인정까지 받는 황금 직종인 공무원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나 봅니다.
모든 일에는 “본분” 있는 것입니다. 건축가는 안전하고 튼튼한 집을 짓는 직책이고, 의사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게 일이며,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게 본분입니다. 성직자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기도를 해주고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성스러운 직책입니다. 만약 다른이들의 가정사와 사회문제에 대해 강론하고 논의하고 싶으면 신부라는 직책보다는 그 쪽 일에 걸맞는 건강가정전문가 혹은 상담직 쪽에 몸을 담그면 되는 것입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군복을벗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분야가 더 이상 군 수뇌부로서 군을 지휘하는게 아니라, 나라를 지휘하는 지도자로서의 직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군복을 벗고 양복을 입은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써 버렸네요… 우연히황창연 신부의 강론을 듣고 제 나름대로 느낀게 많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말은 모두옳다고 하시는 분에게 저는 이단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황창연 신부는 좁은식견으로 “썩은 바다”만을 보고 비판하는, 자신의 말만 옳다는 신도들의 말에 혼란을 느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신부라는 신앙인으로서 부적절한 강론을 한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혹시라도 천주교 신자분들은 오해하지 말길 바라며 (저도 천주교 신자입니다), 저는 황창연 신부라는 개인의 강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저의 의견을 썼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이로운 모든 직업이 사회로부터 존중 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황창연 신부처럼 우리 젊은이들을 다그치기만 한다면, 더욱 우리 젊은이들을 슬프게 하고 자포자기 하게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속세보다는 성당안에서 평생 독신으로 기도하고 지내야 하는 신부라는 입장으로 우리 중생들과 사회 전체를 이해하고 강론하기에 황창연 신부는 너무 속세를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