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노래를 들으며, 문득, “그렇지, 사랑하는 대상은 사람이지 이별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지.”라며 공감한다. 애매한 일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얼버무리는 일이 많은 세상에서 정직한 고민을 통해 맑은 시인의 감성이 밝혀낸 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통찰과 감성은 아무나 가지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그 작사가를 ‘천재’라 말하기도 한다.
‘작별인사’라는 그의 노랫말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정든 찻잔도 색이 바랜 벽지도 흔적이 힘들어서 바꾸지 말아요… 정든 찻잔도 물기 배인 마루도 의미를 알기 전에 바꾸지 말아요 내 마음에도 같은 것들을 남긴 것처럼” 오래 정들었던 집을 떠나는 날일까?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잠시 거처를 옮기는 가정의 모습일까? 바꿀 때 바꾸더라도 오랫동안 거기 있었던 것들을 잠시 멈춰 서서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묻어난다.
그 노래가 배경음악이나 되는 듯 ‘응답하라 1988”는 TV 드라마가 떠올랐다. 지난 20년 사이 가장 마음에 남은 드라마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 어느 골목에 가면 여전히 금은방 "봉황당"이 있고, 다섯 명의 소꿉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며 매일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 같다. 내가 지나 왔던 시대가 마치 이상향처럼 그리움으로 남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보니 문명의 발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가치가 복개공사를 당한 느낌이다.
더 좋다는 것이 뭘까? 더 너른 집과 현대식 설비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치장한다는 것일까? 지난 50년 사이에 모든 삶의 환경이 바뀌고 또 바뀌고, 세계가 경탄할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이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을 향해 경주마처럼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이때 한 번쯤은 숨을 고르고 들어야 할 노래가 그 '작별인사'가 아닐까? 못 살았던 때의 흔적을 부끄러워하며 서둘러 지우기보다는, 그 시절의 가난했던 풍경 어딘가에 남아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고 초청하는 두 남매다. 겉은 어른이 분명하나 속은 아직 어린아이인 사람들을 향해 묻는 그들의 질문에는 관습이나 유행을 따라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
백제의 첫번째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으로 여겨지는 몽촌토성은 서울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백제시대의 토성(土城)이다. 그냥 야트막한 언덕 정도로 여겨져 한강 정비 때 잠실도를 육지화하는 데에 이곳의 흙을 쓰자는 제안이 나왔을 정도였으나 고고학자들이 백제의 하남위례성 터일지도 모른다고 강력히 주장한 덕에 보존될 수 있었고, 이를 증명하는 토성터와 유물들이 발굴돼 올림픽공원 안에 남게 됐다. 북쪽에 있는 풍납토성은 이미 들어선 아파트 단지 때문에 제대로 발굴도 못 하고 보존도 못 하는 상태인 것을 볼 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빨리빨리 바꾸다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어렸을 때 고국을 떠나 외국에 살았던 작사가의 눈에는 이 시대의 발전이나 사람들의 관계나 생각이 어떻게 비치는지, 그들의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늦추며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생떽쥐페리의 동화에 나오는 [어린 왕자]는 철새의 도움으로 여러 별들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바빠 누구도 그 질문에 주의하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조종사는 달랐다. 처음에는 불시착한 비행기 수리에 분주했지만 나중에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대답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생각한다. "내가 절박하다고 하는 문제는 과연 얼마나 사실일까?"
가정 사정으로 정규교육 대신 홈스쿨링을 했다는 악동뮤지션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오른 곳이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나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가는 나비 같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해 노래를 통해 나눠주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해 오기도 한다.
흔히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고 한다. 의사, 사업가, 교사나 예술가가 꿈이라면 이미 꿈을 이룬 인생이란 말일까? 그 꿈으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가 진정한 꿈에 대한 이야기다.
성공한 가수, 사랑받는 가수가 그 친구들의 꿈일까? 아니면 지금의 성취를 디딤돌로 해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펼칠 어떤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 쪽이다. 그들의 꿈이 더없이 밝고 힘 있게 펼쳐져 이 세상이 보다 의미 있고 아름답게 바뀌어가는 것을 더욱 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