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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구성과 인과 관계의 필연성, 논리나 유기성을 무기력 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 다양의 이름의 등장이 이젠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다. 개인의 본성은 개별적인 존재로서 각각 매력적이고 개성있고 생명력이 넘치지만, 대를 거쳐 유전해 거대한 역사의 시선으로 볼 때 그것은 한낮 유사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새 노래라며 흥에 겨워 취해 춤을 추지만 결국 그 노래는 정해진 음표들의 재구성이요 변주였던 것처럼...... 마꼰도는 더 많은 외지인의 등장으로 변화해 더욱 다채로워졌지만 그만큼 신화적인 비밀스러움과 원시적 고유성은 희석돼 어느 덧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과 삶이 닮아져 있다.
# 스케치 # 김진아님, 꼬작, 꽃부리, 망고, 미녀하리, 뽀모도르, 여르미, 파리의 여인으로 책방의 의자가 제 주인을 찾아 풍성히 사람들로 채워지고, 새 호흡과 새 목소리는 우리의 집중력을 배가시킵니다. "여름이 더욱 깊어져 ~더위가 무르익어요~!♬♪" 제 힘을 다해 울어대는 매미에게도 절대 지지않을 기세로 <백년의 고독> 2권으로 들어서며 읽기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엄마며, 아내며, 며느리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소리꾼, 이야기꾼, 낭독자가 되어 소리내어 책읽는 화요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2권의 첫 장11부터 12장(9.p-66.p)을 읽었습니다.
# 이야기 속으로 ......
11장. 부엔디아가의 4대손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그의 정부인 뻬뜨라 꼬떼스, 준비된 왕후, 페르난다와의 결혼과 부앤디아가의 변화, 지독하게 유전되는 각자의 고독 그리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전시에 난 배다른 17명의 아들들의 등장으로 부엔디아가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12장. 기차의 등장, 매표소, 극장, 영화...급격한 변화와 외지인들의 정착, 마꼰도는 더이상 이들의 것이 아니다. 그링고들, 바나나의 열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유일한 사람, 미녀 레메디오스, 그리고 그녀의 승천, 다시금 정부와의 전면전을 도모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변화에 반응하는 인물들의 양태가 다양하게 제시되는데......
1.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결혼과 부엔디아가의 '그녀들'
" 저 학생은 특별하단다. 장차 여왕이 될 거야." (14.P:12) 이 주술과도 같은 말로 키워진 페르난다. 정작 현실에선 마꼰도의 시조의 손자이자 목축업자의 아내가 되니 사실상 마꼰도 왕국의 새 왕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황실의 예법을 배우며 왕녀로 준비된 페르난다의 등장은 부엔디아가의 변화를 주고 이에 대한 각 개인의 반응과 태도가 다양하게 전개된다.
결혼식 날은 페르난다에게 참된 의미의 생일이었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에게는 거의 동시에 행복의 시작이자 마지막이기도하다. (17-
.....페르난다가 그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페르난다에 의해 주도되었던 엄격한 생활방식이 완전히 정착되었고', 페르난다 말고는 그 누구도 집안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21: 10)
1) 정부 뻬뜨라 꼬떼스 vs 페르난다 : 뻬뜨라 꼬떼스는 멜키아데스의 방안에서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천성적으로 신중하고 붙임성 없는 그를, 활동력 있고 포용력 있으며 솔직하며 향락과 쾌락을 즐길 줄 아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남자로 개조한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의 결혼이 오히려 정부로서의 그녀의 자리를 더욱더 공고히 만들어 준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페르난다는 타락한 남편의 행위를 암묵적 동의하며서로를 귀찮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더욱 본처로서의 입지를 묵묵히 다져 나간다.
2) 우르술라 vs 페르난다 : 과거 놀림거리가 됐던 자신의 신혼 시절을 페르난다에게 이입해 부부관계마저 걱정하는 우루술라. 식사 예절과 같은 일상의 작은 형식까지도 정시, 정례법을 지키는 페르난다의 그것과 우르술라의 오랜 영감이 깃든 전통들과 부딪치며 삐그덕거리지만 결국 페르난다의 주도하에 엄격한 새 생활 방식이 완정히 정착된다.
