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두 얼굴 / 주연아
욕망은 야누스와 같이 앞뒤가 다른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욕망이 아장아장 두발로 땅 위를 걸어 갈 때 우리는 그것을 미덕이라 부른다. 일상에 필요한 긴장감과 다 나은 미래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우리는 성취욕 또는 야망이라 일컫는 적당한 욕망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나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하면 그것의 이름은 탐욕으로 바뀌고, 마침내 그 날개가 꺾이어 땅 밑으로 추락할 때 그 얼굴은 파멸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 파멸은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다. 이렇듯 욕망이 잘못된 자아 분열을 할 때 그것은 마치 하이드로 탈바꿈한 지킬 박사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결국은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것이리라.
내 욕망도 처음엔 깃털처럼 가볍고 조약돌처럼 조그마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틈에 알라딘의 램프 속 거인처럼 몇 십 배의 부피로 팽창하여 거대한 아귀를 벌리고 나를 집어 삼키려 마구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돌연 하이드로 변신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의 눈빛을 하고, 온 몸의 가시털을 곤두세워 자신을 방어하는 고슴도치의 형상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또 내 심장을 쉴 새 없이 먹이를 탐하는 돼지의 심장과 맞바꾸어,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경함하기도 한다. 어느덧 나는 명예를 좇고 기회를 좇고 부를 좇는, 도시라는 정글 속의 한 마리 사나운 동물의 영혼이 되어 결코 잡을 수 없는 허망한 신기루를 향해 끝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헛된 바람을 안고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울라탄다. 그리고 가다가 ‘묘지’라 이름의 전차로 바꿔 타고 어느 한 정거장에서 정신없이 내린다. 산길을 따라 허겁지겁 오르다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니 무수한 무덤들이 줄지어 있다. 그 앞에는 가슴 깊이 가득 할 말을 품고 있는 수많은 묘비명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 중의 하나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경고해 온다. ‘나도 지금 네가 서 있는 거처럼 한때 서 있었다. 어느 날 너도 지금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것처럼 누워 있으리라 있으리라.’ 그리고 돌연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 싸늘한 정적의 무게….
욕망이 거부할 수 없도록 그 뜨거운 두 팔을 뻗쳐올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하리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욕망의 본질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 하나의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한 뾰족한 첨탑의 계단, 그런데도 우리는 결코 실재하지 않는 그 곳을 향해 끊임없이 오르고 오르며 웃고 또 울지 않는가.
이렇듯 오묘한 두 얼굴을 지닌 너, 욕망의 황금분할은 어떠한가. 욕망을 저울에 달아 미덕과 탐욕이 평형을 이룰 때 우리는 무기력과 부도덕에서 해방되어 평온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균형이 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되고 말아, 마침내 우리의 영혼을 악마에게 저당잡히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에 떠밀려 내려와 다시 전차를 타고 여섯 번째의 모퉁이를 돌아 ‘극락’이란 이름의 길에서 내린다. 고요가 물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그 곳에는 식물의 영혼들이 살고 있다. 제왕도 존재치 아니하고 우열이나 쟁취라는 단어도 없다. 그 곳의 계율은 화무십일홍, 그들은 자연의 법칙에 묵묵히 순응할 뿐, 기억하지 않는다. 더 풍요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원한다 할지라도 타협하고 자족하는 법을 배우며, 그저 제자리에서 호젓이 피고 미련 없이 질 뿐 결코 옮겨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유혼을 사랑하는 그들이 욕망을 뿌리째 거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다스릴 줄 아는 것이리라.
이제 나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투쟁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좋아할 뿐, 비로소 평화로운 나는 한 걸음 나아가고 한 발자국 물러서며, 약간 잃고 약간은 얻으며, 조금 기뻐하며 그리고 항상 조금은 슬퍼하고 싶다. 그 슬픔은 내 몸 안의 가시와 같아 그 가시가 있어야 나는 더 소망하지 않고 감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므로….
내 마음의 정원 한 귀퉁이에는 가시나무 한 그루 심어져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의 그것, 나는 내가 길들여야 할 나의 가시나무가 말라죽지 않도록 물을 주고 잘 가꾸어야 한다. 어린 왕자가 그의 장미꽃에 고깔을 씌우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 주듯이…. 그러나 너무 무성하여 나의 뜰을 온통 점령하지 않도록 적당히 뽑아 주기도 해야 하리라. 못된 바오밥나무가 작은 별 전체를 휩싸 버리지 못하도록 하듯이….
그리하여 비온 뒤 어느 날, 일곱 빛깔 무지개가 찬란히 하늘 위에 걸린 날, 일생에 단 한번 울음 운다는 전설 속의 가시나무새가 포르릉 날아들 수 있도록, 그 고운 노랫소리 들을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리라.
이제야 나는 알겠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바라보며 ‘묘지’와 ‘극락’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그것들은 바로 그 곳, 내 마음 가는 곳에 더불어 존재하고 있음을…. 이 가을에 나는 비로소 철이 들려나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 중 '메멘토 모리'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본문 중 '경함'은 경험의 오자가 아닌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