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러맨]은 틱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뉴질랜드의 뱃노래다.(https://www.youtube.com/watch?v=qP-7GNoDJ5c) 약 150년 전, 거친 파도 속에서 거대한 고래를 잡기 위해 몇 달이고 사투를 벌이던 포경선원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웰러맨은 그 포경선에 정기적으로 음식을 공급하던 웰러 형제의 보급선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지칭하던 말이다. 추운 바다에서 고되고 외로운 싸움을 하던 선원들 모두가 기다리던 육지 소식이다. 힘이요, 위로요, 소망의 이름이다.
내이턴 에반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기타의 현이 아니라 통을 북삼아 두드리며 부르는 까닭에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나 전장을 향해 전진하는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를 연상시킨다. 감미로운 발라드가 아니라, 스스로의 또는 누군가의 힘을 북돋는 행진곡이다. 지쳐가는 동료에게 힘을 불어넣는 응원가요 구호에 가깝다.
“자, 조금 더 힘을 내자. 이제 웰러맨이 올 때가 됐다. 웰러맨이 오고 있다. 웰러맨은 곧 온다.”라고 선원들은 서로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웰러맨은 고대하던 좋은 소식이다. 어느 때나 그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나 싶은 선원들에게 힘과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소망은 노래에 고스란히 담겼다. “맞다! 웰러맨이 온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힘과 용기를 회복시켜 줄 물건들을 가진 그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 그들이 도착하면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고,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이고, 이 바다에 작별을 고하고 그리운 가족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해 트리니다드 할머니가 우울증에 걸렸다가 은혜로 회복됐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친구가 우울증에 걸렸다. 5년 전에 걸린 일이 있었는데 재발했다. 지금은 회복했다 하니 감사하다. 어땠느냐고 물으니 전화기 들 힘조차 없었다고 한다. 한 없이 가라앉아만 가던 그 경험을 안 겪어본 사람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모든 힘이 방전되어 다시 일어설 힘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손의 힘을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백약이 무효할 것은 상태다. 그 누구도 붙잡아 줄 길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주님은 웰러맨을 보내신다. 그들을 통해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
악한 아버지도 자녀를 망하게 할 생각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선하신 아버지는 자녀들을 지극히 잘 되게 하실 생각으로 일하고 계시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해 보내시는 종들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좋은 소식을 가지고, 필요한 물품을 주어 우리에게 보내오신 웰러맨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힘겹게 씨름하는 자녀들을 붙잡아 주신다. 다시 말씀해 주시고, 다시 힘을 주신다.
내 사정을 아시고 그 종들에게 주셔서 전하게 하신 소식들이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사 35:3,4)
마음을 낮추면 아내나 남편, 형제나 친구, 동료나 교우의 모습을 한 그들이 보인다. 그들을 통한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싸움을 싸운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통한 위로를 만난다. 자신들의 길을 끝까지 갈 새 힘을 얻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운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나 대책없이 지쳐가고 있을 수 있다. 때로 그 상황은 우연 없이 일하시는 주님의 허락 가운데 온 징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의 의도는 명백하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히 12:11.12)
귀를 열면 친구들의 그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함께 부를 그 응원가가 아닌가! “Soon may Wellerman come!” 보내오신 웰러맨들이 보이지 않는가! 마침내 우리의 진정한 웰러맨이 오신다. 예수님이 지금 곧장 우릴 향해 오고 계시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