3) 아마란따 vs 페르난다 : 페르난다의 왕가 수업용 느린 말투와 고상한 습관들에 심기 불편한 아마란따, 그런 그녀의 노골적인 적의에 페르난다는 침묵으로 응수하고 둘은 최소한의 필요에 의한 의사소통만 한다.
4) 아우렐리아 부엔디아 vs 페르난다 : 가정이 귀족화 해 결국 보수 보수파 정권과 반목할 수 밖에 없을 꺼라는 정치적 식견에서 페르난다에 대한 거부감을 불만스럽게 드러낸다. 페르난다는 그와 부딪치지 않으려 용의주도하게 처신하면서 아우렐리아 부엔디아의 보수적이고 낡은 반복되는 오래된 습관들에 환멸을 느낀다.
.....나이를 먹고 실의를 겪으면서 다소곳 해진 맹수로서, 노인 특유의 반발심으로 발작을 일으켜 집 안의 토대를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의 그 해이된 부품을 그대로 수용해야만 했다. (22.P)
그렇게 삶은 살아지고 각자의 고독의 무게를 나름의 방식으로 짊어지고 또 그렇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태어난다. 호세 아르까디오, 딸 메메(레나따 레메디오스).
2. 재의 십자가-아우렐리아노들
....사내 열 일곱명이 밖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이 세상 어디에 있어도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고독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그들은 집으로 돌아온 다음 막내가 이마의 십자가를 지우려했지만 전혀 워지지 않았는데., 형들의 이마에 그려진 십자가도 마찬가지였다.
1) 재회-잊혀진 열 일곱명의 아우렐리아노들....: 정부는 네에들란디아 조약 기념일에 맞춰 부엔디아 대령을 위한 기념 축제 개최를 통지하나 대령은 이를 거절하고 헤르넬도 마르께스 대령의 방문에도 흔들림이 없다. 현 정권의 위선적인 정치 공세에 대한 분노와 그에 대응할 수 없게 노쇠한 자신, 그 무기력감으로 가슴 아파할 때, 고독에 휩싸인 부엔디아가를 열 일곱명의 아우렐리아노들-부엔디아 대령이 전쟁을 치르며 각기 다른지역의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낳은 -이 찾아온다. 그들은 일시에 이곳을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접시들의 반을 산산조각 냈으며...총을 쏘아 암탉들을 죽였고, 아마란따에게 삐에뜨로 끄레스삐에게 배운 슬픈 왈츠를 추도록 강요했으며, 미녀 레메디오스에게 남자 바지를 입혀 장대를 기어오르게 했고, ....페르난다가 엉덩방아를 찧게 했으너, 집이 건강한 활기로 뒤흔들렸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손해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7,28.P)
2) 재의 수요일 십자가
카톨릭에서 부활 주일 전 일정기간을 성지주일로 지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념하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의식으로써 재를 이마에 직접 묻히는 의식을 행한다 한다.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솜씨 좋은 장인들로서 평화를 사랑하던 아우렐리아노들은 각자의 삶의 장소로 떠나기 전, 재의 수요일에 의식을 치른다. 아우렐리아노들이 이마에 받은 십자가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로써 더 쉽고 명확히 그들이 고독을 유전받은 부엔디아가의 씨앗임을 구별지을 수 있게 되었고 가문의 유전이 계속되리라는 확신을 심었다.
유일하게 마꼰도에 존속하기로한 물라또 아우렐리아노 뜨리스테는 할아버지의 충동과 탐험가 정신을 닮았고,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오랜 숙원인 얼음공장을 세운다. (29,p) 왕손이 사업가 아우렐리아노 쎈떼노와의 협업으로 생산량 초과로 공급량을 다 소화할 수 없게 되고 새로운 투자와 자본 형성, 물류 기반 사업의 구상과 새 교통 수단의 등장으로 이어져 바야흐로 얼음 공장은 제빙사업으로 번창해 간다.
