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례 요한(바쿠스)〉 / 캔버스에 유채 / 177×115cm / 1511년경 제작 /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1층 5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례 요한〉 / 목판에 유채 / 69×57cm / 1513년경 제작 /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1층 5실
***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였다. 아버지는 사제 즈카르야였고 어머니는 아론 가문에 속한 여인으로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척이었던 엘리사벳이었다. 요한의 출생과 사명은 놀라운 방식으로 예고되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아버지 즈카르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출생과 사명을 예고해 주고, 그러한 예고를 접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 나이가 너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밝히지만 즈카르야는 천사를 통해 전달된 하느님의 뜻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을 못하게 되고, 또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천사가 미리 정해 주는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그 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다의 산골 마을에서 예수님의 탄생 약 6개월 전에 태어난 요한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기 사명을 시작하기 전까지 광야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메시아께서 오실 것을 선포한 구약의 예언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것으로서 그분이 오실 것에 대비하여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지닌 종속적이고 일시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요한의 초기 직무는 유다 광야와 요르단 강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낙타털로 된 옷과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다. 그의 옷차림이나 음식은 당시의 사람들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하늘에서 다시 내려올 것이라 믿었던 엘리야를 연상시켜 주었다. 요한이 사람들에게 전한 핵심적인 메시지는 회개와 세례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희망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하느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면서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촉구했던 것이다. 회개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께 순종하여 그분께 온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요한은 이 방향 전환이 개인의 일상생활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설파했다. 회개의 세례는 죄의 용서를 구하고, 낡은 생활을 청산하며,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희망 등을 상징했다.
많은 유다인들은 메시아적인 심판이 자기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고 이방 압제자들에게는 파멸의 시간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요한은 유다인이라는 혈통 자체가 앞으로의 심판에서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을 것임을 경고하면서 하느님의 참된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해 주었다. 요한의 세례는 유다인들의 정결례나 이방인들이 유다교로 개종할 때 받았던 세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가 행한 세례 의식은 후에 이루어질 그리스도교 예식의 기초가 되었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으로 선포하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보면 불은 정화와 종말의 파멸을 가리키며 종말의 성령은 축복과 정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요한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그리스도의 심판이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파멸을 가져다줄 것이요, 의롭고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의 순간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죄 때문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의 직무와 메시지를 인정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이 예수님께 베푼 세례나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해 제기된 질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예고된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 진리의 증언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 등으로 부르시며 그를 높이 평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인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임을 밝히심으로써 그가 메시아 시대가 도래하기에 앞서 이 세상에 와 복음의 시대를 여는 교량자 역할을 할 사람임을 알려 주셨다.
요한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가 제자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훈련시켰는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기도와 단식을 가르쳤다고 하는 사실은 확인되고 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은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서 나왔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요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요한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대단히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는 초대 교회 안에서도 요한이 행한 직무가 가져온 효과의 증거들을 찾을 수 있다.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 뒤 한참 지나서 갈릴래아와 트랜스요르단 동편 중부지역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투옥되었다. 그것은 요세푸스가 전하는 대로 지루한 도덕 설교 때문도 아니었고, 복음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그가 설교를 통해 정치를 비판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헤로데는 첫째 부인(인근 아랍족 나바테아 왕국의 왕 아레타스 4세의 딸)과 이혼한 뒤 자신의 이복동생과 이혼한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이것은 유대법상 불법행위였다. 요한이 이 결혼을 비판하고 나서자 헤로데는 자신이 다스리던 유대 백성과 반(半)아랍 백성이 연합하여 자기를 반대하는 위기에 직면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요한을 처형한 것은 35~36년 아레타스 왕이 헤로데를 공격하여 승리하기 전이었음이 분명한데, 이 패배는 헤로데가 요한을 죽인 데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여겨졌다.
요한은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잡혀 갇혀 있다가 처형을 당했다. 아마도 헤로데가 요한을 처형한 것은 요한이 헤로데의 잘못된 결혼을 지적해 그의 미움을 샀고, 당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한으로 인해 혹시 반란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헤로데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복음서들에 따르면, 요한은 예수보다 먼저 죽었다. 그가 죽은 시기를 아무리 정확하게 추산한다 해도 그것은 예수가 사역하고 죽은 연대에 근거한 것이다. 요한의 추종자들은 그의 시체를 찾아내 장사를 지냈다. 그의 것으로 전해져온 '살림 근처 애논' 인근의 세바스테(원래는 사마리아)에 있는 묘지는 360년부터 그의 묘지로 공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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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 / 캔버스에 유채 / 91×167cm / 1609~1610년 제작 / 내셔널 갤러리 32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은 세례자 요한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의로운 세례자 요한은 형을 죽이고 형수를 취한 뒤 왕위에 오른 헤롯을 비난하였는데, 이 일이 자신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라 생각한 왕비가 간교를 꾸미게 된다. 그녀는 헤롯 왕의 의붓딸, 즉 자신의 딸이자 엄밀하게 말하면 왕의 조카인 살로메로 하여금 연회에서 자극적인 춤을 추어 왕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였다. 패륜에 취한 헤롯 왕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말하라고 하자 살로메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고, 결국 그는 참수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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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로 산치오〈황금방울새와 성모〉
* 저작 :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 |
* 제작시기 : 1505년경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 중 하나로 언급되는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는 두 선배 거장의 작품에서 기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 〈황금방울새와 성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리게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면의 안정감을 위해 삼각구도법을 자주 활용하곤 했는데, 라파엘로도 이 작품에서 성모의 머리끝을 꼭짓점으로 한 삼각형 모양의 구도로 인물들을 배치했다. 먼 곳의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여 가까이 있는 것은 짙고 선명하게 멀리 있는 것은 옅고 희미하게 처리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공기원근법 역시 라파엘로의 이 그림에 잘 구사되어 있다. 성모와 두 아기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매와 코, 입술과 얼굴이 닿는 부분의 선, 즉 윤곽선들이 부드럽게 처리되었는데, 이 기법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떠올리게 한다.
라파엘로 산치오 〈황금방울새와 성모〉 / 목판에 템페라 / 107×77.2cm / 1505년경 제작 /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고즈넉한 풍경을 배경으로 온화하고 자애로운 표정의 성모와 천진난만한 두 아이를 그린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머물던 시절에 제작되었다. 화면 왼쪽에 낙타털 옷을 입고 서 있는 아이는 세례 요한이다. 허리께에 달고 있는 작은 그릇은 훗날 그가 예수에게 세례를 줄 것임을 암시한다. 작고 앙증맞지만 한쪽 팔을 쭉 뻗어 새를 잡는 예수의 몸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 이들이 잡고 있는 새는 황금방울새로 엉겅퀴를 주로 먹는다. 엉겅퀴는 가시 면류관을 상징하므로 새는 예수의 수난을 상기시킨다 할 수 있다.
라파엘로가 그린 수많은 성모자상은 때론 가족과 혹은 어린 세례 요한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당시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개인 가정에 걸어두고 기도와 명상을 하기 위해서 이 주제의 그림에 대한 수요가 넘쳤다. 그리는 성모 그림마다 성공하면서 라파엘로가 그린 ‘금발에 단아한 표정, 자애롭게 아이를 돌보는 여인상’으로서의 성모 마리아는 일반인들이 ‘성모’ 하면 이내 떠올리는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