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밤, 뇌졸중으로 고생하시던 제리 할머니는 모든 가족이 지켜보는 중에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사셨던 분에게 어울리는 평온한 마지막이었다. 손자 제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갈 수 없어서 다닐로, 알렌, 다를리와 함께 조문을 다녀올 예정이다. 나이로 보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어린 친구 셋이다. 가고 오는 길에 주님은 얼마나 많은 것을 말씀해 오실까?
일단 세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무엇을 나눌까 생각할 때 처음에는 노트가, 두 번째에는 연필이, 세 번째로는 타스매니아 도서관에서 가져온 세 개의 북마크가 잇따라 생각났다. 가고 오는 길에 우리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생각할 때 최근에 세 친구가 경험한 일들이 떠올랐다.
알렌은 온라인 라이브러리에 올린 그림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한 나무를 기대고 반대편을 향해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스마트폰을 쥔 사람 쪽의 나무는 까맣게 타버린 모습이고, 책을 든 사람 쪽의 나무는 푸르고 울창한 모습이었다. 알렌은 중학교 다닐 때부터 피시방에서 온종일을 보냈다. 집과 피시방 외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로 알게 된 하나님의 세계는 크고 신비로웠다. 스마트폰 대신에 책을 잡은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적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렌은 자신의 삶을 통해 배웠다.
다닐로는 얼마 전 망가진 수도꼭지를 교체했다. 처음에는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해결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방법이 생겼고, 완성하고 보니 보기도 좋고,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기분도 좋았다고 했다. 사용할 때마다 가족 모두가 칭찬한 일이 됐다. 목소리처럼 움직임도 작고 조용하던 다닐로 안에 새로운 일이 시작됐다는 신호 같았다. 이 일을 사진과 함께 기록했으므로 그의 글을 읽은 친구들의 눈도 열렸다. 다 좋아지고, 더 좋아지는 일이 기록을 통해 일어난 것이다.
다를리는 중학생이던 때부터 주변의 아이들을 모아 토요학교를 했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오기도 하고 한 두 명씩 오기도 했다. 이제 3년이 됐다. 그중에 기안은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장난꾸러기인데 토요일마다 책도 읽고, 학교 공부도 하고, 소감을 적었다. 삶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어갔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좋은 교사를 만나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다를리 주변에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작은 일에 충성한 다를리는 늘 기쁨이 넘친다.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제로 행했을 때 자신과 주변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그녀를 아버지께서 더욱 복되게 하실 것이다.
문상길에는 누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될까? 이미 세 친구를 통해 그 답을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다닐로는 기록하는 것의 힘을, 알렌은 책 읽기의 의미를, 다를리는 실행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 배웠다. 읽고(Read), 기록하고(Record), 실행하는(React) 이 세 기둥, 필독, 필록, 필행. 우리를 오랫동안 후원했던 세필교회의 이름이 그런 뜻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할 세 가지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삶을 사는 길이 되는 것은 어쩌면 부차적인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진정한 눈이 열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겸손히 기록하며, 깨닫게 하신 것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다음 세대의 리더들을 꿈꾼다. 먼저 이 세 친구들 안에 읽고, 기록하고, 실행하는 이 세 기둥을 세워주실 것에 대한 기대를 주신다. 다른 친구들의 삶에도 좋은 감염처럼 점차 번져가게 하실 것이다.
앞으로 50년, 70년, 100년의 긴 세월을 두고 꾸준히 자라나는 세 친구가 되게 하시길 바란다. 마므레 상수리나무 옆에서 살다 간 아브라함처럼, 각자를 이끌어 두신 곳에서 푸른 감람나무처럼 세상을 크게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시편 52:8)