"저기, 저, 부엌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것.이 마을하나를 끌고 오고 있어요."......그러나, 기적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인한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은 주민들은 모두 길로 쏟아져 나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띠리스떼를 보았고..... 기차를 넋을 잃고 바라다보았다. 많은 불안과 확신을, 많은 즐거움과 고난을, 많은 변화를, 재난을, 향수를 마꼰도에 실어 날라야 했던 그 아무것도 모르는 노란 기차를.(36.P)
3) 재회.....석회와 흙을 먹던 지워져 버린 레베까
아우렐리아노 뜨리스떼는 정착할 집을 찾던 중 구더기가 들끓는 폐가에 여전히 살고 있는 레베까를 발견한다. 가족의 몸체에 지속적으로 합류하지 못했던 애처로운 레베까를 기억에서 아프게 소환하는 우르술라와 아마란따. 사랑과 증오와 고통, 질투와 치기, 황홀한 순간과 처절한 기억을 공유하고 그 안에 늘 살아 숨쉬는 레베까의 현존은 급변한 세상도, 가족으로서의 호의와 개선 의지도 모두 완강히 거절한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레베까를 집으로 데려가 돌봐야 겠다고 작정했지만, 그의 선의는 레베까의 완고한 고집때문에 거절되고 말았는데, 고독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오랜 세월 고통 속에서 스스로 비참하게 살아왔던 그녀로서는 남들의 자선에 의지해 살면 좋를 거라는 환상 때문에 노녀의 삶을 교란당하면서까지 그 특권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1: 하반절6~33.p)
#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1. 수요일에 번번히 불길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 종교적 의미와 이야기와의 상관성이 궁금하다.
2. 1권에서 언급된 '불길한 화요일'처럼 남미의 전통적이고 종교적 인식들이 요일에 상징적으로 담긴 듯 하다.
3. 이를 보아 열일곱의 아들들이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전쟁 때 살인을 한 아버지의 죄를 뒤집어 썼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4. 한 페이지에 절반을 넘기는 긴 호흡의 장문장을 이 작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읽혀지는 것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체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 이는 스페인어를 직역한 조구호본과 영미본을 다시 중역한 안정효본의 큰 차이이기도하다.
5. 우리가 잠시 레베까를 잊고 있었네?! 오늘은 더 많은 인물들과 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잠시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흙먹는 레베까를 소환한다. 누군가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또 누군가는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으며 또 누군가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으로 여전히 이들의 삶에 관여한다.
6.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 장면이 흥미로워 이후의 전개도 개대된다. 그녀는 승천함으로 이 이야기에서 영구퇴장할까? 아님 레베까처럼 재등장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마르케스는 그녀를 재입장시킬까?
7. "미녀는 괴로워~~"^^미녀들을 세상은 통념으로 해석하고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녀 레메디오스에게 뭇남성들이 품는 욕망의 원인이 자신으로부터 촉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녀의 책임이고 그네들은 무기력하게 사랑에 빠짐으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52.p) 우리도 천재, 서자, 성적 소수자, 장애인, 이방인들 등에게 우리가 먼저 그들을 우리식대로 일부 규정하고 그 규정대로 마음을 정하고 그들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하지만 마르케스는 이런 다소 무거운 주제까지도 참 재밌게 논할 수 있도록 그 밭을 재미로, 환상적으로 잘 경작해 둔 것 같다. 샤워를 즐기는 미녀 레메디오스를 훔쳐보다 낙상해 죽는 남자 부분에서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8. 미녀 레메디오스의 천성을 오롯이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이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밖엔 없었다.(55.p)
9. 한 인간으로서 부모와 그리고 주변인들과도 인격적인고 본질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직 어릴 때 부터 여왕의 삶을 준비하며 살았던 페르난다. 그녀를 기술하는 장면을 볼 때 '쿠마리'-네팔 힌두교의 살아있는 여신-풍속이 연상됐다.
