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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육문학신문 원문보기 글쓴이: 교육문학신문
아버지의 보청기 은소 / 김양순
시외버스터미널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에는 등 굽은 노인들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대체로 전주에 사는 자식이나, 병원을 찾아오시는 시골 어르신들일 것이다. 한 손엔 지팡이, 또 한 손엔 손가방을 든 노인들은 마중 나온 자식들을 의지하여 발걸음을 옮기신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자식보다 더 든든한 버팀목은 없구나 생각하며 친정부모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부안에서 출발한 직통버스가 도착했다. 올해 90세이신 아버지는 체크무늬 모자, 흰색 점퍼와 회색바지 차림으로, 86세이신 어머니는 멋쟁이 분위기가 느껴지는 챙 넓은 모자, 파란색 무늬 옷차림으로 버스에서 내리셨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시는 부모님을 부축하고 택시를 탔다. 얼마 전에 맞춘 아버지의 보청기를 찾으러 가는 길이다. “할아버지, 잘 들리세요?” 보청기회사 여직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버지의 안색이 환해지신다. “할아버지께서 이제는 보청기가 정말 필요하신가 봐요.” 여직원의 말에 아버지도, 나도 미소를 지었다. 3년 전에도 똑같은 상표의 보청기를 아버지께 맞춰드렸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청력에 대하여 절박함을 못 느끼신 아버지는 보청기 착용을 성가시게 여기셨다. “비싸기만 허지 잘 들리지도 안혀서 있으나마나 허다.” 하시며 불만스러워 하시더니 얼마 못가서 보청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백여만 원이나 들여서 장만한 보청기가 기대했던 것만큼 효력이 없다고 여겨서인지 잃어버린 보청기를 아까워하시지도 않았다. “그냥저냥 이대로 살 테니 다시는 보청기 맞춰준다고 허지 말거라.” 우리 오남매는 아버지의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시는 부모님에 대하여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어머니는 전화하실 때마다 아버지 걱정을 하셨다. “너그 아버지가 이상해졌어야. 매급시 자꾸 화를 내시고, 노인당에도 잘 안 가시려고 혀. 아무래도 귀 때문에 그러는갑다. 사람들이 뭔 말을 혀도 통 못 알아들응개 사람들 있는 디는 가기가 싫다고 허신다.” 친정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확실한 대책을 대답해드리지 못하는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지난여름 친정에 갔을 때 뵌, 수척해지신 아버지 얼굴은 말 못할 괴로움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죄송하고 걱정도 되었다. “아버지, 보청기를 다시 맞추게요. 보청기 사용이 귀찮아도 안 들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내가 큰 소리로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만약 억지로 새보청기를 해드린다고 해도 사용을 안 하시거나 또 잃어버리게 되면 어떡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버지의 보청기 말고도 어머니의 보청기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기에 올케들 보기에도 미안했었다. 하지만 동생들과 의논한 끝에 아버지에게 보청기를 다시 해드리기로 했다. “너그덜이 보청기 새로 맞춰준다고 허니께 너그 아버지 기분이 좋은갑다. 화도 훨씬 덜 내고 보청기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시더라.”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에는 쾌활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아버지의 예상 외의 반응에 동생들도 나도 다행스러웠다. 전에 했던 대로 보청기 값은 서울에 있는 남동생들이 보내주었고, 하나뿐인 딸인 나는, 보청기를 맞추고 찾을 때 모시고 다니는 일만 담당하기로 했다. 보청기는 작고 예민한 기계다. 잘못 만지면 삐이삐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으면 만지기 부담스럽고, 아침마다 귀에 넣었다가 잠잘 때나 세수 할 때는 반드시 빼 놓아야 한다. 90세 노인의 무딘 손으로 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보청기 사용법을 아버지가 잘 익히실지 걱정이었다. 다행히 십 수 년 동안 보청기를 잘 사용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옆에 계시니 도와주시겠지만, 나날이 기력이 쇠퇴해지시는 아버지의 연세를 생각하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하얀 가운을 입은 여직원이 설명해 주는 대로 보청기를 귓속에 넣었다 빼냈다 하시며 사용법을 익히시는 아버지의 얼굴엔 연신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보청기 이야기를 못하게 하신 것은, 처음에 장만한 보청기를 잃어버리고 또 마련하기가 미안해서였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그동안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점점 어두워져가는 아버지의 청력을 노화현상으로만 알고 좀 더 일찍 돌봐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부디 새보청기가 아버지에게 반갑고 좋은 소리들을 잘 전달해주는 효자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2. 9. 14.) |
첫댓글 은소님은 시도 잘쓰시고 수필도 잔잔히 그려내는, 화가를 닮았습니다.
잃어버린 보청기~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들의 부모님 모습일 것입니다.
아씨님, 칭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 끼치기를 싫어하시는 부모님,
자식들은 그 깊은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뻐하시는 은소님의 아버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같이 계셔서 덜 외롭겠습니다.
저에게도 칠십 넘으신 어머님 혼자 계시는데 해마다 힘이 없어져 가는 것을 보며
같이 있어 드리지 못하는 마음만 애가 쓰입니다.
오늘 쓰신 글을 읽으면서 언젠가 우리가 겪어야 할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을때 더 많이 사랑하고 사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슬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이슬님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