10. 부엔디아가의 거대한 버팀목, 우르술라. 늙으면 고집이 세 진다했던가.. 그녀의 현명함도 주름진 고집을 이기지 못한다. 시절은 갔고 더이상 그녀의 시대가 아니다.
11. 그간 부엔디아가의 변화는 대부분 타지에서 온 '여인'들로부터 왔다. 마꼰도의 변화는 외지인들의 이주로 비롯된다.
12. 과거의 아픈 기억을 공유한 아마란따는 레베까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아마란따가 레베카를 늘 기억했다는 것을 기술한 장면(30-32.p)이 마음이 아렸다.
13. 그나마 전쟁시엔 보수든 자유든 각 파가 지키려는 최소한의 명분을 위해서라도 싸웠으나, 이제는 일말의 명분도 없이 '이 편'이 아니면 '저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반목하는, 그야말로 정치적 도시로 마꼰도는 변해가고 있다. (64.p중반절: "자유파들과 보수파들의 유일한 차이점은 말이야 자유파들은 다섯시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보수파들은 여덟시에 미사를 드리러 간다는 것 뿐이야.")
14. 죄의 응징, 징벌적 살인으로 과연 열 일곱명의 아우렐리아노들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15. 아르까디오 계열과 아우렐리아노 계열, 호칭에 따라 크게 인물의 속성이 유사성을 띄게 되는 것 같지만, 쌍둥이 세군도의 출생을 기점으로 혼선을 빗으며 명명함이 숙명처럼 될 수 있다는 암묵적 질서를 오히려 깨기 시작하고 어느 덧 누가 어떤 이름이냐가 그리 중하지 않은 경계에 이르게 된다. 죽음과 삶도 이와 같아서 죽을 운명에 처한 상황에서도 말도 안되게 살고 서슬퍼렇게 살아 쌩동거려도 급사하기도 한다. 마치 인간이 '숙명'이라 그 안으로 숨으려 하면 숨기워지지 않고 숙명을 너머 자유롭게 날아오르려치면 더 큰 운명에 가둬버리는 듯하다.
다양한 신화적 함의와 상상력,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의 향연.
우리네 전래동화 <재주많은 다섯 친구> 기억하시나요? 단지손이, 오줌손이, 콧김손이, 배손이, 무쇠손이!
무자한 부부가 오줌 눈 단지를 열달을 묻어두라는 꿈을 꾼 뒤 그리했더니 단지만큼 큰 손의 왕손이를 얻죠. 단지에서 태어나 단지손이구요. 세상구경 나간 단지손이는 첫 친구인 오줌손이를 만나는데 어찌나 오줌을 많이 싸는지 홍수가 날 지경인데, 게다가 태풍 콧김으로 사방을 날릴 콧김손이까지 친구가 되지요......
이러한 거침없는 상상과 과장이 전혀 거름막 없이 술술~ 읽혀지면서 사실여부,의미파악, 믿고 말고의 문제를 너머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즐거웠던 기억이 있으시죠?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은 읽어 갈수록 분석의 잣대를 내리고 상징도 은유도 구조도 생각할 필요없이 할머니의 무릎 베고 듣던 옛이야기처럼 느껴지네요.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나 사건을 다루는 무게감까지도 닮은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네 산천의 정취가 아닌 습하고 열기 훅훅 끼치는 남미의 체취 속에서 벌어지는 좀더 진하고 강렬한 색채감과 향내가 진동하는 건 어쩔 수 없네요.재밌습니다!!!
***매주 화요일 <소리내어 책읽기>는 오전 10:00에 모여 한주간의 Greeting을 간단히 갖고, 10:20~11:50까지 동그랗게 모여앉아 소리내어 책을 읽습니다. 이후 11:50-12:20까지 30분간은 오늘 모여 읽으면서 든 생각과 느낌들을 자유롭게 나눕니다. 다음 책은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첫댓글 역시 친절한 꽃부리님~^^ 나중에 읽으면 내용이 생생하게 떠오르겠어요.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죠?
꽃부리님 후기 읽다보니 그 말이 생각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